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 11:41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비영리단체 투명성에 대한 이해와 오해
유원선 공익네트워크 <우리는> 대표
작년 비영리단체의 큰 이슈 중 하나였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기부금 투명성과 관련된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오던 정의연이 다른 사람도 아닌, 당사자 할머니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본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사자 할머니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정의연에서 '영수증과 증빙 서식으로 증명하겠다'고 응대하면서 논쟁은 투명성으로 번졌다. 이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알지 못했던 국세청 공시자료를 기자들이 앞다투어 따져 묻기 시작하며 더 큰 의혹으로 확산되었다.
공익법인 국세청 공시라는 것은,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공익법인이 그 내용을 투명하게 모든 시민들에게 공개하여 신뢰도를 높이고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 기부자들이 찾아보기 어렵고 관심 있는 단체의 내용을 찾아본다 해도 양식과 내용이 알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에 원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행위로 그치는 상태였다.
공시를 등록하는 단체 입장에서 보면 각 양식에 채워 넣어야 하는 내용이 분명하지가 않고 이에 대해 문의해도 이를 담당하는 국세청이나 세무서에서는 해당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공시에 오류가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인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연의 국세청 공시 지출 내역이 조목조목 따져지기 시작하자, 각 비영리단체의 업무 담당자들은 '본인들은 어떻게 작성했는지' 본 단체의 공시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어 정의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지적사항임을 확인하거나, '이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했던 건지? 정답은 뭐였는지?'를 찾아 헤매는 대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현재 사회복지법인인 '함께걷는아이들'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7번의 공시를 확인하고 올리는 작업을 해왔지만 작년만큼 우리의 공시를 수도 없이 열어 본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공시의 오해 1: 대형 배분기관 중심의 양식
현재 국세청 공시의 양식은 대형 배분기관을 중심으로 되어있다. 예를 들어 '공익목적사업의 비용세부현황'을 살펴보면, 1. 사업비용을 (1) 분배, (2) 인력, (3) 시설, (4) 기타비용으로 구분하여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대형기관의 경우, 소규모 현장 기관들에게 사업비를 분배하거나 수혜자에게 장학금이나 지원금을 직접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 (1) 분배 비용으로 상당 비용이 잡히게 된다. 하지만 식사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의 지출에 해당하는 식재료가 (4)기타비용으로 책정될 수밖에 없다. 집을 짓거나 나무를 심는 등의 활동을 하는 단체나,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옹호활동을 주 활동으로 하는 시민단체들도 (1)분배비용은 없고 (4)기타비용으로 주요 사업의 지출이 배치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시민들이 볼 때는 '분배사업'은 없고 '기타비용'만 있는 비영리단체에 대해서 '뭘 하는데 기타 비용만 있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실제 상당수의 비영리단체들이 장학금, 지원금 등을 직접 배분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이나 설명이 없어서 위와 같은 의문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의연 사건 이후 엄청난 논쟁이 되었던 '기부금품수입및지출명세서'도 마찬가지로 기부금이 지출된 지급처명(성명/단체)와 수혜인원, 금액을 적게 되어 있다 보니 수혜처와 수혜자가 있는 배분기관은 문제가 없으나 위와 동일한 이유로 비용을 처리한 업체명만 있는 곳들은 이해보다는 오해로 빠지기 쉬운 정보가 제공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의연처럼 모금행사를 하고 나서 장소비용 집행(술집이어서 문제가 되었다)을 적는다든지, 홍보물을 지출하고 홍보물업체를 적는다든지 하는 정보는 단체의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공시의 오해 2: 다양한 양식과 양식별로 다른 총액
알고 보면 비영리단체 공시는 국세청 공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단체 홈페이지에 재정 및 운영 전반(이사회 회의록 등)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고, 관할부처에 사업 및 재정보고를 모두 제출하고, 국세청에서 운영하는 공시 사이트에도 두 가지 버전으로(공익법인 결산 서류 등 공시,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공개) 공시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이 각각의 공시가 다른 관할부처, 다른 법에 근거하다 보니 양식도 조금씩 다르고 포함되는 금액도 달라서 모든 공시를 다 살펴보고 나면 오히려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보조금을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고 물품기부금액을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는 차이들이 기부금 총액의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왜 총액이 다르지? 금액이 맞지 않네? 라는 생각에 자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고 작성하는 단체 입장에서는 양식에 따라 다시 모든 재정자료를 재가공해야 하는 비효율이 따르게 된다.
공시의 오해 3: 투명성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
작년 정의연 사건 이후 국세청 공시가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국세청에서 모든 단체의 공시 내용에 대해 잘못 기재된 내용에 대한 지적사항을 전달했다. '기부금품지출명세서'의 수혜인원에 999명 혹은 111명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여 작성한 내용이라든지, 모든 지출을 100만 원 단위로 쪼개서 작성하라든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지적사항이었다. 100만 원 이상의 지출을 모두 나열하라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닌데, 예를 들면 100만 원의 장학금 혹은 결연후원금을 받은 아동을 개별 이름으로 모두 나열해야 하는 문제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왜 수혜자의 이름이 공개되어야 할까? 수혜자뿐 아니라 기부자도 마찬가지이다. 국세청 공시 양식 중에는 당해연도의 출연자(2000만 원 이상의 기부자)의 이름과 기부 금액 등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기부하는 것이 공개되는 게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름과 금액이 모두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기부자도 많다. 예를 들면 기부한 셀럽들의 기부액을 비교해 본다거나 어떤 기업이 어디에 얼마를 기부했는지를 확인하고 왜 우리에게는 하지 않았는지 항의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공시제도가 잘 안착되기 위해서
중소규모의 비영리단체와 변호사, 회계사 등의 전문가들의 모임인 '공익네트워크 우리는'이라는 모임이 2018년 시작되어 활동하고 있다. 비영리단체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올리기 위한 모임이다. 본 모임에서는 작년 정의연 사건 이후 국세청 공시에 대한 현장의 어려움, 양식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간담회를 열고, 각 부처(국세청, 기획재정부, 국무총리실)에 '공익법인 국세청 공시 개선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현장의 요구에 담당부처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하는 테이블을 갖게 되었고, 올해 현장의 요구 중 일부였던 국세청의 2가지 다른 공시(공익법인 결산 서류 등 공시,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공개)가 일부 합쳐지는 시행령 개정이 이루어졌다.
기부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는 이에 대해 투명하게 사용하고 이를 잘 공개하는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공시가 더 원활하게 잘 운영되어야 더 많은 시민과 비영리단체가 소통할 수 있고 기부도 더 활성화될 것이다. 현장의 비영리단체들은 '내가 공익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의 과정과 운영을 어떻게 투명하게 보여줄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하고, 정부는 소규모의 비영리단체들이 이러한 공시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과 노력 또한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요즘 가속화되는 비영리단체의 규제를 보면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점차 강화되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규제 강화는 자칫 문제를 가진 몇몇 기관들을 제재하려다 건강하고 다양하게 활동하는 소규모의 많은 단체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부금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모든 비영리단체들을 싸잡아서 비윤리적 집단으로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도 작성하는 사람도 쉬운 방식으로 투명한 공시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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