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박원순, '복지 서울' 성공시키고 싶다면…

2013. 11. 20. 11:2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이제는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다

 

 

문종석 푸른시민연대 대표
 

 

복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선택 복지에서 보편 복지로, 수직적 복지에서 수평적 복지로, 일방적 복지에서 상호적 복지로 그 영역과 개념이 점차 발전해 가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나아가는 큰 물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지방 선거 때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무상 급식으로 시작된 보편 복지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상대 진영의 역공에 밀려 주춤하기는 했지만, 결국 이를 주도한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 복지 논쟁은 결국 여당까지도 동참시켜 이제 무상 보육, 무상 교육, 기초연금 등 복지 경쟁으로 발전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 이행 정도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복지 환경이 상당히 변한 것은 분명하다.

근래 이러한 복지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울시 복지가 등장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복지 시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새로운 서울의 복지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서울 복지 플랜을 추진하기 위해 복지 재정 확충을 둘러싸고 중앙 정부와 맞장을 뜨는 일도 피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희망 온돌 프로젝트, 복지 전달 체계 혁신을 불러오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책임자로 처음 맞은 2011년 겨울은 유난히도 추위가 혹독했다. 겨울의 시작점에 거리에서 힘없이 죽어간 한 노숙자의 빈소를 찾은 서울시장은 다시는 서울 하늘 아래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사람이 없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시작된 사업이 '희망 온돌 프로젝트'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 ⓒ프레시안(최형락)

당시까지 중앙 정부는 복지 예산을 내려보내고 지자체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그 예산을 단지 대상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에 안주해 왔고, 이 방식으로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복지 대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러한 복지 체계에서 희망 온돌 프로젝트는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복지 생태계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수직적 전달 체계에서 복지의 중심이 지자체와 복지관에 있었다면 희망 온돌 프로젝트는 마을 복지를 중심에 놓고 지자체와 복지관뿐 아니라 풀뿌리 시민단체, 주민자치단체, 봉사단체, 종교단체 등 지역 복지 역량들을 모두 참여케 했다. 이들이 힘을 합쳐 어려운 이웃들을 마을 단위에서 돌보는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진행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여러 기관들이 힘을 합쳐 마을의 어려운 이웃들이 겨울을 지내도록 하는 것은 낯선 시도였다. 그동안 수직적 복지 전달 체계에 익숙한 지자체와 복지관은 이 사업을 또 하나의 겨울철 긴급 사업 정도로 여기며 힘들어 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실험하고 안착하게 하기보다는 기존의 이미 과부하된 시스템에 새로운 사업 하나 더 얹어준 상황이 되어 복지 현장의 불만은 심화됐다. 이를 함께 풀어나가야 할 지자체는 이 사업을 서울 시장의 신규 브랜드 사업쯤으로 인식하며 사업을 정체시킨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희망 온돌 프로젝트는 다양한 민간 복지 역량들이 새롭게 만나고 함께 의논하며 힘을 합하는 과정을 겪으며, 그동안 생소했던 수평적 복지의 희망을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겨울에 서울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죽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마을 복지, 지역 복지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업이자, 마을 중심의 새로운 복지 전달 체계가 움직이는 전환점이었다.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 씨앗들은 이미 있다

사실 희망 온돌 프로젝트는 독창적인 발상은 아니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지역 복지라는 개념으로 존재해 왔다. 대다수의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마을 단위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 위해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는 일종의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다만 그 힘이 미약했을 뿐이다. 워낙 우리 사회에 민간 사업을 지자체 행정과 함께 발전시킨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생소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서울 지역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역의 나눔과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박원순 시장 역시 시민 운동 시절에 아름다운재단이나 아름다운가게 운영을 통해 이러한 풀뿌리 단체의 복지 생태계를 지원해 왔기에 이 사업의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 보인다.

문제는 풀뿌리 시민단체나 민간의 자발성만으로는 마을 중심의 복지 생태계가 쉽게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복지 정책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지자체와 복지관의 참여 없이는 제대로 된 복지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 천안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 민간 풀뿌리 재단이 독자적인 힘으로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민간 혼자 힘만으로는 무리다.

지금 서울시 지역마다 마을 공동체가 주요 화두로 등장해 있다. 개별화되고 단절된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의 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도시 마을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신나게 마을살이를 해나가고 있다.

마을 공동체는 자신의 아이들을 함께 키워나가며 부모들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유형(성미산마을, 삼각산 재미난 마을)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울의 자치구에서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어려운 이웃을 함께 돌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마을에서 이웃과 이웃이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서로 돕는 힘 즉, 상부와 상조이다. 나눔은 이웃 사이 공동체를 더 의미 있게 만들고 공동체의 필요성을 극대화한다.

그러다보면 중앙 정부나 행정으로부터 내려오는 수직적 복지가 아닌, 이웃들이 상황에 따라 만들고 해결하는 마을 중심 복지가 논의의 중심에 등장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은 결국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를 촉진할 것이고, 이미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 다카하마시에서 마을 복지를 보다

일본에는 인구가 5만 명인 다카하마시라는 도시가 있다. 선동열 선수가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했던 나고야시 인근 도시로 인구가 적어 인근 도시와 통폐합 위기를 겪었던 작은 시이다.

우리는 다카하마시에서 지역 복지의 가능성과 모델을 볼 기회가 있었다. 다카하마시뿐 아니라 일본은 오래전부터 지역 단위, 마을 단위에서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힘써왔다. 일본은 마찌쯔꾸리(마을 만들기) 운동을 통해 지역의 거주율과 주민 중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나고야시와 다카하마시도 그 중심에 있다. 특히 여느 마을 공동체와 달리 다카하마시는 인근의 일본 복지 대학과 함께 복지 마을 공동체 사업에 힘써왔고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다카하마시의 복지 마을 만들기 활동은 행정 구역과는 무관하게 초등학교 학군 중심의 구역 즉,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자녀도 함께 키우는 공간을 마을 만들기 규모로 설정했다. 대략 인구 1만 명 미만의 소지역이 마을의 기초 단위가 된다. 이러한 구역은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다녔던 공통점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관계를 기반으로 거주 지역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가능케 하는 지역이 된다.

지자체 행정의 노력도 돋보인다. 다카하마시에서 시 공무원이 승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마을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주민들과 마을 공동체에서 일하며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행정의 칸막이가 없어지고 오히려 행정이 주민 중심의 마을 공동체를 지원하는 거버넌스 구조가 만들어졌다.

나아가 마을의 복지 기관들이 한국의 지역 복지 협의체와 같은 구조로 마을의 복지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한 '이키이키히로바 위원회'를 결성했다(히로바위원회는 '주민 참여형 워크숍'이 행해지는 의견 수렴의 장이다. 히로바위원회의 명칭은 다카하마시의 원스톱 서비스 전담 창구인 이키이키히로바에서 유래하고 있다. 히로바는 168이라는 숫자를 의미하는 말로, 계획 수립 워크숍에 168명의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일본의 지역복지 정책 및 방법>, 히라노 타카유키, 2008 <필자>). 이 위원회는 다카하마시의 복지 행정과 공동으로 사무실을 쓰며 마을 복지를 위해 통합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을 주민이 주체로 등장했고, 훌륭한 마을 리더가 성장했으며,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로 복지 마을 공동체가 구축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카하마시 남부마을협의회는 장애아를 둔 가족과 장애인들에게 마을사랑방 1층의 레스토랑의 운영을 위탁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부모들의 돌봄을 넘어 마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복지 마을의 전형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이 마을 공동체의 주민 리더는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요소는 결국 복지라고 말하며 마을 공동체와 복지의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복지 서울',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로 가자

박원순 시장이 '복지 서울'을 주창했다. 서울 시민 복지 기준선까지 만들며 복지 시장이 되겠다고 자임했다.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그 길이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울을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단위들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막연하게 30만 명이 넘는 자치구 단위로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실험은 지양해야 한다. 평균 인구 3만 명 규모의 자치 동을 구역으로 산정하거나, 때로는 그보다 적은 마을 단위여야 한다. 각 마을 공동체가 이 규모를 직접 정하는 방식으로 마을 사업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동안 지자체와 복지관 중심의 수직적 복지를 넘어 나눔과 돌봄을 직접 실천하는 주민들이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동대문구 푸른시민연대에서 시작한 주민 리더인 나눔 반장들의 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눔 반장은 마을에서 이웃과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나눔을 실천해온 평범한 이웃들이다. 직업 또한 이웃 살림살이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동산 사장, 식당 주인, 가스 검침원 등이다. 이들은 마을의 나눔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실제적인 마을 복지 리더이다.

서울시 복지 재단의 역할도 중요한다. 서울시 복지 재단은 서울시가 출연한 공익 재단으로 서울시 복지 환경의 개선과 이를 위한 연구 조사 및 네트워크 구축 등을 추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재단은 '복지 서울'의 방향으로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를 설계하고 있다.

서울시 복지 재단이 진행하는 사업으로 '나눔 이웃 사업'이 있다. 이 사업 역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마을 복지에 주민이 실제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마을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복지 대상과 자원을 조사하고, 그에 기초하여 마을 복지 계획을 수립하고 마을 복지를 실행하는 복지 생태계 사업이어야 한다.

서울 복지 재단에서 최근 진행하는 기존의 마을 지향 복지 사업들도 더욱 구체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배치해야 한다. 사업 추진 전체 과정에서 복지 현장, 마을 현장과 함께 복지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는 결국 마을 단위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만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 단위의 풀뿌리 시민단체와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뭐든지 한꺼번에 바꿀 수 는 없지만, 그 가능성과 실험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즉,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그러니까 마을에서 주민들의 눈으로 복지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을 바탕으로 마을에 존재하는 다양한 복지 역량들이 힘을 모으고 연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사업을 이끌어가는 주민 리더들이 성장해 살아 있는 마을 복지 생태계의 일꾼이 될 것이다.

마을 중심 복지는 마을 주체들이 마을의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풀어가는 복지 생태계다. 마을 주민들과 단체, 복지관들이 복지 생태계를 주관하고 지자체 행정이 좋은 파트너로 지원한다면, 서울의 복지는 마을 복지 공동체라는 멋진 열매를 맺으며 '복지 서울'의 지속 가능성도 확보해 갈 것이라 기대한다.

박원순 시장,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아가라

마을 중심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이미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서울시 복지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서울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장을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서울시 복지 행정 또한 마을 지향 복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가 구체적인 복지 거버넌스 구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박원순 시장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