[경향] 힘내라, 사회복지사

2014. 7. 15. 22:3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주 사회복지사들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초생활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한 후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하려는 정부를 비판하는 자리다. 모두 출근해야 하는 처지라 모인 시간은 오전 7시30분. 사회복지사 약 400명이 신문에 성명 광고도 실었고, 릴레이 물결이 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27년 경력의 선배 참석자는 현장 사회복지사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적’ 발언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복지 열풍이 뜨겁던 2011년, 어느 복지관에서 열린 사회복지사 간담회에서 나는 마음먹고 한마디 했다. 온 세상이 복지국가를 말하는데, 정작 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왜 적극 나서지 않느냐며 복지현장을 타박했다. 곧바로 항변성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쟁점인 급식, 보육, 의료는 우리가 관여하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 활동은 구조적으로 복지관에 갇혀 있다. 복지현장의 실태를 너무 모르고 하는 말씀’이라고. 당위성에 급급했던 나의 질문이 민망해졌다. 사실 그랬다. 보편복지 바람은 불었지만 사회복지사가 맡는 취약계층 복지는 계속 그늘져 있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역할도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작년 상반기 복지전담 공무원 4명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통 원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 업무였다. 복지 바람이 불면서 정부 부처마다 쏟아내는 일거리가 읍·면·동 한 두 명의 사회복지공무원에게 집중된 탓이다. 민간 복지현장은 정부의 복지사업 지침에 종속돼 스스로의 혁신과 창의를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도 오래된 매너리즘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회복지사 연수프로그램을 보수교육이라 부르고, 복지서비스 상황을 ‘사례관리’라며 물건 다루듯 한다. 클라이언트, 슈퍼바이저, 코디네이터, 인테이크 등 수입 단어가 그대로 공식 용어이다. 사회복지사 배출 체계도 사실상 둑이 무너진 상태다. 평생교육원, 사이버대학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2004년 10만명에서 올해 70만명에 이른다. 인구 70명당 한명씩 사회복지사가 있는 셈인데도 복지계의 책임 있는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지난주 출근길 기자회견이 뜻깊게 다가왔다. 빈곤 노인의 기초연금 권리를 위해 사회복지사들이 복지관 담을 넘어 대통령에게 ‘응답하라’ 외쳤다. 근래 복지현장에 흐르는 에너지가 심상치 않다. 한 두 해 전부터 사회복지사 내부에서 이대로 머물 수 없다는 꿈틀거림이 시작됐다. ‘사회복지시설 평가 혁신’, ‘사회복지 현장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모임,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이름의 단체도 생기고, 매달 청계광장에서 복지국가 촛불도 열리고 있다. 요새 서울에서 정책강연회를 개최하면 50명 청중을 만나기 어려운데 복지가 주제일 경우 100명 이상 좌석이 찬다. 젊은 사회복지사들이 퇴근길에 강연장으로 향한다. 광주에선 사회복지사들이 지역노동조합을 추진하고 있다. 광역별 사회복지사협회도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데,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는 최근 복지국가특위를 설치했다.

이렇듯 출근길 사회복지사들의 외침은 복지현장 혁신의 작은 열매이며, 본격적인 활동을 알리는 신호로도 여겨진다. 기존 현안에 의견을 내는 수준이 아니다. 기초연금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행정부, 국회, 대다수 시민단체들이 방치했던 ‘줬다 뺏는 기초연금’ 의제를 발굴하고 국민에게 알리며 보건복지부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소수의 움직임이다. 그럼에도 복지현장의 열망을 담은 것이기에 더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호응해 갈 것이라 기대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 1호 법안으로 내놓았으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세모녀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도 직접 지역에서 ‘세모녀’를 만나는 사회복지사들이 깨워 일으켰으면 좋겠다. 내친김에 사회복지사, 복지수급자, 협동조합, 마을단체 등 복지현장과 지역공동체가 엮는 ‘아래로부터’의 복지운동까지 나아가면 어떨까. 정부의 일방 지배로 숨이 막힌 복지생태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자. 힘내라, 사회복지사! (경향 정동칼럼 2014.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