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9. 13:21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신재민씨의 독특한 스타일, 정치권의 과도한 공방 등으로 사안이 복잡해졌지만,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당시 차관보가 카톡방에 보낸 문자이다. “핵심은 GDP 대비 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겁니다.” 아직까지 공식적 부정이 없는 걸로 봐선 실제 문자라고 판단된다.
“모든 정책은 재정으로 통한다.” 세상을 떠난 후에 출간된 <진보의 미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쓴 글이다. 그는 뜻을 다 펴지 못한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진보의 나라는 어떤 걸까, 이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묻고 답을 찾아가다 힘주어 강조한다. “재정은 그 정부의 철학을 말한다.” 집권 초기부터 국가재정법을 제안하고 재정전략회의를 도입하며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던 그의 문제의식이 응축된 문장이다. 당연히 재정정책을 두고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할 수 있다. 당시에 진행되었다는 재정운용 방향 논의도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등장한 ‘채무비율 조정’은 지나치게 정무적이다. 차관보가 자신의 주관적 느낌을 자조적으로 적은 글일 수도 있지만 설령 그러하다 해도 고위 공무원이 정책결정과정에서 권력 핵심부에게서 그러한 분위기를 느꼈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3년째다. 노무현의 바람이 구현되고 있을까? 아쉽게도 재정정책에서 묵직한 기둥이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이 그렸던 ‘진보의 나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나라다운 나라’로 깃발은 계승되었으나 이를 위한 재정전략은 불명확하다.
당선 2개월 후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인수위원회 보고서인 국정운영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총 178조원의 공약 재원방안이 담겨 있다. 대선공약집과 최종 수치가 같다. 그런데 내역이 너무도 다르다. 지출 절감이 92조원에서 60조원으로 축소되고 기금여유자금은 20조원에서 35조원으로 증가했다. 세입 재원은 완전히 다시 작성되었다. 세수실적 호조를 반영해 초과세수 61조원이 추가되고 대신 세법 개정과 탈루세금 과세로 61조원을 만들겠다던 공약이 17조원으로 대폭 줄었다. 당황스럽다. 불확실성이 큰 ‘세수 호조’를 근거로 제도적 재원 방안을 이리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니. 공약집과 5개년계획의 발표 시차는 불과 80여일, 두 문서 모두 동일한 세력이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정책에서 어떤 정체성을 지닌 걸까? 집권 이후 초과세수도 의문을 낳는다. 2016년 이래 매년 예산에 비해 20조원 이상 세금이 더 걷히고 있다. 물론 세금이 남으면 지방교부세를 지원하고 국채도 일부 갚고 추경예산도 편성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문제는 초과세수가 반복된다는 점, 즉 매번 세수 예산이 실제보다 작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가을로 돌아가 보자. 2018년 세입 예산안으로 268조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2017년 국세 수입 265조원에 비해 고작 4조원 증가한 규모이다. 당해 세금 징수액이 예측되는 시점임에도 비슷한 금액을 다음해 예산안으로 내놓았다. 그 결과 2018년에도 대략 25조원 이상의 초과세수가 예상된다. 올해는 어떤가? 정부는 세입 예산안으로 299조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작년 세수 실적치를 단지 몇 조원 웃도는 수준의 금액이다. 정부는 기본 추계방식을 따랐다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 의도된 건 아닐까라는 불편한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초과세수는 예산안 편성에서 지출을 제약하고 나아가 증세 논의를 억누르는 효과도 낸다. 마냥 반길 일이 아니다.
재정정책의 방향을 상징하는 핵심 지표인 조세부담률 목표도 실망스럽다. 정부는 정기국회 때 예산안과 함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제출한다. 앞으로 5년 계획을 담은 재정운용계획은 상반기에 골격이 짜이는 문서라 5월에 취임한 문재인 정부 첫해에는 기존 정부의 기조가 남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2년차인 작년에 국회에 제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여기에 명시된 조세부담률은 2022년에도 20.4%, 이미 작년에 20%를 웃도는 상황에서 현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강한 선언이다.
신재민 논란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도 재정정책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국가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시민들의 재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더 투명해야 하고 묵직한 비전이 담겨야 한다. 노무현은 이야기한다. 결국 재정이 큰 나라가 진보의 나라라고. 이를 위해선 과감하게 복지를 늘리고 세금도 올렸어야 하는데 자신은 못하고 이렇게 물러간다고. 그리고 그 회한을 담아 역설한다. “재정은 그 정부의 철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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