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5. 10:28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주택가 어느 집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조금 식구가 많아 보이는 여느 가정의 모습과 같다. 다만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 가지가 다르다. 아이들이 어른을 이모 혹은 삼촌이라 부른다. 사실 친이모, 친삼촌은 아니다. 여기는 아동공동생활가정, 보통 그룹홈으로 불리는 집이다.
어느 사회건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날 수 있고, 부모의 학대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부모의 사망이나 가출, 혹은 학대와 방임으로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사회가 돌봐야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는 보호 필요 아동들을 주로 대형 양육시설에 보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그런데 다르게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아픔과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기에 더욱 ‘시설’ 대신 ‘가정’에서 키워야 한다며 스스로 부모 역할을 자임한 사람들이다. 가정 돌봄 영역에서 입양이나 위탁이 기존 가정에 아이들이 들어가는 거라면, 그룹홈은 아이 5~7명과 부모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사는 새로운 가정이다. 특별한 문패도 없는 우리 동네 보통 집이다.
처음에 그룹홈은 정부 정책 밖에 있었다. 이모, 삼촌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주변의 후원으로 전셋집을 얻어 아이들을 돌보았다. 사실상 교대로 숙식까지 하는 전일제 보육사 역할을 하건만 월급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식당 식판 대신 가정 식탁을 주고 싶었다”는 어느 이모의 말처럼, 오로지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운영되는 집이다.
뒤늦게 정부가 이들을 주목했다. 1997년부터 시범사업으로 그룹홈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를 맞아 가정해체가 늘어나자 2004년에는 아동복지법에 ‘공동생활가정’을 추가해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이후 그룹홈은 꾸준히 늘어나 2017년 기준으로 533개 집에서 2811명이 살고 있다. 아이들은 중간에 친부모와 다시 결합해서 원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18세 때까지 살다가 그룹홈을 나가 자립한다.
최근 복지국가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돌봄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커뮤니티케어, 마을복지 생태계 등 자신이 사는 생활 기반이 강조된다. 불가피하게 시설에서 거주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일상 공간에서 돌봄이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깨달음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예전에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착한 사업 정도로 여겨졌던 그룹홈이 일찍부터 돌봄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는 선구적인 복지였던 셈이다.
근래 그룹홈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동 학대와 방임으로 돌봐야 하는 아이들은 계속 늘어나고, 일상생활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그룹홈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건만 정작 부모 역할을 대신할 이모와 삼촌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복지사 신분인 이들에 대한 처우가 너무 낮다. 그룹홈에서 일하기를 차마 제안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룹홈은 중앙정부 소관의 공동생활가정으로 시설장 1명과 보육사 2명이 일한다. 올해 이들이 받는 월급 총액은 185만원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정한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의 80% 수준이다. 추가수당도 없이 잠자리에 들기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호봉제도 없다. 15년 경력의 시설장이나 새내기 보육사나 월급이 같다.
올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가 공동생활가정 종사자에게 일반 사회복지사와 다른 임금을 적용하는 건 ‘차별행위’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달에 답변서를 낸다지만 이모와 삼촌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이다. 개선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실행하지 않는 정부에 익숙해진 탓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라는 높은 장벽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그룹홈 지원은 복권기금이 주관하는 ‘공익사업’ 중 하나이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에선 기획재정위원회가 의결한다. 박근혜 정부가 부족한 복지재원을 확보한다며 ‘입양아동 가족지원’ ‘아동복지시설 기능보강’ 사업과 함께 그룹홈 지원 사업을 기획재정부로 전출시킨 결과이다.
지난달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고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선언했다. 장밋빛 청사진을 보며 이모, 삼촌들은 말한다. 기획재정부로 넘어간 아동복지의 필수사업들을 보건복지부로 전환하지 않으면서, 또한 오랫동안 방치한 차별을 해결하지 않으면서 어찌 국가 책임을 이야기하느냐, 복권이 잘 팔리기만을 기대하란 말인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050600005&code=990308#csidx5f708beb512449aae78e7fb14c434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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