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연금특위와 사회적 대화

2019. 8. 28. 12:2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이번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사회적 대화로 연금개혁안을 만들어보자며 6개월 시한으로 발족한 후 기간을 연장해 약 10개월을 운영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경사노위 본회의에 참여해 법적으로는 자문기구이지만 의결기구로 생각해 결정을 존중하겠다며 경사노위에 힘을 실어주었다. 과연 연금특위는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에 걸맞게 활동했을까?

 

정말 이상한 일이다. 사회적 대화를 벌이자며 연금특위가 발족하자 정작 사회에서는 연금개혁 논의가 사라졌다. 연금특위가 가동되면 다양한 의견과 쟁점으로 토론이 뜨거워질 줄 알았는데 거꾸로였다. 연금특위 관련 언론 기사도 그리 많지 않았다. 보도자료도 발족 때와 기간 연장을 알리는 소식으로 두 번 나왔을 뿐이다. 논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홈페이지를 찾아가 요약 회의록을 읽어야 했다.

 

연금특위 발족 보도자료에는 “계층(청년, 자영업 등) 및 지역별 간담회, 전문가 워크숍,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이 중에서 실행된 것은 출범 직후 개최된 전문가 워크숍 1회가 전부이다. 여러 차례 회의를 열었다지만 여기서 제기된 논점을 공론화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찾아볼 수 없다.

 

김영순 교수가 쓴 <코끼리 쉽게 옮기기>는 코끼리처럼 무거운 연금개혁을 성사시킨 영국의 경험을 소개한다. 영국은 이해관계자 집단들의 의견 접수와 협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전 국민연금 토론’, 공론조사 방식의 여론조사 등 전면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마침내 코끼리를 옮길 수 있었다. 이 책이 사회적 대화의 성공 요인으로 강조하는 것은 연금실태를 명확하게 담은 정보의 제공, 그리고 이를 토대로 진행된 사회적 토론이다. 그 결과 시민들은 기존의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연금 문제를 숙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가지게 되었다는 평가이다.

 

우리는 어떤가?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연금특위가 얼마나 응답하며 사회적 토론을 이끌었는지 의문이다. 핵심 논점들을 정리하고 상반된 주장들을 비교 평가하면서 알리는 활동이 있었는가? 연금특위 덕분에 시민들은 연금개혁의 과제와 해법을 공감하게 되었는가?

 

연금특위가 여러 대표성을 지닌 위원들로 구성되었으니 내부 토론 자체가 사회적 대화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발족 보도자료도 “국민연금을 포함한 노후소득보장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노동계, 사용자, 비사업장가입자, 청년, 공익을 대표하는 몫으로 13명의 위원을 선정했다.

 

하지만 연금논의 지형을 아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운 구성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목표로 활동하는 특정 연대기구에 속한 단체 대표와 여기서 직책을 맡고 있는 교수를 합치면 총 8명에 달한다. 직역, 세대, 공익 영역의 수많은 단체와 전문가 중에서 유독 이 연대기구에 속한 사람들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각 위원들의 활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개별적으로 나름 소임을 지녔기에 제안에 응했을 것이고, 위원회에서 열심히 토론했음은 회의록에서 확인된다. 문제는 전체 위원 구성의 구도이다. 사회적 대화에 걸맞게 다양한 의견을 포괄하도록 균형을 갖추었느냐는 질문이다. 이는 연금특위에서 도출된 결과의 정당성에 영향을 주고, 향후 사회적 대화의 신뢰 자체를 흔들 수 있기에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특위에 8월 말까지 최종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다수안과 소수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까지 덧붙인 걸 보면 결과를 이미 아는 듯하다. 정부는 다수안이 만들어진 걸 사회적 대화의 성과로 홍보하며 국회로 공을 넘길 것이다. 이 어려운 숙제를 6개월로 마무리하려던 애초 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순이다.

 

현재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당연히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동시장 중심권에 있는 사람일수록 효과가 크다. 노동시장 주변이나 밖에 있는 계층에게는 기초연금 인상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아마도 미래 세대가 연금특위에 앉아 있었더라면 왜 국민연금의 재정불안정을 방치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과연 연금특위는 이 주장들을 균형있게 반영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연금개혁은 현재 세대 내부의 다양한 의견, 그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처지까지 감안하는 사회적, 역사적 대화를 요구한다. 이번 연금특위의 경험을 꼼꼼히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진짜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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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272053005&code=990308#csidx3572837060edc5892673dad9127f60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