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노점상에게 인간다운 삶? 지금처럼 안 사는 거지!"

2013. 12. 2. 17:1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점상도 복지가 필요해!

 

 

 

유의선 전국빈민연합 집행위원장

 

 

 

잉어빵의 계절이다. 겨울 한철 노점 장사로 잉어빵은 단연 인기이지만, 겨울 품목 중에서도 호떡 등에 비해 팔리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짝 팔아야 한다.

노점상을 아십니까?

내가 잉어빵 노점 초보일 때 일이다. 빵틀에서 갓 꺼낸 잉어빵을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덥석 잡아버렸다. '악 뜨거!' 했으나 잉어빵을 손에서 바로 놓지는 못했다. 바로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2~3초를 더 들고 빵 진열대로 옮겨야 했다.

노점을 하던 첫 겨울에는 잉어빵을 구웠지만, 뜨거운 여름에는 가스불을 네 개 켜고 떡볶이 장사를 했고, 작년 겨울에는 핸드폰 케이스 장사를 했다. 여름에는 얼려온 생수통을 안고 있어도 땀이 멈추지 않았고, 겨울에는 발바닥에 붙여놓은 핫팩도 딱딱하게 얼어버렸다.

1초만 더 있으면 죽을 것 같은 더위와 추위에서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노점상의 생활은 참을 수 없이 뜨겁지만 들고 있어야 하는 잉어빵 같다.

노점상은 목소리가 크다. 손님을 끌기 위해 소리를 질러야 해서도, 용역과 싸우기 때문도 아니다. 하루 종일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 속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겨울철 발전기 소리까지 더해지면 귀에서는 언제나 덜덜덜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노점상은 기관지와 눈도 좋지 않다. 황사와 매연에 사시사철 노출되어 있기에 기관지가 좋지 않고, 음식 노점의 경우 하루 종일 가스불과 튀김 기름에 눈이 시달리기 때문에 늘 시큼시큼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길거리에서 장사하면서 제때 밥을 찾아먹기란 쉽지 않기에 불규칙한 식사로 위도 좋지 않고, 화장실을 가려면 마차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다가 화장실을 가니 비뇨기 계통도 좋지 않다.

무엇보다 허리와 관절이 아프다.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는 일이야 노점뿐이 아니겠지만 하루 종일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 노점상들은 대부분이 손에 류머티즘이나 관절염이 생긴다. 매일매일 무거운 물통과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물통을 더 이상 들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음식 노점은 접어야 한다.

음식 노점 하는 여성들에게는 앞치마가 패션의 완성이다. 앞치마를 입고 어디든 간다. 밖으로 나갈 일이라야 출퇴근과 집회, 간혹 몇몇이 몰려가는 노래방 정도이지만, 어디든 앞치마는 두르고 간다. 노래방에서 앞치마 입고 춤추는 건 꽤나 어울린다. 나머지 옷들은 대부분 기름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점상에게는 문화가 없다. 최근엔 스마트폰 게임으로 손님 없는 시간을 보내지만, 그나마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핸드폰을 충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마냥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고되고 고된 노동에 영화를 보거나 등산을 하는 일 등은 늘 조금 더 자는 시간에 밀리고 만다.

노점상은 자녀에게 늘 미안하다. 대부분 부부가 함께 노점을 하고, 밤늦게나 끝나기 때문에 자녀를 잘 보살피기란 쉽지 않다. 학원에 보내자니 돈이 들고, 그냥 두자니 아이가 하루 종일 방치되어 있다.

인간답게 사는 거?

노점상은 최소 12시간 노동을 한다. 내가 있던 지역의 사무국장님처럼 아침 토스트 장사까지 하는 경우에는 하루에 19시간 노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요즘처럼 노점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장사하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아득바득 일한다.

옆에 있는 노점상 분에게 물었다. "우리가 구호로 '인간답게 살아보자!'라고 외치잖아요. 인간답게 사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인간답게 사는 거? 지금처럼 안사는 거지."

노점상에게 최고의 바람이 있다면 '안정적으로 장사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운 것도, 장사가 안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적어도 단속 없이 장사하기를 바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바람이고 소망이다.

그 다음 소망으로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빼고 이야기하라면 나는 아마도 '전기와 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전기를 쓸 수 있다면 발전기의 기름값도 절약하고 작은 난로를 하나 놓을 수 있을 테니까. 여름엔 슬러시도 놓을 수 있을 테니까. 물을 가까운 데서 뜰 수 있다면 마차도 더 깨끗하고 손도 더 자주 씻고 차에 물통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일은 덜할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점상에게 어떤 복지가 필요하세요? 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단속과 전기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 빼고 이야기하라니 "복지가 우리랑 뭔 관계가 있겠어? 돈 주는 거면 필요하지만" 이란다.

수급자는 아니지만 가난하다

노점상의 대부분은 수급자가 아니다. 노인 분들을 제외하고는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정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점상 스스로도 노동 능력이 있으니까 일해서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 노점상들에게 복지는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도움 받지 않고도 살기 위해 하는 것이 노점이었다.

하계역에서 호떡 노점을 하는 할머니가 있다. 아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할머니도 수술을 내리 3년을 했다. 하지정맥류 다리 수술을 하고, 요로결석 때문에 수술을 하고, 올해는 골다공증이 심각한 상태에서 기침을 심하게 하니 뼈에 금이 가서 허리를 때웠다. 아들 병원비와 할머니 수술비로 빚이 늘었고, 지금도 아들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할머니는 당신의 치료는 뒷전으로 하고 계속 노점으로 나온다.

"65세가 되니까 노령연금 나오데. 9만 몇 천 원 나와. 노점 빼면 그게 수입의 다야. 이제 집 팔아 빚 갚고 나면 어디 들어갈 데도 없어. 나는 노점밖에 없어. 그러니까 사는 게 깝깝하지."

누군가 내게 노점상에게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피로회복제'라고 말할 것이다.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위해 할머니가 하루에 4~5병씩 마시는 피로회복제야 말로 어떠한 복지도 없는 상황에서 전혀 인간답지 않은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노점상의 비상약이기 때문이다.

노점상 중에는 제법 소득이 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같이 가진 게 별로 없다. 소수의 노점상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여전히, 언제나 가난하다.

이유는 비슷비슷하다. 월세를 내느라, 아이 교육비 대느라, 어르신들 병원비가 들고, 높은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고, 장사가 안 되면 품목을 바꾸느라, 장사가 안 되면 밀린 재료비도 내느라 한 달 가계부는 빠듯하고 노점상은 자꾸만 가난해진다.

 

▲ 지난달 11일 전주시 완산구 남부시장에서 한 상인이 추위를 잊기 위해 따뜻한 어묵과 커피를 들고 좌판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옛날에 <만원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일주일동안 만 원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오락 프로그램이다. 방송을 보면서 번듯한 집이 있고, 집에서 밥 먹는 것도 제외하고 일주일에 만 원 쓰는 걸 저리 요란스럽게 다루나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집에 들어갈 월세도 없고, 아이들의 교육비와 급식비가 들지 않고, 병원에 가도 큰 돈 들지 않는다면 소득이 조금 적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노점상은 19시간씩 거리에서 떨지 않아도 되고, 가끔은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호떡 할머니에게 의료비가 빚이 되지만 않았다면, 할머니는 집을 팔지 않아도 되고 지금 치료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세금 안 내고 거저 먹는 사람?

노점상은 노동자도 아니고 사업자 등록도 할 수 없으니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은 머나먼 이야기이다. 사실상 실업 상태에 있어도 산재를 당해도 오롯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민간 보험에 가입한 분들도 있으나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분들은 극소수이고 다시 가입하기에는 이미 만성질환 한두 가지는 지니고 있다 보니, 노점상분들이 가장 많이 가입해 있는 것은 지역건강보험을 제외하고 나면 상조서비스가 압도적이다.

노점상은 소득으로만 보면 대부분 차상위이거나 차차상위 계층이지만 노점상은 복지의 대상에서는 소득과 무관하게 감정적으로 배제된다.

'노점상은 불법이야. 쟤들은 세금도 안내는 인간들이야. 거저먹는 사람들이지'.

경기가 어려우면 노점도 늘어나지만 이러한 인식들도 팽배해져서 노점상에 대한 민원은 늘어나고 단속도 늘어난다. 노점상이 수급자인 것을 주변에서 알면 신고가 들어가기도 한다.

복지, 노점상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기초생활보장제는 오히려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복지 공약들도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최저생계비가 현실화되고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이 확대되면, 노점상들에게도 제도 혜택이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보육과 교육, 의료와 주거, 그리고 공적 연금에 대한 복지가 확대되면 자연히 노점상도 그 대상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노점상이 복지에 대해서 소극적인 이유는 '노점'이라는 손가락질 때문이다.

'장사도 하면서 수급자도 되려고? 세금도 안내면서 복지는 무슨. 실업급여에 산재보험 가입이라니 배가 불렀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복지를 스스로의 권리로 인식하고 발언하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안 보이는 듯 존재하는 것이 최선인 노점상에게도 동등하고 당당하게 복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노점상이 바라고 만들어야 하는 복지이지 않을까.

갑자기 다가온 겨울. 누구나 포장마차의 뜨끈한 어묵 하나 먹고 싶은 날이다. 거기에는 마차와 어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추위에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다. 노점은 사람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답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노점상들에게도 복지는 동등한 것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어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