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민연금 가입자의 책임

2022. 2. 4. 15:4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대선이 한 달 앞이지만 유력 후보들은 연금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청년세대를 대변한다면서도 후세대 부담을 줄여줄 연금개혁에는 소극적이다. 표 계산이 앞선 탓일 거다. 국민연금 가입자인 유권자들에게 부담이 가는 이야기는 피하겠다는 셈법이다.

실제 가입자단체들의 공약 제안을 보면 대선 후보들의 행보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양대 노총,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5~50%로 인상하는 대선 정책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보험료율 인상은 추가 소득대체율을 충당하는 수준이어서 현재의 재정불안정을 개선하지는 않는다. 또한 94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불평등끝장 2022 대선유권자네트워크’는 각 후보에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제시하며 찬반을 묻지만 보험료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이러면 후보들도 굳이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국회예산정책처, 국민연금연구원 등의 분석에 의하면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비는 2배가 넘는다. 나중에 받을 급여에 비해 보험료를 절반도 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OECD 회원국에서 국민연금만큼 수지불균형이 큰 제도를 찾아볼 수 없다. 서구 나라 대부분은 꾸준한 연금개혁으로 연금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고 있지만, 한국은 고령화 대응은 고사하고 제도 내부의 과도한 수지불균형마저 방치하고 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행정부는 5년마다 재정계산을 기반으로 연금개혁에 나서야 하건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아예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의 개편안은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이지만 보험료 인상분만큼 소득대체율도 올리므로 현재의 수지불균형을 개선하지 못한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해도 인구추계가 알려주는 건 노인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노년에도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개혁해서 공적연금 지출을 절감한다 해도, 앞으로 의료비, 기초연금 비용 등이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모두 후세대들이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감당하는 노년부양이다. 이와 비교해 국민연금은 현세대가 자신의 기여와 급여를 정하는 제도이다. 현재 제도의 수지불균형도, 후세대가 맡게 될 재정 규모도 사실상 우리의 의사결정 안에 있다.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최소한 국민연금에서는 현세대가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통 공적연금은 세대 간 연대를 구현하는 제도로 평가된다.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를 사회적으로 부양하는 아름다운 계약이다. 여기서 연대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설계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의존하며 공생할 수 있는 토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세대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지만 후세대는 비슷한 급여를 받으면서 4배까지 내야 하는 걸 세대 간 연대로 부를 수는 없다. 진정 연대를 원한다면 현세대는 국민연금에서 후세대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국민연금 수급 가능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는 법률에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문구를 넣는 조치로 해소될 수 없는, 우리의 실천이 요구되는 과제이다.


특히 청년들의 단호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보통 청년이 후세대를 대표한다고 소개되지만, 국민연금에서 청년은 이미 가입연령이기에 역시 높은 수익비가 적용되는 현세대에 속한다. 필자와 같은 장년층은 곧 보험료 납부에서 벗어나지만, 청년들은 오랫동안 국민연금 가입자로서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늦어질수록 자신의 몫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높은 보험료를 피할 수 없으며, 이를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서는 현재 장년들이 가입자로 있을 때 재정안정화를 촉구해야 한다.


이제는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려가자.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 9%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1998년 이래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물론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계층에 대한 지원책도 꼭 필요하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사회보험료 지원을 확대하고, 도시지역 가입자에게도 농어민처럼 대략 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하자. 이러면 수지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없이도 불안정 취업자들의 노후보장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금개혁 공약이 맞붙는 공론장을 보고 싶다. 정치권은 이를 표를 깎아 먹는 일로 여기는 듯하지만, 우리 부모세대가 그렇게 편협한 시민은 아니다. 서구 연금개혁에서 보듯이 연금 재정 상태를 ‘있는 그대로’ 공유하고 토론하자. 그러면 자식, 손주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무작정 떠넘길 부모는 없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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