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0. 15:07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대선 후보 공약에서 여야 간 확연히 입장이 갈리는 주제가 있다. 정책의 차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 주제는 한쪽은 강조하고 다른 쪽은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래 재정불안정으로 논란이 큰 국민연금 이야기다.
전자는 국민의힘 후보들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40세대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윤희숙 의원은 “공적연금 개혁은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위기”라며 연금개혁을 핵심 의제로 제안하고, 원희룡·최재형 등 경쟁 후보들도 힘주어 말한다.
후자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다. 박용진 의원만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뿐 다른 후보들에서는 의견을 찾을 수 없다. 이재명 지사는 연금 개혁에 대한 질문에 ‘국민연금도 공무원연금처럼 가입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동문서답으로 회피하고 이낙연 전 총리는 국민연금기금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할 뿐 재정적 지속 가능성에 대해선 말이 없다.
민주당만이 아니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역시 2018년 연금개혁안을 발표한 이후 침묵이다. 어느 나라든 연금개혁은 불편한 과제이지만 그래도 개혁의 총대를 메는 건 행정부이다. 국민연금법도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이어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하라고 명한다. 그런데 정부는 연금개혁안을 제출했을 뿐 이후 두 손을 놓고 있다. 역대 모든 정부들이 국민연금이든 공무원연금이든 적어도 임기 중 하나는 개혁하였는데 문재인 정부만 유일하게 아무것도 안 한 정부로 남을 듯하다.
사실 몇 해 전까지 정부·여당은 호기로운 기세로 국민연금을 다루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상향하고 보험료율은 9%에서 10%로 올리자고 주장했다. 어떻게 10%포인트를 더 받는데 보험료율은 단 1%포인트만 더 내도 되느냐고 물으면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그렇게 나온다 답했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보험료율은 어떻게 하냐는 거듭된 질문에 “설계에 따라서는 국민연금 보험료 증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2018년에는 대통령으로서 복지부가 보험료를 올리는 방안까지 포함한 개편안을 보고하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수정안을 만들어오라 지시했고 결국 재정안정화가 빠진 정부 개혁안이 발표되었다.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수급자, 혹은 사연금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이면 안다. 국민연금이 가입자에게 얼마나 혜택이 큰 제도인지를. 최근 기대여명을 반영하여 국민연금을 분석하면 수익비가 약 2.2배에 이른다. 연금수리적으로 낸 것만큼 받는다면 9%가 아니라 약 20%를 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미래로 갈수록 이 수지적자가 쌓이고 쌓여 미래세대의 부담이 높아지는 이유이다. OECD 회원국을 둘러보아도 국민연금처럼 재정불균형이 큰 제도를 찾을 수 없다.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을 위해서는 현재 소득대체율에서도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건 상식에 가깝다.
궁금하다.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도 급여를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또한 이상하다. 정부·여당은 국회까지 다수인데 왜 그토록 확신에 찼던 개혁안을 추진하지 않을까?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사태’이다. 막상 집권하니 부실한 근거로 만들어지고 미래세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방안을 강행할 자신이 없어진 거라 판단한다. 국민연금은 젊었을 때 내고 은퇴 이후 받는 제도이다. 한 가입자가 국민연금 재정에 미치는 효과를 진단하려면 70년 이상의 장기추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상대적으로 기금 여력이 있는 전반전, 즉 적립금이 쌓여 있는 기간까지만 분석하니 재정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착시에 빠졌던 것이다.
이제야 국민연금 재정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일까? 자신에 찼던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고, 국회 과반을 차지한 여당은 연금개혁을 잊어버렸고, 대선 후보들은 반대편의 맹공에 대응하지 못한다. 단지 정치 공방으로 넘길 의제가 아니다. 국정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의 무책임은 미래세대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무척이나 심각한 일이다.
민주당이 청년정책 총괄기구로 청년미래연석회의를 만들었다. 지난 9일 첫 회의에서 청년 의장은 초고령사회 앞에서 ‘연금개혁 의제를 회피하지 말자’며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묻는 토론자리를 제안했다. 자기 당의 청년 목소리이니 귀를 기울일까, 아니면 국가가 보장하니 걱정 말라며 또 그냥 넘어갈까.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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