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4. 13:16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방 안을 맴 도는 사람들
고현종 노년 유니온 사무처장
천장을 보며 눈시울 붉히는 구순 노인이 있다. 90세 빈영균 어르신이다. 반지하 단칸방에 산다. 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 나오고 주방에서 세 걸음을 옮기면 잠을 자며 밥을 먹는 방이다. 방에서 다시 두 걸음 옮기면 침대가 있다. 문에서 침대까지는 다섯 걸음이다. 경증치매, 고혈압, 전립선 비대, 파킨슨병을 앓아 혈압, 순환기내과, 정신과, 비뇨기과, 정형외과 약을 복용한다.
고향이 개성인 어르신은 북에 가족을 두고, 51년에 남으로 왔다. 46년간 양복점과 공장 생활로 생계를 이었다.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 때문이었는지 어르신은 평생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
안부 인사차 들렸다. 어르신의 거동이 불편해 보이고 얼굴에도 힘든 표정이 가득하다. 모시고 병원에 갔다.
집주인도 받는 기초연금 지하 세입자는 못 받는다
검진 결과 방광에 종양이 의심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어르신은 방에 누워서 말한다.
"아프지도 않은데 무슨 입원이냐, 다 필요 없다. 내 병은 내가 안다."
"어르신 죽기 전에 통일 동산에 가서 북녘땅을 바라보며 가족에게 인사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러려면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해요"라고 내가 말했다.
어르신은 누워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눈시울만 붉혔다. 며칠 후 어르신 상태가 나빠졌다. 소변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빨리 병원으로 모셔야 했지만 한사코 병원 가기를 거부하셨다. 어르신은 기초생활 수급자라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데도 입원을 거부하셨다.
간병비 부담 때문이었다. 기초생활 수급자라도 간병비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집주인에게 어르신에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달라고 부탁하며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기초연금 받은 것만 모았어도 간병비 걱정은 안 하겠네. 만약을 위해 나도 기초연금 일부를 적금으로 모아놓고 있는데…." 집 주인이 딱하다는 투로 말한다.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는 기초연금을 줬다 뺏어 간다. 시민, 복지 단체에서 몇 년간의 문제제기로 2018년, 2019년에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부가급여 형태로 수급노인에게 10만 원이라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국회 예·결산특별위원회에서 부결되었다.
집주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뜨악한 표정으로 말한다.
"집주인도 받는 기초연금을 반지하 세입자가 못 받는 경우가 정상인 나라야!"
빈영균 어르신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몇 개월 후 돌아가셨다. 그 몇 개월 동안 고통을 부여잡고 지하 단칸방을 맴돌았다.
사람을 위해 제도가 존재하는가? 제도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가?
최신현(75세.남)씨는 서울에 살다 형편이 어려워져 수원으로 내려왔다. 전에는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자주 올라왔지만, 지금은 수원에 있는 임대아파트 방안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돈이 부족해서다.
"서울 올라가면 밥 먹어야지, 친구 만났으니 밥 먹고, 하루 한 값 담배 사 피고 하면 생계급여 50만 원으로 한 달을 살 수 없어. 그래서 방 안에만 콕 박혀 있지."
"기초연금만 줘도 한 달에 한 번 서울 친구들도 만나고 외롭진 않을 텐데… 이렇게 지내다 방 안에서 고독사하는 거지 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노인은 기초생활수급노인에 기초연금을 줬다 뺏어가는 근거는 뭘까?
보건복지부와 재정당국은 수급비 이외의 소득이 생기면 소득인정액으로 계산되어 그만큼 공제해야 한다고 한다. 보충성의 원리를 적용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장애인 수당, 아동보육료, 양육수당, 국가유공자 수당 등은 소득인정액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난한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만 소득으로 인정해서 공제를 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아닌 노인들은 월 30만 원의 소득이 발생하니 기초생활급 노인과는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는 가난한 노인은 더 가난해지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최신현 어르신은 보충성원리라는 제도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보충성원리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주객이 전도됐다고 한탄한다.
"이럴 바에야 기초연금 신청을 포기할래. 줬다 뺏어 가는 일을 반복하는 것도 화가 나고."
이 때문일까? 기초생활 수급노인 49만 명 중 포기자가 6만 명에 달한다. 2017년과 비교해도 2020년에는 9.8%가 늘었다고, 국정감사 자료에서 밝혀졌다.
간병비 때문에 입원과 검진, 진료를 거부하는 반지하 단칸 방안을 맴도는 빈영균 어르신, 밥값, 담뱃값 부담으로 방안을 서성이며 하루를 보내는 최신현 어르신.
고통스럽게 방에서 삶을 마감했던 빈영균 어르신이 다시는 없어야 하고, 최신현 어르신처럼 지금도 밥값 때문에 방안을 서성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기초연금이라는 작은 햇살이 방을 비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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