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소액기본소득의 효용성 의문

2021. 3. 5. 19:0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기본소득이 대통령선거에서 핵심 주제로 자리 잡을 듯하다. 현행 소득보장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논의이기에 전향적인 일이다. 다만 기본소득이 국가정책의 장으로 들어온다면 앞으로의 토론은 엄격해야 한다.

 

우선 기본소득의 실체를 명확히 하자. 근래 기본소득이 바람을 타면서 웬만한 현금복지에 기본소득 이름이 붙고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상표는 존중하더라도 내용물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기본소득 바구니에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네 가지 유형이 담겨 있다.

 

첫 번째는 모두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는 완전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 옹호자들도 근래 충분성을 명시하지 않듯이 지금 논의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는 완전기본소득에서 금액을 낮춘 소액기본소득이다. 관련 법안도 제출될 만큼 정치권의 의제로 부상했다. 세 번째는 아동, 청년, 농민 등 특정 대상에게 적용되는 범주형 기본소득이다. 복지국가에서 동일한 제도를 사회수당이라고 부르듯이 논란의 제도는 아니다. 네 번째는 취약계층에 한정된 사회부조형 기본소득이다. 실업부조 수급자를 대상으로 삼은 핀란드의 실험이 여기에 속한다. 이는 취약계층 복지에서 근로동기를 독려하려는 노력으로 역시 찬반 제도는 아니다.

 

결국 우리가 다룰 주제는 소액기본소득이다. 이는 아동, 실업, 빈곤 등 지원의 필요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지급한다는 점에서 범주형이나 사회부조형과는 완전히 다른 제도이다. 아프리카 어디에서 취약계층에게 일괄 현금을 지급했으니 혹은 핀란드도 실험했으니 소액기본소득을 시행하자는 엇박자 주장은 곤란하다. 향후 토론은 전 국민 소액 지급의 타당성에 집중해야 하며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유부의 분배? 이는 토지, 지식, 빅데이터 등 모두의 노력과 네트워크로 형성된 공동자산은 동일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근래 기본소득의 핵심 근거이다. 그런데 공유부만일까? 자동차공장 역시 오랜 노동과 지식의 축적물이다. 마트에 진열된 물건도 소비자가 구매해야 비로소 상품으로 완성된다. 공유부도 특정한 역사적 형태일 뿐,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생산자원이라는 점에서 기존 자산과 다르지 않다. 자동차공장이든, 공유부든 모두 사회적 노동과 역할의 결과이기에 여기서 조성된 공공재원이 꼭 동일액으로 분배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부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든, 분배는 별도의 ‘정치’ 영역이다.

 

둘째, 재분배 효과? 동일액을 제공하는 기본소득에서 재분배는 지급 방식보다는 누진적 세입에서 비롯된다. 세입과 세출에서 동시에 재분배를 구현하는 일반 현금급여들과 비교해 기본소득은 공공재정의 사용에서 가장 재분배가 적은 제도이다. 불평등이 심각하다면서 최소의 재분배에 머물러도 될까? 상당수 시민들이 낸 세금보다 더 받기에 증세 가능성을 내세우지만 서구 복지국가들은 기본소득 없이도 높은 세입을 달성했다. 증세 정치에서 관건은 신뢰와 연대임을 잊지 말자.

 

셋째, 단계적 인상? 일단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 올려가자는 제안이다. 닭도 병아리에서 출발한다는 비유도 등장했다. 그런데 두 기본소득 유형이 속한 사회경제적 환경의 다름을 직시해야 한다. 병아리와 닭은 같은 환경에서 자란다. 반면 완전기본소득이 작동하는 사회는 대부분이 탈노동 지위에 있는 인공지능사회에 가까울 것이나 지금 도입하자는 소액기본소득은 심각한 불평등체제 안에서 운영된다. 적합하지 않은 공간에 억지로 병아리를 넣고 닭으로 크라고 주문할 수는 없다.

 

대안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평등하다면 필요 기반의 소득보장이 최선이다. 이는 실업, 빈곤 등으로 소득의 어려움에 처한 누구라도 지원하기에 보편주의 원리와도 상통한다. 무차별 지급이 아니면 선별로 간주하는 협소함을 넘어서야 한다. 사각지대에 대응할 수 있냐고? 앞으로는 가능하다. 대한민국에는 전자거래와 디지털화 덕택에 소득·매출 자료가 대부분 존재한다. 정부가 확고한 의지로 실시간 소득파악체계를 구축하면 사각지대 없는 소득보장을 추구할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사회도 대비해야 한다. 탈노동 시민이 많아지면 당연히 필요 기반 소득보장은 더 넓게 펼쳐질 것이다. 돌봄과 참여 활동에서 사회적 지원 필요가 인정되는 만큼 소득보장 범위도 돌봄수당이나 참여소득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인공지능사회가 도래한다면 모두의 필요가 비슷하기에 인류사회의 소득보장은 자연스럽게 완전기본소득의 모습을 띨 수 있다. 진정 완전기본소득을 원한다면 지금 키워야 할 병아리는 소액기본소득이 아니라 필요기반 소득보장이라는 말이다.

 

 

 

출처: 소액기본소득의 효용성 의문

 

[정동칼럼]소액기본소득의 효용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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