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아십니까?

2018. 10. 4. 17:4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장애인에게 편견 그만

 

 

 

 

 

직장인이라면 아마 올 여름부터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란 생소한 단어를 접해봤을 것이다.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란 이제 연례 행사가 된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해, 지난 5월 29일부터 의무화된 직장 내 법정 교육을 말한다.

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당연히 가져야 할 서로에 대한 이해심을 다 큰 어른이 된 후 이를 위반하면 큰 벌금까지 물어야 할 정도로 강력한 법률에 따라 교육받고 있는 걸까?

사람 개론의 부재 

모든 대학 교육은 선택한 전공에 대한 입문학 개론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뒤 그 누구에게도 '사람'에 대한 개론을 체계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다. 법대에 가면 법학 개론을 배우고, 미대에 가면 미술 개론을 배우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평생 사람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다니,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학교에 진학해 처음 교과서를 받으면 "철수야 안녕, 영희야 안녕!" 하며 나와 다른 상대방의 존재를 인지하고, 바른 생활이란 주제 아래 서로가 지켜야 할 도리를 배운다. 그러나 '남자는 왜 그래? 여자는 왜 그래?'라는 의문부터, '저 사람은 왜 피부가 까매? 저 사람은 왜 못 걸어? 저 사람은 왜 가난해?' 같은 의문을 명료하게 해소해주는 교육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에 대한 답변은 대체로 부모의 몫으로 던져져 왔다.  

저마다 다른 성별, 인종, 문화와 언어는 물론이고, 다른 모습을 가진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다르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모두 부모에게 전담시켜 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관한 문제적 행동을 보이는 이들의 잘못을 학교와 사회가 아닌 '가정 교육'에서 찾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범하지도 못한 차이는 언제나 손가락질 받는 당연한 이유가 되었고, 그 누구도 그로 인한 놀림에 부당하다고 맞서기 어려웠다. 기성세대가 유년시절 얻은 별난 별명과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졌고, 남보다 부족하면 누구나 쉽게 겪는 경험쯤으로 여기기 쉬웠다. 무조건 남을 밟고 서야 하는 적자생존의 가치관과 나보다 못한 존재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 되어온 진부한 사회. 다양한 사람에 대한 보편적 개론이 이런 케케묵은 사회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초등학생에게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필자. ⓒ김영웅

 
#Me too 운동이 아니었다면 

 


과거와 달리 근래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의 통합교육이 일반적이며, 학교에서부터 비교적 자세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터라 오늘날 청소년 세대에선 다름에 대한 인식이 매우 건강한 편이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개인의 사회 경험과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정보로 습득해온 어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일이 많다. 근거 없는 편견과 혐오가 빈번하고, 이에 따른 첨예한 대립이 결국 집단 간 갈등구조를 불러 왔으며, 최악의 경우 범죄라는 비극적 뉴스로 결론나기도 했다.  

급기야 국가는 이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다 큰 어른들을 대상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부족한 소양을 의무적으로 교육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또 이 교육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적지 않은 과태료까지 물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금년 하반기에 더 엄격히 개정된 '성폭력 예방 교육'과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다.

필자는 18년째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전국의 학교와 기관, 기업을 대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현황을 소개하고, 우리 사회가 가진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변화시켜 가는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 법률이 정한 1시간 안팎의 시간 동안 이러한 내용들을 강의하지만, 1년 365일, 시간으로 치면 8760시간이나 되는 긴 세월 중 단 1시간의 강의만으론 부족한 부분이 많다.  

1999년 성희롱 예방 교육 제정에서부터 시작되어, 2004년 성매매 예방, 2006년 가정 폭력 예방, 2010년 성폭력 예방 교육으로까지 발전한 성 관련 교육은 20년 역사를 가져왔을 만큼 일반적 소양 교육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그러나 이 교육은 그동안 기관이나 기업, 조직 구성원의 입장에서 번거로운 연례 행사 정도로 대접받는 일이 많았다. 그토록 긴 시간 이뤄진 노력에 비해 성폭력 문제에 대한 불안은 오히려 극심해졌다. 성범죄는 쉬지 않고 뉴스를 장식했고,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납득하기 어려웠고, 정치인들의 약속은 늘 말잔치에 머물렀다. 

이런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최근 1년간 주목받았다. 유서를 통해 성접대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며 자살한 연예인, 모든 여성의 누적된 분노를 엮어 반향을 일으킨 소설 <82년생 김지영>, 일부 유력 정치인들의 성폭력 논란으로 외국에서부터 적극 확산된 '#Me too 운동'은 20년 교육도 이뤄내지 못한 인식 변화와 사회 변화를 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모두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엄중한 사건이 최소 반년 가량 여론을 장악하지 않으면, 쉽게 망각하고 간과해 결국 비슷한 불행을 반복하는 경향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 세월호의 아픔은 씨랜드 참사를, 최근의 미투 운동은 앞선 여러 성폭력 사건을 다잡지 못해 맞닥뜨린 반복된 아픔임을 부정할 수 없다. 

 



장애인, 미투를 기다리다 

성폭력 예방 교육 현장에서도 간혹 강사의 자질 부족으로 인해 엉뚱한 편견이 올바른 기준인 것처럼 소개되기도 하는데, 장애 인식 개선 교육에서도 부실한 강사 육성과 콘텐츠 부족으로 종종 그릇된 내용이 전해지기도 한다. 가령 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 전용 개찰구 같은 시설에 혐오감을 씌운다거나, 돌발 질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오히려 그릇된 오해가 생기도록 하는 경우들이 그것이다. 

법으로 규정된 장애 인식 교육 역시 2007년부터 시행되어 10년을 넘었지만, 지난해 1000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60%만 교육을 실시했고, 실시기관의 60%만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하반기부터 직장 내 장애 인식 개선 교육 미이행에 대한 과태료 조항이 생겨 이를 행하지 않을 시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담하게 되었으나, 같은 날 국회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의 과태료는 기존 3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됐다.

처벌의 정도가 부족해서일까? 미투 운동처럼 아직 장애인들의 힘겨운 삶이 대중의 공감대에 충분히 다가서지 못하고 있어서일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면 기본으로 갖춰야 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확인하기 위해, 다 큰 어른들을 향해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란 수고를 경주하고 있다. 이 노력이 성폭력 예방 교육처럼 20년의 시간을 꽉 채워야만 세상이 바뀌는 걸까? 그렇게 되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오는 걸까? 

▲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받은 어린이와 함께 어울리는 필자. ⓒ김영웅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려는 역지사지의 작은 노력, 그 노력을 당부하며 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고자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사람이라 사람답게, 인간이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매일 외줄 타듯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단 한 번이라도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반평생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통해 이를 호소해온 필자는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되뇌고 있다.

 



"장애인도 행복해지고 싶다. (Me too!)" 

(김영웅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원장은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작은키모임 부회장, 한국골형성부전증모임 초대회장을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