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노동존중사회를 말하려면

2019. 10. 23. 13:0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사람들이 말한다. 이제 조국대전에서 민생대전으로 가야 한다고. 이는 누구보다 국정을 운영하는 문재인 정부에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의 과감한 역할과 투자 확대를 강조했다. 새삼스러운 방향은 아니다.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재정을 대폭 늘리는 제이노믹스를 주창했고, 민생 역시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소득주도성장의 가치이다.

 

이번에는 민생을 기대해도 좋을까? 문재인 정부를 보면 늘 허전한 구석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 주제가 주변화된다. 노동존중사회를 말하지만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정규직화를 추진하더라도 자본주의에서 노동존중의 뿌리는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권’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소득주도성장을 보자. 내수와 성장의 선순환을 위해 가계소득 증대에 힘쓰겠단다.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근로장려세제 확대 등을 진행했다. 물론 전향적인 정책들이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목표인 ‘임금 격차 해소’는 정부가 직접 주관하는 대책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에서 임금이 결국 자본과 노동의 교섭에서 결정된다면 관건은 시장에서 노동자의 교섭력을 키우는 일이다.

 

헌법에 노동3권이 명시돼 있다. 이는 과거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성과이지만 현실에서 저절로 구현되는 건 아니다. 이를 행사하려면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고 실질적인 교섭권을 지녀야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펴낸 2018년 비정규직 보고서에 의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2.1%에 그친다. 퇴직금을 받는 노동자는 37%에 불과하고, 유급휴가는 25%, 시간외수당은 20%만이 받고 있다. 이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노동조합이 곁에 있었더라면 상황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미국이 대공황 시기에 펼친 뉴딜정책의 한 축도 노동권 강화였다. 노동자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증했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히 제한했다. 위로는 정부가 공공투자를 주도하고 복지를 확대하면서 아래로는 노동자가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민생이 살아난다고 보았고 이 방향은 유효했다.

 

문재인 정부는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을 보호하는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미루는 건 고사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톨게이트 수납원은 없어지는 직업”이라고 버젓이 이야기하는 지경이다. 일자리가 없어져도 그 자리에 노동자가 남아있다면 그의 역할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심해야 ‘노동존중사회’ 아닌가? 아무리 혁신경제가 장밋빛이고 플랫폼 자본주의가 다가오더라도 어디에서든 사람이 있음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사람중심경제’ 아닌가?

 

그래도 당사자들은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근래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파업은 거의가 급식노동자, 요양보호사, 시설관리자, 택배노동자, 톨게이트 수납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선 경우이다. 파업 자체에 비판적 시선이 강한 우리나라이지만 이들의 단체행동에 대해선 여러 시민들이 응원한다. 함께 나서진 못하지만 나와 내 자식의 미래를 위한 활동이라 여기기 때문이리라.

 

조직화도 앞으로 가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현황을 보면, 3년 전 약 70만명에서 올해 100만명으로 약 30만명 늘었고, 새로 가입한 노동자 중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전체 조합원 중 비정규직의 비율도 어느새 3분의 1이 되었다.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고 현장 간부들이 묵묵히 땀 흘린 결과라고 여겨진다. 지난 9일에는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라는 조직도 발족했다. 5인 미만 사업장, 임시직 등 노동의 권리가 취약한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단결하며, 다음 대선까지 1000일 운동을 벌이겠단다. 정부가 노동존중을 잊어가는 시간에도, 이렇게 노동자들은 한 걸음씩 노동권을 세워가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옹호해 가자. 노동하고 있다면 모두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교섭도 실질적 의미를 지녀야 한다. 영세사업장, 하청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기업별 교섭체제는 사실상 교섭권을 무력화하는 장벽이다. 초기업 교섭, 즉 업종 혹은 산업별로 교섭해야 노동자 연대도 강화되고 기업 간 공동책임도 이루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노동존중사회를 말하려는가? 그렇다면 당장 톨게이트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비준하라. 그리고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들이 사용자들과 연합교섭을 벌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라. 이게 민생대전의 진정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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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222038005&code=990308#csidxfbe4dee69305ee5bffbe49436f59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