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독서모임은 힐링 시간…아무리 지쳐도 빠지지 않죠"

2018. 11. 4. 16:1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책 읽는 마을 14 - 구로가산 독서모임(GGRC) 

"나는 이 모임을 쉼표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야근해서 힘들 때나 업무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때 여기 와서 내가 읽은 책 얘기를 떠들다 보면 뭔가 삶에 쉼표가 찍히는 느낌이거든요." 


 기업들의 포인트 거래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 김문수(45)씨는 10년 가까이 다니는 독서모임 GGRC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책을 읽을 때 남들보다 단순하게 느끼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GGRC에 나오면 유치한 독후감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분위기가 오픈돼 있어 다들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거였다.  


 시각디자인 인쇄 회사에 다니는 조항길(39)씨는 "함께 책을 읽는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1년 전부터 GGRC에 나왔는데 대신 좋은 형님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중국에 휴대전화 설비를 수출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조민성(49)씨는 독서모임에 나오는 이유가 독특했다.  


 "신문기사를 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한 사람이 한 해 평균 50권가량의 책을 읽는데 한국 사람들은 5권도 안 된다고 하더라. 나는 10권이 채 안 되는 것 같아 강제로라도 읽어보기 위해 넉 달 전부터 나왔다." 
  

 지난달 24일 저녁 GGRC의 아지트인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 히즈라네 고양이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다. 이제 GGRC 이름의 비밀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구로·가산 리딩 클럽(reading club)의 약자다. 회원들은 그냥 구로가산 독서모임이라고 부른다. 이름 대로 구로·가산 디지털단지 부근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의 독서 모임이다. 그러니 회원들의 직장, 연령대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과거 직장이 구로·가산이었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갔는데도 여전히 나오는 회원도 꽤 되는 듯했다.   


 1970년대 산업 역군이 자동연상되는 '구로공단'이 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꾸고 체질 개선을 시작한 게 2000년. 모임은 '예병일의 경제노트' 사이트 안에 지역 독서모임의 하나로 2007년 4월 개설됐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각자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많을 때는 활동회원이 100명을 넘은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도 200명가량인 전체 회원 가운데 20명 정도가 열심히 활동하는 '진성' 회원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10년 넘게 활동하는 보기 드문 장수 모임이다. 2년 임기의 6대 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관(45)씨는 "예전에는 회원들의 연령대가 더 젊었다고 하는데, 모임이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40대가 주축"이라고 소개했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경제적·법적 구속력 없는 모임이 오래 지속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눈치채셨겠지만 회원들의 발언 속에 비밀이 있었다. 낮은 문턱과 친근해진 사람들이다.  

  
 4대 회장을 맡았던 이문희(47)씨는 관광 안내지도 만드는 일을 한다. 지금은 사무실이 성북구에 있지만 예전에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였다. 이씨는 "GGRC가 내게는 힐링이 되는 모임이다. 오래 만나 좋은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다 결국 사는 얘기를 하다 보면 힘을 얻는다. 그래서 아무리 지치고 시간이 늦어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편"이라고 했다.  


 5대 이도겸(49) 회장 역시 지금은 회사가 송파이지만 모임에 꼬박꼬박 나온다.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이씨는 "직원들에게 강제 독서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라고 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윤재현(28)씨는 모임의 젊은 피다. "책 읽어 좋은 점은 아직 모르겠다", "집에서 유튜브 보는 대신 독서모임을 하는 건 내게는 사치스러운 활동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이런 튀는 발언으로 모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박재관씨가 회장이 되면서 모임은 격월로 독서토론을 한다. 이날 토론 도서는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철수와영희)였다. 박 회장을 포함해 세 명이 발제 준비를 해왔다. 박 회장이 먼저 시작했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거지만 경제 규모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 수준이 떨어지고 헬조선이라는 상황들이 있는데…." 


 회원들은 두 시간 반씩 토론을 한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독서모임은 힐링 시간…아무리 지쳐도 빠지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