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국민연금, 재정 목표 버리기가 능사일까?

2019. 1. 14. 13:0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의 연금개혁 완전정복] ④국민연금에서 재정 목표가 없는 이유




<1회> 문재인 정부 연금안 평가 : 재정 개혁 방기
<2회> 국민연금 재정 계산 : 70년 계산 믿을 수 없다?
<3회> 국민연금의 특징 : 미래 재정 불안정
<4회> 국민연금의 재정 목표 : 재정 균형
<5회> 외국에서 연금 재정이 안정적인 이유
<6회> 국민연금의 부과방식 전환, 가능한가?
<7회> 국민연금의 역설 : 재분배 vs. 역진성
<8회> 기초연금의 강점 : 사각지대 없는 노인 기본소득
<9회> 퇴직연금의 잠재성 : 중상위계층 노후 소득 보장
<10회> 연금 개혁 대안 : 한국형 다층 연금 체계




국민연금에서 재정 목표가 없는 이유 


"이번 연금제도 개편 과정을 통해 기금 소진의 공포에서 국민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연금 제도의 본질은 외면한 채, '기금 소진'을 앞세운 과거 연금 개혁 과정은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연금 개혁 과정에서 재정 목표만 내세웠지 한 번도 보장 목표를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지난 2일 국민연금공단 김성주 이사장이 발표한 신년사의 일부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기금 소진 공포를 앞세워 재정 목표만 내세웠다는 비판이다. 그래서 앞으로 재정 목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아예 '재정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장관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가 택한 해법이다. 이러면 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려운 연금 개혁을 할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정부는 공적 연금에서 재정 목표의 취지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알면서도 회피하는 걸까? 전자라면 몰이해이고 후자라면 무책임이다. 

연금 논의에서 꼭 다루어지는 주제가 재정 목표이다. 공적 연금은 복지 제도이면서 가입자에게 은퇴 이후 급여를 지급해야 하므로 미래 재정에 보장이 요구된다. 이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재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재정 개혁 방안의 수립을 의미한다. 

선진국이 모두 그렇게 한다. 인구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공적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재정 목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 재정 목표는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연금 개혁의 핵심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문이기도 하다.  

연금 개혁에서 재정 목표의 의미와 내용,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재정 목표를 부정하려는 이유를 살펴보자.  

공적 연금에서 재정 목표와 균형지표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지금 열심히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에게 당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 연금이 지급된다는 근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국가가 존재하는 한 지급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연금 지급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실질적인 재정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게 연금 개혁이고, 재정 목표는 연금 개혁을 이끄는 좌표의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공적 연금의 재정 목표는 '재정 균형', 즉 미래 특정 시점까지 혹은 그 시점에서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의미한다. 일찍이 2000년에 국제노동기구는 연금 개혁 보고서에서 "연금 재정 체계의 궁극적 목표는 재정적 균형 유지"로 정의했다. 

여기에 따라오는 질문은 무엇이 '재정 균형'인가, 즉 재정 균형을 보여주는 지표의 설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금 개혁 논의에서는 재정 목표 개념이 '장기 재정 균형, 또는 이를 달성하는 '균형지표'의 의미로 혼용돼 사용돼 왔다. 이 글은 공적 연금에서 재정 목표는 '재정 균형'으로, 이를 구현하는 구체적 기준을 '균형지표'로 구분해 사용한다(제4차 국민연금제도발전위도 이러한 용어 구분을 따른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논의에서 재정 목표가 균형지표의 의미로 사용되어왔기에, 이 글 역시 맥락에 따라서는 두 개념을 혼용한다).

서구 소득비례연금의 다양한 균형지표 


서구 나라들을 공적 연금에서 나름의 균형지표를 개발해 연금 개혁에 적용하고 있다. 서구 연금에서 균형지표는 미래 자산과 부채의 균형을 의미하는 적립률(재정 상태 계열)과 미래 어느 시점의 수지 균형을 의미하는 적립배율(재정수지 계열)을 균형지표로 삼는다. 

ⓒ프레시안(이한나)

  
우선 적립률은 어느 시점까지 지급해야 할 연금 부채와 공적 연금이 지닌 연금자산의 비율이다(연금 자산을 연금 부채로 나눈 비율). 여기서 연금 부채는 가입자가 받을 미래 연금액의 합이고, 자산은 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기금 수익의 합이다. 만약 적립률이 1이라면 어느 시점까지 지출할 연금액과 그때까지 확보한 자산이 같으므로 재정 균형을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적립률을 사용하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에서 용어는 균형비(Balance Ratio)이지만 적립률과 같은 의미이다. 만약 연금 재정 진단 결과 균형비가 1보다 낮으면 부채를 줄이기 위해 미래 급여를 축소하고 1보다 높다면 부채를 늘리기 위해 미래 급여를 인상해 균형비 1을 달성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금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스웨덴의 소득대체율이 48%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 36.6%로 낮아질 전망이다. 향후 수명 연장 등으로 지출이 늘어날 예정이라 미래에 균형비 1을 맞추기 위해 소득대체율이 낮아질 것을 반영한 전망치이다. 그만큼 균형비는 매우 강력한 재정 안정화를 동반하는 균형지표이다. 스웨덴처럼 이미 재정 균형을 달성한 나라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재정 불균형이 큰 나라에서는 균형비 지표를 사용하기 어렵다. 현재 가입자가 미래에 받을 연금액(미래 부채)을 모두 충당하기 위해서는 무척 고강도의 연금 개혁, 즉 높은 보험료율 인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균형지표는 연금 재정의 수지 상태를 보여주는 적립배율이다. 적립배율은 어느 시점까지 자산과 부채를 일치시키는 적립률과 달리, 특정 시점의 수입과 지출의 상태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적립배율이 1배라면 미래 어느 시점에서 1년치 연금 지출금을 확보하고 있으면 재정 균형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서구 나라에서는 적립배율을 균형지표로 활용한다. 서구의 국민연금(소득비례연금)은 거의 적립금 없이 그해 수입으로 그해 지출을 감당하는 부과 방식 재정 구조를 지닌다. 오랫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기에 앞으로도 미래 어느 시점에 몇 년치 지출분이 확보된다면 연금 재정이 지속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적립배율이 높다고 반드시 재정이 안정된 연금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적립금이 적더라도 지출만큼 수입이 계속 확보된다면 미래 연금 재정은 안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독일은 1년치도 아니고 약 한 달치 적립금만 지니지만 미래 재정은 안정적이다. 현재 급여만큼(48% 소득대체율) 보험료율(18.7%)를 내고 있기에 앞으로도 한 달치 적립금만 유지해도 보험료율이나 대체율의 조정으로 연금을 지속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캐나다는 5~6배의 적립배율을 균형지표로 삼는다. 캐나다도 지금 이미 보험료와 급여가 상응해 수지 균형을 이룬 상태이다. 그럼에도 5~6년치의 적립금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건 미래 고령화에 대비하는 예비자금을 비축하겠다는 취지이다. 

한국은 현재 30년치 이상의 적립금을 가지고 있다. 적립배율로 계산하면 30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미래 재정이 무척 불안하다. 현재 보험료와 급여에서 수지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국민연금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아 적립금이 많지만 미래에는 소진되고 이후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이 요구된다.  

결국 적립배율에서 중요한 건 적립배율 수치보다 지금 얼마나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이루고 있느냐이다. 독일처럼 이미 수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이후 낮은 적립배율에서도 인구, 경제 변화를 감안하면서도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수지 불균형이 큰 연금에서도 아무리 지금 적립배율이 높더라도 미래 연금 재정은 불안한 상태이다.

정리하면, 서구 나라에서 확인되듯이 공적 연금에서 재정 목표가 필요하다. 미래 연금 지급을 위해선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해야 하고 이를 보여주는 균형지표도 설정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선진국들은 나름의 재정 목표와 균형지표를 지니고 있고, 또한 이미 재정 균형을 달성해 놓았다는 점이다. 오랜 시기 논란과 갈등 속에 이룬 연금 개혁의 결과이다. 

이 나라에선 향후 인구, 경제 영역에서 생기는 변화를 반영하는 부분적 조정으로 균형 지표를 구현하면 되니 연금 개혁 논의가 우리나라보다 수월하다. 게다가 상당수 나라에서 재정 균형이 미래에 자동으로 확보되도록 자동 조정 장치까지 도입하고 있다. 이는 서구 나라들이 초고령사회를 맞으며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서구 자동 조정 장치는 5회에서 다룬다.) 

국민연금, 지금까지 재정 목표 설정 못해 


한국은 어떤가? 국민연금은 OECD 회원국에서 가장 재정 불균형이 큰 연금이다. 재정 목표과 균형지표를 어느 나라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법도 사실상 국민연금의 재정 목표를 담고 있다. 제4조가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행정부에 5년 주기로 국민연금 장기 재정을 계산해 연금 개혁안을 국회 제출하라고 명하다. 이 조항은 1988년 국민연금법이 제정될 때는 없었으나 이후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가 과제로 떠오르자 10년이 지난 1998년에 신설되었다. 

국민연금법

제4조(국민연금 재정 계산 및 장기재정균형 유지) ① 이 법에 따른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 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에서 재정 목표의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균형지표'는 무엇일까? 아직 없다. 국민연금법이 재정 목표로 '장기 재정 균형'을 명시하고 이를 위해 5년 주기로 재정 계산이 진행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이에 부응하는 균형지표가 없다. 

엄격히 따지면, 1차 재정 계산에서는 사실상 재정 목표(균형지표)가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재정 목표, 균형지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70년 뒤 적립배율 2배'를 목표로 연금 개혁 논의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목표가 2차 재정계산에서는 상대적인 위상으로 약화되었고, 3차 재정계산에서는 균형지표로 아예 복수안(적립배율 2배, 부과방식 전환)이 제시되면서 재정 목표(균형지표)는 불명확해졌다.

4차 국민연금제도발전위, 재정 목표와 균형지표 정했으나…

이번 4차 재정계산에서 연금 개혁안을 마련하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강조한 게 재정 목표였다. 연금 개혁에서 재정 목표의 설정은 당연한 작업이었음에도 지금까지 정부와 위원회가 책임을 방기해 왔다는 자성에서 이번에는 재정 목표를 수립하자는 다짐이었다. 이에 위원회는 지난 재정계산에서 다루어졌던 재정 목표를 조금 수정해 '70년 뒤 적립배율 1배'를 균형지표로 합의했다. 앞으로 70년 후에 국민연금이 1년 치 지출분을 확보하고 있다면 '재정 균형'으로 정의한 것이다. 

재정 목표를 위한 균형지표가 정해짐에 따라 이에 도달하기 위한 재정 개혁 기초자료가 분석되었다. 이는 현행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 재정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요구되는 필요 보험료율 수치로 제시된다. 이는 재정 목표 달성을 위한 연금수리적 수치로서 재정 개혁안을 짤 때 참고하는 기본 정보의 성격을 지닌다. 이를 참고로 삼아 위원회가 재정안정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라는 취지이다.  

ⓒ프레시안(이한나)

  
<표 2>에서 보듯이, 만약 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20년에 즉시 보험료율을 인상한다면 현행 9%를 16.02%로 올려야 한다. 이러면 국민연금기금은 2057년에 소진되지 않고 70년 후인 2088년까지 연장된다. 보험료율 인상 시기가 늦어질수록 당연히 필요 보험료율은 높아진다. 2030년에 올리면 17.95%, 2040년에 올리면 20.93%으로 상향된다. 지금 국민연금기금이 많기에 보험료율 조정이 시급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럴수록 이후 요구되는 연금 개혁의 강도는 커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국민연금에서 설정한 '70년 적립배율 1배'가 완전한 재정 균형인가를 둘러싸고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국민연금의 상황을 감안한 '한국형' 재정 균형 정의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70년 이후에는 수급자는 존재하지만, 기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5년 주기 연속 개혁을 가정하기에, 70년을 시야에서 적립배율 1배를 확보하며 5년씩 전진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5년마다 필요 보험료율은 조금씩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면 긍극적으로 국민연금 재정은 어떻게 되는걸까? 계속 보험료를 올리면 시간이 흐를수록 기금 곡선은 70년 이후에도 내려가지 않고 '일정한 수준'을 향해 갈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국민연금 재정이 완전 적립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70년 적립배율 1배' 균형지표가 거기까지 상정한 개념은 아니다. 70년 시야에서 적립배율 1배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후 변화된 경제, 인구 여건에서 어느 시점에서 다시 균형지표를 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동일하게 적립배율을 균형지표로 사용하더라도 재정 안정에 주는 의미는 다르다. 선진국은 연금 재정의 수지 균형이 확보되어 있기에 적립배율이 사실상 '일정 수준'을 계속 유지하지만, 한국의 국민연금은 단지 특정 시점의 '적립금'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스스로 무너뜨린 재정 목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재정 목표에 따라 균형지표를 정했다. 그러면 이에 맞춰 구체적으로 연금 개혁안을 제시했는가? 그렇지 못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균형지표로 '70년 적립배율 1배'로 결정하고도 정작 재정 안정화 방안에서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위원회는 두 개의 연금 개혁안을 제시했다. '가'안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인상하면서 앞으로 30년 후에 적립배율 1배를 달성하는 재정 안정화 방안이고, '나'안은 현행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두고 70년 후 균형지표를 달성하기 위한 종합 방안을 담았다. 문제는 '가안'이 성격이다. 사실상 '30년 적립배율 1배'의 방안이다. 위원회가 정한 균형지표와 다름에도 위원회는 두 복수안 모두 제안했다. 위원회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왜 그랬을까? 재정 목표를 달성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아직 재정계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시점에 재정 목표를 설정하고 합의했다. 그런데 막상 재정 계산 결과가 이전보다 부정적으로 나오고, 이를 토대로 재정 안정화 조치를 세우면 무척 고강도의 재정 안정화 방안을 제안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원칙을 버렸다. 정부 정책을 자문하는 전문가 위원회가 지레 정무적 판단에 휘둘린 모양새이다. 

70년 개혁안, 지금 확정하는 실행안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재정 목표의 실종에 못을 박았다. 정부가 지난 12월에 국회에 제출한 4개의 연금 개혁안 어디에도 재정 목표와 균형지표가 없다. 70년이라는 시야도 사라졌다. 단지 "5년마다 재정 계산을 통해 추가적인 개혁이 가능한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심지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재정 목표 설정은 개선 방안 마련에 있어 중요한 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의 현실적인 타당성이나 실용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70년 동안 경제·사회적 변화가 아주 극심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70년 재정 계산의 의의 자체를 부정했다. 정부 스스로 연금 개혁이 지닌 장기 재정 계산의 특성을 이유로 '불가지론'으로까지 흐르니 정말 유감이다('70년 계산의 타당성'에 대한 2회 글 참고).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8년 12월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설명하기 위해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함께 브리핑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수백 개의 시민단체가 모인 공적 연금강화국민행동도 비슷한 입장이다. 재정 목표에 따른 재정 안정화 논의를 "5년마다 재정 점검을 하고 있는데 매번 70년간의 해법을 한꺼번에 제시하라는 현실적이지도 않은 주장"이란다. 이 역시 '70년 해법'에 대한 오해이다. 오랫동안 연금 개혁 논의에 관여하고 일부는 정부위원회에도 참여하는 시민단체들이 여전히 재정 계산의 방법론을 '미래학'으로 혼동하고 있는 현실이다. 

재정 목표가 지금부터 70년 기간의 개혁안을 확정하는 건 아니다. 70년 후의 재정 목표는 현재 연금 개혁안을 정하기 위한 좌표의 위상을 지닌다. 그 좌표가 있어야 지금 설정해야 할 개혁안의 기울기(강도)를 정할 수 있다. 당연히 5년 후에는 경제, 인구 변화를 감안해 70년 후의 좌표가 이동하고 다시 그에 맞춰 개혁안의 각도가 조정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재정 목표는 5년 주기 재정 계산 방식에서 확정되는 개혁안은 지금부터 약 5~10년 기간뿐이다. 

결국 재정 목표에 따른 70년 개혁안은 우리가 지금 수행하는 개혁안의 수준을 확인하고 연금 개혁에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몫을 인식하는 평가틀이다. 이러한 장기 경로의 설정 없이 무엇을 근거로 지금 재정 개혁안의 수준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70년 재정계산에 대한 '불가지론'이 적절하지 않듯이, 70년 연금 개혁안에 대한 '사전 확정론' 역시 무리한 비판이다. 장기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다루는 연금 개혁에서 재정 목표는 현실적 타당성이나 실용성을 이유로 부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선택, 아예 재정 목표를 버리자 

산에 오르려면 목표 봉우리를 알아야 하고, 여기에 도달하는 등산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혹 내리막이라도 당황하지 않고 뚜벅 뚜벅 걸어갈 수 있다. 

연금 개혁이 등산과 같다. 재정 계산 방법론에 따른 장기 재정 목표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연금에는 재정 목표가 없다. 2003년 제1차 재정 계산에 설정되는가 싶었으나 점차 상대화되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와 공식적으로 부정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4개 방안 모두 현행 국민연금(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의 재정 불균형은 그대로 방치한다. 심지어 이에 따른 비판은 모면하고자 논리가 더 비약한다. 재정 목표를 버리고(재정 목표 불필요론), 나아가 이제는 70년 미래를 어찌 알겠느냐(불가지론)고 말한다. 

이는 연금 개혁 논의의 후퇴다. 5년 주기로 논의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재정 계산 방법론의 정립,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인식, 재정 개혁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거꾸로 간다. 

명심하자. 재정 목표 달성을 위한 필요 보험료율이 뒤로 갈수록 높아지듯이, 연금 개혁을 미룰수록 나중에 논의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연금이 개혁 없이 10년이 흐른 만큼 국민연금에 요구되는 개혁 강도가 더 세진 현실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연금 개혁 논의가 불편하다고 재정 목표까지 버리는 건 정말 무책임하다.



<참고 문헌>  

ILO, "The ultimate objective of any pension financing system is to keep a pension scheme in financial equilibrium". Colin Gillion et al.,"SOCIAL SECURITY PENSIONS: Development and reform" 132-133쪽. 2000년 

연합뉴스, "국민연금 재정안정 70년 후까지 확보해야 할까…엇갈린 판단", 2018년 12월 18일
공적 연금강화 국민행동, "논평 : 정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에 대한 연금행동의 입장" 2018년 12월 15일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4636&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