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사회보험료 인상 거꾸로 보기

2014. 6. 26. 16:5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주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이 결정되었다. 보험료 인상 뉴스가 반가운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유리지갑 직장인’을 강조하며 독자를 자극하는 언론 기사도 눈에 띈다. 사회보험료가 늘 동네북 신세다. 근래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일반예산 복지가 확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복지체계는 여전히 사회보험에 기둥을 두고 있다. 전체 복지분야 지출에서 사회보험이 65%를 차지하고 고령화에 따른 의료, 연금 증가로 2050년에는 80%까지 이를 전망이다. 대한민국 복지에서 이토록 중요한 게 사회보험인데 우리는 그 재원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을까?


 

내년에 건강보험료가 1.35% 오른다. 지난 4년 기간에 가장 낮은 인상률로 물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혹시 보험료 인상이 탐탁지 않지만 그나마 낮은 수치에 안도했는가? 건강보험 재정은 오직 환자 의료비 지원에만 쓰이는 목적 재원으로 규모가 전적으로 건강보험료율에 달려 있다. 보험료율이 정해지면 직장가입자의 경우 노사가 절반씩 납부하고 보험료총액의 20%를 정부가 지원한다. 기업과 정부 몫 덕택에 가입자는 보험료 대비 평균 1.7배를 받는다. 보험료는 소득에 비례하고 급여는 아픈 만큼 제공되므로 중하위계층일수록 더 유리하다. 가입자가 전액 부담하고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는 민간의료보험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사회연대 재원이다. 작년부터 건강보험료 인상률이 계속 1%대에 머물고 있다.

 

의료비는 매년 증가하는데 건강보험료 인상이 미미하면 그만큼 본인부담금이 가중되고 민간의료보험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낮은 보험료는 기업에는 노동비용을 줄여주지만 가입자에겐 더 커진 본인부담금을 의미한다. 이치로만 따지면 가입자는 1%대 보험료 인상을 반기기보다는 무거워질 본인부담금을 걱정해야 한다. 보험료 내기가 버거운 저소득계층, 영세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면서, 건강보험료 인상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이다.

내년 국민연금 상위계층 가입자의 보험료도 월 9000원 오른다. 보험료율에는 변화가 없지만, 보험료 적용 소득상한액이 월 398만원에서 408만원으로 상향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소득이 400만원이든 4000만원이든 동일 보험료(9% 적용, 약 36만원)를 내는 건 불공평하니 상한액을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건강보험의 소득상한액은 월 7810만원이어서 보험료 최고액이 약 470만원인데(보험료율 약 6%), 국민연금은 소득상한액이 398만원이어서 보험료가 36만원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급여원리가 다른 데서 비롯된 결과이다.

 

건강보험에서 보험료와 급여는 완전 독립적이다. 많이 냈다고 더 받지 않는다. 국민연금에서는 급여액이 보험료와 연계돼 있어 더 내면 더 받는데, 상위계층은 노사가 낸 보험료 총액 대비 1.3배를 돌려받는다. 이들의 보험료를 올릴수록 고스란히 후세대 책임이 더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상위계층은 기대수명이 길어 실제 급여 총량은 이보다 더 후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소득상한액 상향 조치가 상위계층에게 오히려 혜택이고 미래 연금재정에는 불안 요소인 셈이다. 상한액을 대폭 올려 상위계층도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게 하려면 연금액에 상한선을 두든지 급여율을 조정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료 인상 이야기를 꺼내기가 참 어렵다. 건강보험료에선 부과 체계를 둘러싸고 직장과 지역 가입자 사이에 긴장이 끊이지 않는다. 빈약한 소득으로 인해 저소득계층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금보험료 부담이 무척 크다. 그래서 사회보험료 인상은 우선 저항을 야기하고 그 결과 사회보험 급여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정작 사회보험이 가장 필요한 불안정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들은 보험료를 낼 수 없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사회보험료에 대한 생산적 논의 없이 대한민국 복지국가는 가능치 않다. 보편복지 바람이 사회보험료 성역 안으로 불어가야 한다. 최근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자는 움직임도 시작되었다. 내년 6월에도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가 또 오를 것이다. 그때는 사회보험료를 전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