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

2019. 5. 13. 16:0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폼 나는' 복지 브랜드에 그치지 않으려면…

 

 

 

김연아 성공회대 사회적기업연구센터 연구교수

 

 

커뮤니티케어(Community Care)로 지역사회가 분주하다. 커뮤니티케어는 '돌봄이 필요한 국민이 살던 곳에서 본인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혁신적인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정의된다. 

커뮤니티케어는 포용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보건복지부의 핵심 과제로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 지원을 골자로 한다. 병원과 시설에 의존해 온 노인, 장애인 등이 자택이나 소규모 그룹홈 등에 살면서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도록 재가·지역사회 서비스를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읍면동 주민센터에 전담창구(케어안내창구)를 개설하여 수요자의 욕구에 기반한 케어 플랜을 수립하고 보건소, 복지관 등 지역의 서비스 제공기관과 연계하여 지역 통합 돌봄 체계를 구축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기본 구상이다. 

커뮤니티케어, 8개 지자체부터 시작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커뮤니티케어 추진방향' 발표 이후 수차례의 논의를 거쳐 지역사회가 자기 실정에 맞는 통합 돌봄 모델을 자주적으로 기획하고, 다양한 민관협력 전달체계와 사례관리 모델을 개발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지난달 8개 지방자치단체가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 추진 지역으로 선정되었으며, 오는 6월 사업 실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인(광주광역시 서구, 경기도 부천시, 충청남도 천안시, 경상남도 김해시), 장애인(대구광역시 남구, 제주도 제주시), 정신질환자(경기도 화성시)를 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은 오는 6월부터 2년 동안 추진될 예정이다.  

선도사업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서울시도 ‘돌봄SOS센터’라는 자체 모델을 수립하여 오는 7월 5개 자치구(강서구, 노원구, 마포구, 성동구 은평구)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주도형 사업 추진을 통해 통합 돌봄 모델을 개발하고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되는 2026년 전까지 커뮤니티케어 제공 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3만 불 시대에 걸맞은 선진국형 복지체계로의 개편'이라는 장밋빛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사회 통합 돌봄 구축 계획은 마냥 평안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은 아니다. 오히려 고령화에 따른 재정부담(의료비 등 사회보험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1970년대 이후 여러 국가의 경험이 축적된 커뮤니티케어를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위기관리 전략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시쳇말로 '뽀대 나는 복지브랜드'가 아니라 가중되는 국가부담과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안으로 커뮤니티케어가 도출되었다는 의미다.

전달체계 개편 중심 논의에 빠진 커뮤니티케어 

인구구조 등 미래의 환경변화에 대한 공통된 인식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커뮤니티케어를 둘러싼 논의는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상(象)이 이해관계자마다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논의가 특정 제도를 도입하거나 하나의 서비스를 탑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정책의 목적과 방향을 바꾸는 문제라는 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커뮤니티케어가 사회서비스 제공의 권한과 책임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행정상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전달체계 개편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이슈다. 돌봄 수요를 파악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등 적절한 자원을 연계하고 역할을 배분하는 과정이 수월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서비스 구성 및 수가 체계 마련, 인력 확보 및 교육, 품질관리와 평가체계 마련, 유관 프로그램 간 연계프로세스 구축 등 뒤따르는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뿐인가. 탈 시설과 정착 지원, 적절한 병원 이용을 위한 방안 모색 등 시설 중심 서비스에서 재가·지역사회 중심 서비스로의 이행에 따르는 현실적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이 많은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항간에 커뮤니티케어가 전달체계 재편을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의사, 간호사, 약사, 한의사, 물리치료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등 이해관계자 간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는 소문이 들린다. 한가한 소리인 줄 모르겠으나, 이들의 갈등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불가피한 과정이고 풀어야 할 숙제다. 오히려 궁금한 점은 최근 들어 왜 오직 전달체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가 하는 것이다. 자치센터에 전담창구가 개설되고 전문 인력이 배치된다고 해서 지역사회 돌봄 체계가 구축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 
 


시선을 돌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입장에서 커뮤니티케어를 바라보면 어떻게 다를까? 분명한 건 수요자의 입장에서 사회복지서비스는 욕구기반 접근이 아니라 권리기반 접근으로 오래전에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진하고 있는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 구축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WHO는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을 ‘노화’에 대한 긍정적 대처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2007년부터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개발하여 세계 주요 도시에 배포하고 있다. <표 1>은 WHO가 제안하고 있는 고령친화도시 구축을 위한 8개 영역으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노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살기 좋은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 WHO 고령친화도시 구축을 위한 8개 영역. 자료: WHO, Global Age-Friendly Cities: A Guide, 2007, '고령친화도시 행복한 노년', 2017. 재구성

 


인상적인 것은, 가이드라인과 고령친화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고령친화적 조건이 새로울 것 없으나 아주 기본적인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도출되었다는 점이다.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  


노인이라면 누구나 당면하고 있는 이 질문들을 쫓다 보면 고령친화적 조건이란, 건강·돌봄 서비스 뿐 아니라 이동, 주거, 생활환경, 일자리, 사회참여 등 삶의 여러 조건이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WHO는 오랜 연구와 실천 경험을 통해 고령친화적 지역사회를 만드는 대전제로 ‘공동체성 회복과 새로운 공동체’를 꼽았다. 

복지서비스를 넘어 지역사회를 바꾸는 일
 


다시 애초의 고민으로 돌아가 수요자, 즉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커뮤니티케어를 바라보면, 우리는 행정의 전달체계 개편과는 별도로 어떤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이자, 주민들의 필요에 맞게 지역사회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러한 노력을 사회연대경제라고 불렀다.  

이 점에서 커뮤니티케어는 사회적 경제와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지역 주민 등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모인 주체들이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그간 분절되었던 정책 간 경계를 허물고 포괄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커뮤니티케어 기반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지방정부 역시 행정 중심의 전달체계 개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공동체의 포용성을 확장하는 전략적 노력에 힘을 실어야 한다. 마을의 역동이 일어나지 않고서 '커뮤니티'케어가 구현되기란 어렵다. 시선을 돌려 사람을, 지역사회를 바라보자. 커뮤니티케어는 전달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삶의 형태, 행복에 관한 문제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40590#09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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