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文대통령 공약 '부양의무자 폐지' 못해 또 사람이 죽었다

2020. 12. 23. 23:5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가난한'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지난 12월 14일 방배동 모자의 가난했던 생애와 김 씨(60대 母)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들 최 씨(30대 子)에 의해 5개월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방배동 모자는 재건축 지역의 세입자로서 2018년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 주거급여 수급을 받으며 김 씨의 공공일자리 소득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최 씨는 발달장애가 있지만 장애 등록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김 씨는 과거 뇌출혈 수술 이력이 있었으나 건강보험료를 장기 체납한 상태였기에 병원을 맘 편히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씨의 사망 원인은 병사로 추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김 씨는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복지제도를 보장받지 못하고, 돌봄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며 노동해야 했던 가난의 고통을 짊어진 이웃이었다. 김 씨 사망의 책임은 가난한 사람의 삶이 걸린 문제를 예산과 동등한 가치로 저울질하며 빈곤 문제를 부차적으로 취급해 온 우리 사회에 있다.

 

 

▲ 빈곤단체 회원들이 12월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방배동 김 씨를 추모하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미이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빈곤사회연대

 

 

조사와 발굴, 반복되는 실효성 없고 무책임한 대책

 

김 씨의 죽음이 알려진 뒤에 서초구청은 "방배동 모자가 주거급여 수급 가구였기 때문에 사각지대로 보지 않았다"며 "주거급여를 수급 받고 있는 2인 가구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황망했다. 방배동 모자가 주거급여 수급권만 보장받고 있었던 이유는 다른 정기적인 소득이나 재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서 폐지되었고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모자는 동사무소에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이혼한 전 남편 등 부양의무자에게 연락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 수급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생계와 의료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수급 신청자가 직접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지방생활보장위원회에서 가족 관계 해체 여부를 심의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특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보를 알고 찾아가서 강하게 주장해야 심의받을 기회가 주어질까 말까 하다. 심의를 올리겠다며, 앞으로 보장받게 될 급여를 부양의무자로부터 징수할 수 있다는 내용에 서명해야 한다는 협박을 듣게 되는 것도 다반사다. 아무리 관계가 소원해진 관계라도 가족에게 뺏어서 주겠다는 내용에 선뜻 동의할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경우에도 수급 신청자의 현재 위치와 상황이 가족에게 알려지게 된다. 때문에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피해 있는 등 부양의무자의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알려지는 것 자체의 부담으로 수급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지방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수급권을 보장받는 사람은 연간 10만여 명이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는 73만 명에 달한다. 수급권 보장 가능한 예외 상황을 하나씩 삽입하며 두꺼워진 기초생활보장제도 사업 안내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모두 포괄할 수 없다. 나의 가난과 가족과의 관계가 해체된 사유를 구구절절 읍소해야 하는 지방생활보장위원회가 아니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서초구청의 대응은 한국 사회가 빈곤을 대해 온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형이다. 전수 조사와 위기 가구 발굴은 가난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상황이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을 때 반복되어 온 가장 무책임하며 쉽고 실효성 없는 대책이다.

 

작년 겨울 인천에서 사망한 일가족 역시 부양의무자에게 연락 가는 것이 두려워서 생계와 의료급여를 신청하지 않은 주거급여 수급 가구였다. 당시 일가족이 사각지대로 발굴되지 않은 이유 또한 주거급여 수급자였기 때문이었고, 일가족이 사망한 뒤 발표되었던 대책도 사각지대 전수 조사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 방배동 김 씨가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전수조사를 통해서 방배동 모자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위기 가구를 발견한다고 해도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이거나 단기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더불어 주거급여 수급자가 아니지만 건강보험이 체납되어 있는 등 다양한 빈곤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또다시 방치할 셈인가. 매년 위기 가구로 발굴되는 가구 중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복지지원제도와 같은 공적지원제도로 연결되는 비율은 두 자릿수도 못 된다. 다섯 번 혹은 여섯 번 발굴 되더라도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부터 사회보장제도의 확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8월, 임기 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을 담은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에 2022년까지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계획을 담았다. 의료급여는 완화 계획조차 없다. 그 이유로 건강보험료 최소한도 조정과 보장성 강화, 본인 부담금 상한제와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 등을 통해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사망한 김 씨는 정부가 단언한 어떤 의료보장제도도 적용받지 못했다. 방배동 모자와 같은 건강보험료 생계형 체납 가구는 80만에 달한다.

 

김 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다음 날, 청주에서 노숙하던 박 씨(50대)가 거리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망 전 응급실을 찾았지만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30만 원 정도의 병원비가 발생할 것이라는 안내를 듣고 발길을 돌린 뒤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 정부의 계획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인해 병원 이용을 못한다. 병원비가 얼마 나올지 알 수 없고, 당장 낼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본인부담 상한제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통증이 있는 곳에 파스를 붙일 수밖에 없다. 아파도 참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만으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방배동 모자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권을 보장받았더라도 김 씨가 의료를 이용하는 중 발생하게 되는 비급여 문제나 장애 등록을 위한 병원비 문제로 곤궁한 삶에 쪼들렸을지도 모른다. 장애 등급을 받은 이후에도 활동지원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보장받지 못해 돌봄의 책임이 김 씨에게 전가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의료 이용을 할 수 있고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계급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서초구청장은 지난 8월, 1주택자의 세금부담이 심각하다며 재산세 50% 감면을 시도한 바 있다. 있는 사람들의 불편에는 어떤 사회적 논의도 없이 정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비극 앞에 내놓은 대책은 이미 수십 차례 조사했던 내용을 또다시 조사하겠다는 미온적 대처에 그쳤다. 가난한 사람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삶은 죽음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 죽음마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의 불편보다 가볍게 취급되며 다시 또 금세 가려진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김 씨와 가난 때문에 스러져간 사람들 앞에 어떤 애도의 말을 건낼 수 있을까.

 

비극을 멈출 방안은 명확하다. 절대빈곤층이 7% 이상인 사회에서 3% 남짓의 수급 규모를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겠다'는 선언은 모순이다. 가난 때문에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족 먼저 찾으라는 사회에서 빈곤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복지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김 씨와 가난 때문에 스러져간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2314373415436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