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3. 15:33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중대재해 등에 관한 법률' 성과와 과제
이성훈 청년가치팩토리 연구소장
지난 8일 중대재해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전국 기온이 마이너스를 향하며,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날이었다. 그날 민의의 전당 국회에는 한파를 몸과 마음으로 견디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산업재해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의 유가족이다.
유가족은 중대재해기업처벌 제정을 위해 뼛속까지 시린 한파를 견디며 단식 농성을 이어왔다. 코로나19만큼 무서운 산업재해가 노동자들의 일상에 있다는 것을 체감한 이들이었다. 유가족들은 산업재해로 인한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한 달간이나 단식을 이어갔다.
그러나 국회는 유가족의 염원에 답하지 못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닌 '중대재해 등에 관한 법률'로 이름을 바꾸어 법안을 통과시키며 많은 과제를 남겼다. 단식과 한파를 견디면서 투쟁을 이어왔던 유가족과 운동본부 사람들은 한파보다 더 시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중대재해 등에 관한 법률' 제정 과정
대한민국은 산재로 연간 2200여 명이 죽고, 하루 평균 7명이 죽는다. 법안이 통과되는 당일에도 제주에서 산재사고로 한 분이 돌아가셨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일명 '산재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이다.
정의당이 처음 제안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은 산재사고를 줄이기 위해 기업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중대 산업재해 발생 시, 사고의 책임 소지를 기업에 묻고 강력한 벌금과 후속 대책을 마련하게 만드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정의당의 원안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의해 많은 제동 장치가 달렸다. 대표적으로 사업장 규모와 법 적용 범위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우선 법률 시행은 2022년으로 미뤄졌다. 50인 이상 사업장은 1년 유예 후 적용되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의 유예기간이 적용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최소한 3년은 중대재해가 일어나도 처벌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제외조항 추가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즉, 하도급의 구조로 법망을 피해갈 유인이 커졌다.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 등 불안정노동자가 산재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국회에서 수정되며, 법안 제정의 본래 의의에서 많이 후퇴한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을 위해 노력한 정의당, 유가족,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운동본부는 본회의를 앞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후퇴한 법안에 대한 찬반 논의가 장시간 이어졌다. 정의당은 결국 기권이라는 당론을 채택했다. 유가족의 아픔과 뜻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중대재해 등에 관한 법률'의 성과와 과제
애초 정의당이 제안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담합으로 통과된 '중대재해 등에 관한 법률'은 차이가 크다. 통과된 법안을 보면, 성과도 있고 과제도 있다.
무엇보다, '중대재해'라는 개념이 법률에서 처음으로 기준을 형성했다. 재해에 대한 사업자의 책임 소지가 법적 이사들에게 넘어가면서 책임 소지가 분명해졌다. 책임자 개념을 둬 산재를 사회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소기의 성과를 안고 앞으로 남은 문제들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업주의 법적 책임 소지를 명확하게 만들었으나 금액의 상한선으로 인해 처벌 수위가 낮다. 산재 발생 시 사업주는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되었다. 형사처벌 조항이 굉장히 약해지고 금전적 배상과 벌금형에 치중되다 보니 오히려 거대 기업에게 벌금을 통해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다. 그래서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오히려 벌금만 내면 끝이라는 인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형사처벌의 수위를 강화하고 처벌 형량을 명시하는 등의 명확한 사업주에 대한 책임 부과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5인 미만에는 적용되지 않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중대재해 앞에서 원청과 하청 노동자 간 간극이 더 벌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감시자인 공무원들에 대한 책임도 추가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공적 감시의 책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쇳물은 아직 식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는 중대재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산재는 개인의 책임이었다. 이번 법을 계기로 산재는 국가와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되었다. 중대재해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데 있어 의의가 크다. 그러나 앞에서 법안을 보며 다룬 것처럼 수정해야 할 보완점이 많다.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그 쇳물을 쓰지 마라'라는 시가 있다. 철강업체 용광로에 빠진 20대 청년을 추모하며 만든 시다. 이 시의 문구가 가진 의미는 산업재해의 위험성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일상 공간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산재 사건을 기리자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을 펼치는 농성장에서 가장 많이 울렸던 노래 가사이기도 하다.
국회에서 통과된 '중대재해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조금의 전진은 있었지만, 쇳물이 다 식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다. 붉은 빛 쇳물에는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희생이 어려 있다. 미진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금 산재 사망자들의 넋을 기리며, 우리 사회에 식지 않은 쇳물이 언제 어디에나 남아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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