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6. 11:58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시민단체들은 현안 대응을 위해 종종 연대기구를 구성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연금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오를 때 발족한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도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이 무거운 활동이다. 당사자 어르신들까지 나서서 온 힘을 다했으나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박근혜 정부 초기 기초연금을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드린다는 공약이 하위 70% 지급으로 수정되면서 대통령은 공식 사과를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을 앞둔 2014년 여름, 당황스러운 사실이 알려졌다. 기초연금이 오르더라도 약 50만명의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아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소식이었다.
기초생활보장에서 생계급여는 ‘보충성 원리’에 의해 정해진다. 일정 기준액(중위소득 30%)에서 가구 소득인정액이 부족한 금액을 생계급여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현재 1인 가구 기준액이 월 55만원이므로 소득과 재산 등을 합쳐 산정된 소득인정액이 20만원이면 생계급여로 35만원을 지급한다. 이 원리에서는 기초연금이 인상되면 소득인정액이 늘어나고 그만큼 생계급여는 줄어든다. 이미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던 때부터 발생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줬다 뺏는’ 금액이 약 10만원이었는데, 기초연금이 오르면서 생계급여에서 20만원이 삭감당하게 되었다. 이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줬다 뺏기’가 기초연금 논란을 계기로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일부 사회복지 학자들은 공공부조에서 보충성은 꼭 지켜야 할 원리라고 강조한다.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기초연금에서 보충성 원리를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노인 간 형평성이 훼손된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기초연금이 오르면 비수급 노인들은 매달 인상액만큼 가처분소득도 늘어난다. 노인빈곤율 1위 국가에서 긍정적인 발전이다. 대통령선거마다 10만원씩 더해져 이제 증가액이 30만원에 이르렀다. 반면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이 인상되어도 생계급여가 삭감되니 소득총액이 늘 그대로이다. 기초연금이 오를 때마다 비수급 노인과 수급노인의 가처분소득 격차가 커지는 역진적 상황이다. 생계급여도 빈약한 수준인데 기초연금마저 ‘줬다 뺏으니’ 어르신들은 탄식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년유니온,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등 빈곤 문제에 앞장서 왔던 단체들이 모였다. 비수급 노인들도 함께 나섰다.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도끼 상소를 벌이고 공원과 국회에서 샤우팅대회를 열었으며 폐지 수레를 끌며 거리도 행진했다. 수없이 1인 시위에 나서고 청계천에서 매달 촛불을 켰으며 복지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1만원씩 모아 신문광고로 뜻을 더했다.
해결의 조짐이 보였다. 언론은 어르신들의 절절한 사연을 전달하였고,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 공약으로 완전 해결을 약속했으며 마침내 ‘포용적 복지’를 주창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 모두는 정부가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억울함을 챙길 거라고 기대했고 국회 보건복지위는 10만원을 부가급여로 지급하는 수정예산안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여기까지였다. 어르신들이 보낸 민원에 청와대는 ‘관계부서가 협의, 검토 중에 있다’는 답변으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획재정부가 협조하지 않는다’며 회피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 99명이 ‘평등권’ 침해를 청구하자 헌법재판소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평등의 심화를 느낄 수 있겠으나 입법재량에 속하는 주제라며 공을 다시 국회와 정부로 넘겼다.
“더 이상 호소할 곳은 없는 거예요?” 어르신들의 좌절에 가슴이 아프고 죄송하다. 이 문제를 제기한 지 어느새 7년이니 어르신들의 주름과 시름도 깊어졌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다. 솔직히 화도 난다. 문재인 정부에 ‘포용’은 어떤 것인지.
보충성 원리는 고정된 철칙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장애인수당, 국가유공자수당, 영유아보육료, 아동수당 등은 소득인정액에서 제외되어 생계급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작년부터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서 30%는 소득인정액에 포함하지 않는 보충성 완화 조치도 도입되었다. 기초연금도 빈곤노인의 생활지원 혹은 노인 형평성을 근거로 소득인정액에서 빼면 된다. 오죽하면 당사자 노인들이 기초연금 전액이 어려우면 10만원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까.
정말 이제는 해결하자. 우리 사회 포용이 이를 담지 못한단 말인가? 10월2일이 노인의날이다. 대선 후보들은 응답하시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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