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퇴짜 맞은 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편안’…보험료 인상은 ‘부담’인가, ‘책임’인가

2018. 11. 13. 11:0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독막로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더 많이, 오랫동안 받으려면 그만큼 더 내야 한다. 개인 간의 계약에선 당연한 원칙인데, 국민연금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는 시기와 받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노후의 충분한 생계비가 되게 하고 100년 뒤에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게 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걷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언제 얼마나 올릴 것인가다. 

5년마다 나오는 재정추계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권고안을 내놓고 이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가 연금 개편 초안을 만들었지만 보험료율 인상폭이 크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반려했다. 15일로 예정됐던 연금 개편안 발표는 미뤄졌다. 

한쪽에선 “서민 부담을 늘리는 일을 함부로 결정해선 안된다”며 청와대에 동조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여론을 의식해 연금 개편의 핵심 과제를 회피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연금 전문가 2명에게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당장 시급하게 올려야 하는지에 대해선 견해가 달랐지만, 두 전문가 모두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토론하게 해서 여론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 ‘부담’ 아닌 ‘책임’으로 설득해야 할 청와대 역할 회피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 

대통령이 되레 ‘부담’ 강조 
연금개혁 논의 위축 우려
추계 때마다 소진 늦춰줘야 
원전처럼 공론화위도 검토를


오건호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연금개혁 논의를 해온 전문가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연금개혁 자문안을 만드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오 위원장은 ‘소진 위기’인 국민연금 기금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보험료율을 올려 재정부터 안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보험료율을 문제 삼아 보건복지부 연금개편안 초안을 퇴짜 놓은 청와대에 대한 아쉬움부터 털어놨다.


“보험료 인상은 부담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게 ‘연금정치’입니다. 청와대가 연금정치를 회피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재정 소진을 막기 위해서뿐 아니라 소득대체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5%다. 노후에 매달 연금으로 받는 액수가 예전에 벌던 돈의 45%밖에 안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50%로 올리겠다고 공약했으며, 그러려면 보험료율 인상은 더욱 필요하다고 오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보험료를 높이는 건 부담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인식을 심어야 하는데, 대통령부터 ‘부담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연금개혁 논의는 아예 봉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들이 연금제도를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은 소진돼 되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오 위원장은 이런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법제화한다 해도, 5년 간격으로 이뤄지는 연금추계 때마다 소진 얘기가 나오면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 “연기금의 재정기반을 다지는 게 본질적으로 불안을 잠재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국민들에게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오 위원장은 청와대와 정부가 연기금의 실상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연금공단 등은 연기금이 아직 많이 쌓여 있고, 소진 가능성이 높아지면 그때그때 걷어서 연금 급여를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 위원장은 “이러다 보니 현세대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책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며 “책임감을 갖도록 논의의 물꼬를 틔워주면 국민들이 충분히 보험료 인상을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으나, 현 상태에서 정부가 국민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최근 연금공단에서 지역 순회토론을 했는데 소득대체율이나 보험료 인상 등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 건설 문제처럼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하면서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해 연금개혁 방향을 합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시각에서 분석한 결과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하게 하자는 것이다. 국민들 스스로 실태를 판단하게 하면 보험료 부담에 대한 인식이 바뀔 것이며 국민들이 수용하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연금개혁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국민연금 폐지론이 나오지만 실제로 사람들과 만나 토론해보면 연금이 지속되길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많다”면서 “지속가능성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국민들이 보험료 인상에도 책임감을 갖고 임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 ‘당장 더 내지 않으면 연금 시스템 붕괴’ 위협은 과장 

주은선 - 경기대 교수·연금특위 위원 

소진 시점 40년 가까이 남아 
보험료 급격한 인상 부적절
지표 등 따라 속도 조절 가능 
개혁방향에 여론 수렴 먼저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국민연금 정부안 ‘퇴짜’와 향후 연금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국민연금 정부안 ‘퇴짜’와 향후 연금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청와대는 보건복지부가 만든 국민연금 개편안 초안에서 ‘보험료율 인상폭’을 문제 삼았다. “정부가 서민 부담을 우선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이 많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도 이렇게 말한다. 노후에 받는 돈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제도가 어떻게 될 것처럼 얘기하는 건 과장”이라고 말했다. 재정만 강조해 보험료를 올렸다가는 오히려 연금 사각지대가 늘어날 것이고, 충분히 검토해 제도 변화에 대한 동의를 얻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 참여했고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 교수는 “국민 부담이나 성장, 고용, 분배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할 여유가 아직은 있다”며 “보험료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퇴직 뒤 연금으로 생계비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려면 보험료를 높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짧은 시기에 급격히 인상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소득대체율을 현재의 45%에서 50%로 올린다 해도 실제 연금액수가 늘어나는 것은 수십년 뒤다. 반면 보험료율을 올리면 돈을 내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부담이 늘어난다. 4차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은 현행대로라면 2057년 소진될 것으로 예상됐다.


주 교수는 소진 시점이 아직 40년 가까이 남았고, 연기금 660조원은 수십년간 계속 늘어날 것이므로 보험료를 급격히 올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가입자 부담을 판단하는 것은 사회보험 운영의 핵심적인 요소”라면서 “정부가 보험료를 올리려 한다면,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료를 올릴 때 소득계층별로 느끼는 부담의 크기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세자영업자나 저임금 노동자가 느끼는 부담은 크고, 이 때문에 도리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주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한 여론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토론회나 설문조사로 여론을 모은 것은 처음이고, 수렴한 여론을 향후 나올 정부안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개혁 논의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더 폭넓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말했다. 연기금이 실제 당장 소진될 판인지, 노후소득을 보장해주는 기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 내 연금특위에서는 노·사·정·공익 위원들이 연금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 교수는 “(연금특위는)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중요한 장이 될 수 있고, 대중을 설득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보험료율이 논란거리가 되면서 연금개혁이 미뤄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연금개혁은 긴 시간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이 제도 변화에 얼마나 동의할지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만 강조되면서 연금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적지 않지만, 주 교수는 제도가 도입된 지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긍정적인 흐름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노후보장에서 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고,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국민연금 급여 인상을 포함한 더 다양한 개혁안을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112153005&code=940601#csidx6cdac2e15c160dc94c36606b84b9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