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증세 없는 포용복지

2019. 7. 31. 11:3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주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재정의 역할이 강조되는 때라 혹시 세입 확충 계획이 담길까 기대했는데 역시 없었다. 5년간 누적해 총 5000억원의 세입이 감소한다. 최고소득층에 세금을 조금 더 부과하고 기업에 법인세를 깎아 주지만 규모가 미미해 사실상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작년에 발표된 총 2조5000억원의 감세안을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다간 (박근혜 정부가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증세 정책을 펴서 이루지 못했던) ‘증세 없는 복지’가 문재인 정부에서 구현될 듯하다.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세법을 그대로 두고 과감히 지출을 늘리는 방법은 뭘까? 임기 2년은 예상보다 많은 세입이 있었으나 이제 초과세수 행진도 끝났다. 올해 국세 수입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국채로 갈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수준은 외국에 비해 낮아 국채를 발행할 여지가 존재한다. 필자 역시 지출 확대를 위해 국채를 활용하자고 말한다. 정부가 포용국가 복지를 주창하지만 여전히 기초생활보장, 장애인복지, 기초연금, 건강보험, 사회서비스, 공공임대주택 등 핵심 분야에서 추가 지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채가 지니는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여기서 조달된 재정은 일회성, 즉 마중물일 뿐이다. 대체로 사회지출은 비가역적이어서 한두 해는 국채에 의존하더라도 그다음부터는 세입제도에서 지속적으로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 국채 확대를 추진한다면 증세 계획도 함께 논의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통령은 재작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중산층과 서민들 증세는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한 비판이 여당에서도 제기되자 겨우 핀셋 증세로 생색을 내는 데 그쳤다. 시민들의 어려운 가계를 감안한 거라지만 ‘나라다운 나라’의 재정전략과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문재인케어’에선 지난 정부가 물려준 누적적립금이 있다며 법정 국고지원액을 과소지원하고, 국민연금에선 현행 재정불균형을 그대로 놔두는 개편안을 추진하며, 복지 확대 재정은 국채에만 의존하려 하니 참 마음 편한 정부이다.

 

작년에 3873명을 면접조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세금을 더 거두어 복지를 확대하는 것”에 대하여 4분의 3이 정당하다고 답변했다. 또한 “복지를 늘리기 위해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할 계층”으로 상위 20%만 꼽은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에 그쳤다. 시민들이 복지를 체험하면서 재정의 책임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곰곰이 숙독해야 할 대목이다.

 

복지가 발전하는 만큼 증세도 이야기해야 한다. 중간계층까지 포함하더라도 직접세 구조에서는 누진증세 혹은 부자증세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세금의 사용처를 사전에 정하는 ‘복지증세’ 방식이면 세금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몇몇 복지단체들이 전체 세목의 개혁 로드맵과 함께 시민의 참여를 이끄는 상징으로 ‘복지에만 쓰는 세금,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하는 이유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발표한 1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서 안정적 재원 방안을 강조하면서 참고사례로 프랑스와 일본의 사회보장세를 소개했다. 보수 정부였지만 복지재정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흔적으로 읽힌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올해 발표한 2차 기본계획에는 해당 주제의 내용이 거의 복사하듯 1차와 같은데 유독 사회보장세 부문만 빠져 있다.

 

프랑스에는 복지재정을 감당하기 위해 별도로 사회보장재원조달법이 존재한다. 근로소득에 부과되는 사회보험료뿐만 아니라 여러 세목들이 복지지출과 연계되는 복지증세 구조이다. 일본 역시 소비세를 올리면서 인상액을 모두 복지에 사용하기로 법에 담았다. 복지 재정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세금이 복지에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세 전략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세를 도입한다면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에 다시 일부 세금을 부가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예전의 방위세, 지금의 교육세와 같은 목적세이기에 지출 항목을 미리 명시하면 가구 유형별로 세금액과 복지급여가 정해진다. 시민들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안내서에서 추가로 내는 세금액과 새로 누리게 될 복지를 알 수 있고, 대다수는 낸 세금보다 더 복지로 돌려받는 ‘재분배’를 확인할 것이다.

 


무상급식 논란을 계기로 복지 바람이 분 지 10년째다. 이제 시민들은 복지를 경험하고 세금에 대한 책임도 인식해 가고 있다. 복지증세 이야기를 주저하지 말자.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가 ‘증세 없는 포용복지’ 정부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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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302040005&code=990308#csidxb865676921fe98abdb186a007955f8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