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6. 12:14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주거 사다리에서 '점유중립' 주거정책으로
김기태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주거 사다리'라는 신화
전셋집을 구했다. 운 좋게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 보증금대출'이라는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이자는 연 1.2%. 전세금 8000만 원의 80%인 6400만 원을 빌렸더니 월 이자는 7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꼭 이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최근에는 워낙 금리가 낮아 일반적인 전세대출을 받아도 대출이자가 아주 저렴하다. 1억 원이라는, 20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금액을 보증금으로 대출받아도 월세 대신 내는 연이율 3% 기준으로 25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기준금리가 0.5%에 불과한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전세로 살지 않고 월세로 사는 친구들은 왜 전세로 살지 않고 월세로 사는 것일까?
작년 민달팽이유니온과 함께 '주거취약청년 주거지원 방안'이라는 연구를 하면서 다양한 점유 형태로 거주하는 청년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세로 거주하는 청년들은 대부분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거나 다녔던 경험이 있었던 반면, 월세로 거주하는 청년들 중에서는 다양한 사연이 많았다. 생애 동안 안정적인 수입이 없이 불안정, 비정형 노동에 종사하여 은행에서는 당연히 대출이 안 될 것이라 생각하는 청년이 많았다. 월세도 보증금을 최소한 1000~2000만 원씩 요구하다 보니 부모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해 무일푼에서 시작한 청년은 고시원을 전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고시원에 거주하던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해 최소한의 보증금을 모아 월세로 이주하고, 월세 집에서 더 큰 목돈을 모아 전세로 이주하고, 안정적인 전셋집에서 대출을 일으켜 자가로 넘어가는 것을 우리는 '주거 사다리'라고 부른다. 기성세대의 경험과 머릿속에 이 주거 사다리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거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는 청년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점유형태 변화를 살펴보면 1995년에 29.7%였던 전세 거주 비율은 2015년 15.6%로 감소했고 대신 월세 거주 비율은 14.2%에서 22.5%로 증가하였다. 특히 월세로 주거를 시작하는 청년이 늘어났는데, 20~24세의 월세 거주 비율은 1995년 45.2%에서 2015년 77.6%로 상승하였고, 20대 내내 월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구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거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여전히 '주거 사다리'를 구축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정책을 총망라한 '주거복지로드맵'의 공식 발표명이 '사회통합형 주거 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로드맵'일 정도로 주거 사다리는 주거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현 정부의 주거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주거 사다리의 붕괴에 근거한다.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LTV규제와 DTI(DSR)규제를 강화하였지만, 이는 금융 레버리지를 통한 주택 구입 기회를 청년들에게 빼앗은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월세 거주 비율과 임대주택 정책에 대해서는 "전세가 종말한다", "전 국민이 평생 월세로 살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가해졌다. 전세 종말을 우려하고 "전 국민이 평생 월세로 살라는 것이냐?"는 말에는 월세살이는 평생 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집값 상승을 통해 자산을 축적한 사람이 보기에 월세는 매달 열심히 번 소득을 착취당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주거 사다리 이행 지원 정책의 역진성
주거 사다리를 잘 구축해 월세 가구는 전세로, 임차가구는 자가로 이행시키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꼭 추진해야 할 정책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거 사다리를 일반적인 시민의 주거 경로로 상정할 경우, 정부의 주거정책이 시장에서 필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사람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시장에서 필요를 충족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더 큰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즉, 주거 사다리에 기반한 정책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층보다는, 월세에서 전세로, 임차에서 자가로 이행할 능력이 있는 계층이 주요 정책 대상으로 한다. 상대적으로 소득 및 자산 수준이 취약한 계층의 주거권보다는 사다리 상층부로의 이행이 가능한 계층에게 가장 큰 수혜를 주는 것이다.
주거 사다리 이행을 지원하는 정책으로는 대표적으로 전세대출과 구입자금 대출이 있다. 대표적인 전세대출 프로그램은 '버팀목전세자금', 구입자금 프로그램은 '내집마련 디딤돌대출'이다. 이러한 대출 위주의 프로그램들은 정책 수요자의 필요보다 상환능력을 고려하기 때문에 신용도와 연소득, 일정 비율의 자기부담액이 필요하다. 전세대출은 보증금의 약 20~30%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며, 구입자금대출은 무주택자가 생애최초 취득 시 매매가 혹은 분양가의 30~4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이는 이론상 대출 최대치이며, 소득 수준에 따라 최대 대출금액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전세가 2억 원의 주택을 임차할 시 최소한 4000~6000만 원을, 약 4억 원 정도의 주택을 매매할 시 1억 2000만 원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금액을 마련할 수 있는 계층에게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면서, 주거정책을 통해 저렴한 금리로 보증금과 구입자금을 조달한 자가 및 전세 거주자의 주거비는 공공에서 분담하는데 비해 월세 가구는 자산이 부족해 보증금 대출 금리보다 높은 전환율로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 또는 부모로부터 자산을 증여받을 수 있는 가구에게는 대출을 통한 주거 사다리 이행 지원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거나, 자산 증여를 받지 못하는 가구들은 계속해서 월세로 거주할 가능성이 크다. 월세로 거주하는 가구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주거급여'가 있다. 주거급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중 하나로서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의 45% 이하인 가구를 대상으로 임대료를 지원한다. 2021년 기준중위소득의 45%는 1인 가구 기준으로 소득인정액이 월 82만 원 이하여야 하는데, 이를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10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버팀목 전세자금 소득기준은 연 5000만 원으로 연소득이 1000만 원과 5000만 원 사이에 위치한 임차가구가 공공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전세대출을 받거나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전세임대 제외) 재고는 2019년 기준 110만호에 불과해 전체 주택 재고의 6% 정도로 입주 경쟁이 치열하고, 원하는 지역에 없을 가능성도 크다. 또한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자부담을 마련해야 하고, 주거비 등 생활비 지출을 제외하고서 매년 수백~수천만 원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주거급여는 받지 못하지만 최저임금 언저리에 있는 연소득 1000만 원~2500만 원의 저소득·불안정 노동 가구는 주거 사다리 이행을 지원하는 기존 주거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
주거 사다리 이행 지원을 더 확대한다면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얼마 전 집값이 너무나 상승해 청년들의 자가 취득이 어려워지자 '실수요자' 청년을 대상으로는 LTV를 최대 90%까지 완화하고, 40년간 갚을 수 있게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6억 원짜리 주택 매입 시 LTV 70%를 적용하면 4억 2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90%를 적용하면 5억 4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해 집값의 10%인 6000만 원만 있어도 집을 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최근 강화된 DSR규제도 40년으로 상환기간을 확대하면 회피할 수가 있다. 주거 사다리 이행 지원을 개선하고자 하는 조치들이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모든 청년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와 같은 대출금액은 이론상 최대치이고, 실제 대출은 개인의 상환 능력에 기반해 이루어진다. DSR 40% 규제 기준으로 5억 원을 연이율 3%로 대출하기 위해서는 대출기간 30년을 적용하면 연소득 6300만 원이 넘어야 하고, 대출기간 40년을 적용하면 연소득 5400만 원이 넘어야 한다. 아무리 대출 한도를 확대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가로 이행할 여력이 있는 가구에게 더욱 큰 지원이 이루어질 뿐, 가장 주거지원이 필요한 저소득 가구가 대출을 이용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미 주택 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상황에서 일부 고소득 일자리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일자리에서 얻어지는 잉여 소득으로는 LTV의 90%를 겨우 충당하거나 충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평생 잉여 소득이 원리금상환액보다 적은 경우 주택 가격이 지금보다 더욱 상승하지 않는 한 대출을 상환할 수가 없다. 대출을 통한 자가 이행 지원 정책이 지속되면, 정치적으로 주택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사다리를 오르지 않아도 된다면…
모든 사람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끊임없이 마련되지 않는 한, 주거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고 월세로 남아있는 계층은 언제나 존재한다. 앞으로는 주거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는 월세 가구도 부담가능한 주거비로 거주할 수 있도록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주거 사다리 정책이 아닌 '점유중립적(tenure-neutral)' 주거정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해외에서는 점유중립을 "주거에 있어 소유와 임차 간 경제적으로 공평한 상태", "정부의 주거정책에 있어 특별 보조금, 세금 감면, 특정 가구에 한정된 점유 형태 등 차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자가 소유를 촉진하기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는 직접 대출, 대출이자 이차보전, 1주택 소유자를 위한 세금 감면 등의 편익을 제공하고 있고, 무주택 임차가구에게 공공주택 분양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계속 임차로 거주하는 가구를 대상으로는 월세 세액 공제 등의 혜택이 있다. 점유중립적 주거 정책이란 자가 촉진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아닌, 점유 형태별로 이용할 수 있는 정책적 편익의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점유중립적 주거정책에 따르면 대출 프로그램에 치우친 주거비 지원 정책을 월세 지원 정책으로, 공공분양에 투입되는 자원을 공공임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반가운 것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청년을 중심으로 월세 지원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애 1회, 최대 10개월, 특정 연령대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부산광역시와 서울특별시는 보증금 대출 일변도에서 벗어나 각각 10만 원과 20만 원의 월세를 직접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경기 수원시, 전남 광양시 등에서 청년 주거비 지원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소득기준도 기준중위소득의 120%로 1인 가구 기준 약 210만 원 정도까지를 포괄하고 있어 자산이 없는 근로 청년들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지방정부의 주거비 지원은 1년 정도 단기로만 이루어지고 있고, 대상도 청년, 신혼부부에 집중되어 있다.
월 주거비뿐 아니라 주거와 관련된 다른 부분에서도 점유중립이라는 원칙에 의한 다양한 정책들을 고민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보증금이 월 임차료 대비 매우 높고, 양호한 주택일수록 높은 보증금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월세 지원을 늘리는 대신, 보증금을 월세의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거나, 보증금을 임대인의 DSR에 포함하는 등 보증금 부담으로 인해 주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주거비뿐 아니라 점유 형태에 따른 거주 기간 차이와 관련된 정책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자가 가구의 소유권과 거주권은 수용에 의한 개발이 아닌 이상 강력하게 보호받는 반면, 임차가구는 그간 보장된 거주 기간이 2년에 불과했고, 2020년 7월 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어 최대 4년의 거주 기간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갱신 거절 사유가 아닌 이상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게 거주 기간을 보장하는 것은 어떨까?
주택 구입은 한 가구의 평생 소득을 담보로 잡는, 리스크가 큰 행위이며, 주택 가격이 높아질수록 리스크의 크기도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것이다. 모두가 자가 소유라는 리스크를 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기 집을 꼭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더라도차별 받지 않는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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