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프랑스 파리의 '5% 참여예산제', 한국은?

2018. 9. 28. 13:5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청년자치정부'를 기대하며






폭염의 끝 무렵, 태풍 솔릭의 한반도를 통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국이 긴장했고 중앙정부, 지방정부 역시 몇 차례 태풍 대비 안내 문자를 보냈고 언론 역시 시시각각 보도했다. 일부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 수준은 예상했던 것보다 적다고 한다. 

태풍 솔릭 스스로 약해진 덕도 있지만 정부 등 공공기관의 준비가 이전에 비해 철저했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태풍 솔릭처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일은 보기 드문 일이다. 문제 대부분이 대비는커녕 이미 커진 다음에야 알아차리기 일쑤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면 다행인데,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문제 대응력이 떨어진 현대사회 

청년 문제는 2003년 처음 청년실업으로 가시화된 이후, 문제의 진단과 해법이 어긋난 채 1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단기적, 일자리 정책을 넘어 종합적인 사회정책으로 구축되어 가고 있다. 전 세계가 국가는 부유해졌고,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불행해진 이 시대, 새로운 사회문제에 대한 전 사회의 해결력이 떨어지고 있다. 인구, 젠더, 환경 등 사회의 여러 변화와 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가 높은 반면 미래에 대한 대응력 또한 높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은 시민에게 묻기 시작했다.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정답보다는 문제를 공유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장이 주목받고 있다. 공공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도 하고, 시민이 직접 그 장을 열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의 '5% 참여예산제', 아이슬란드의 '더 나은 레이키비크'는 대표적인 시민이 예산을 결정하는 제도이며,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아고라보팅'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다.  

청년들이 제안한 '청년자치정부' 

지난 9월 1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자설명회를 통해 내년 3월 청년자치정부를 출범하겠다고 밝히며 앞으로 준비 기간을 갖겠다고 했다. 지난 6년 동안 성숙한 서울시 청년정책 거버넌스를 한 단계 발전시키자는 청년들의 제안에 부응한 것이다. 

아직 헌법에 지방정부라는 명시적 표현도 없는 2018년 대한민국에서 청년자치정부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 청년자치정부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정부의 새로운 모델로서 청년자치정부의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 지난 9월 2일 청년당사자가 의제를 발굴하고 청년의 능동적인 시정 참여를 도모하고자 '2018 서울청년의회'가 열렸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행정 정보를 공개하라! 

첫째, 행정은 더 과감하게 열려야 한다. 즉, 시민의 정보 접근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동등한 정보는 참여와 협력의 선결 조건이다.  

행정이 보유한 정보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행정이 관리하는 정보, 또 하나는 행정 절차상 수반되는 정보.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지역의 자산, 소재 법인, 부동산 관련 정보가 있고, 후자는 정책 추진 시, 의사결정의 결과로 나타나는 회의록 등 시민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 행정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정보의 공개 여부와 공개 범위의 권한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정보공개법을 시행해왔다. 20년째로 접어든 2017년 기준 행정의 정보공개율은 95.5%에 이른다(정보공개율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청구 처리 건수 중 비공개 결정된 거수를 제외하고 전부 공개, 부분 공개 결정된 건수의 비율을 의미, 행정안전부, 정보공개 연차보고서, 2018).  

그러나 흐른 세월만큼 정부가 제시하는 높은 수치만큼 시민의 체감도와 신뢰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우리나라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국가청렴도 52위를 기록했다. 한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국회의원 특수활동비는 당초 국회가 공개를 거부하던 것을 대법원이 공개하라는 결정을 내린 뒤에야 베일을 벗게 되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민선 6기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개최한 공청회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공청회는 폭넓은 시민이 참여하기 어려운 평일 낮에 개최되고, 부족한 홍보와 전자 공청회 등 이미 있는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의 건축 및 환경에 관한 소식을 알리는 공청회가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정책 결정을 위한 지식과 정보 대부분을 행정이 독점하고 있다. 

시민 참여를 확대하자! 

둘째, 시민참여는 더 확대되고 진화되어야 하고, 새로운 정책 의사결정 모델이 수립되어야 한다. 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같은 이해를 지닌 시민들은 분절되지 않고 모일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시민이 정부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가장 손쉬운 참여는 투표다. 4년, 5년 정해진 기간마다 시민은 자신의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1인 1표를 지닌다.  

또한 상시로 청와대 및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국민청원제를 이용할 수 있고, 서울시 차원에서는 응답소 또는 민주주의서울에 접속해 민원 등 정책에 관한 의사 표현과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다. 이는 시민과 공공기관이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 참여의 방식이다. 이러한 온라인을 활용한 참여 방법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발전한 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 개인, 그리고 일회적인 참여를 넘어 집단화된 시민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 안착되어야 한다. 

우수 거버넌스 사례로 손꼽히는 서울시와 청년의 거버넌스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청정넷')라는 참여기구와 청정넷이 연1회 개최하는 청년의회를 특징으로 한다. 청정넷이 더 많은 청년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개방성을 추구한다면, 청년의회는 숙의의 결과로서 정책의 효과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올해로 4회를 개최한 청년의회에서 제안된 대표적인 정책은 청년수당(청년활동지원), 희망두배 청년통장, 연령 기준 청년 공공주택 등이 있는데, 대한민국의 청년정책의 표준이자 기준이 되고 있다.  

이처럼 정책 확산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청년들이 하나의 시민집단으로 존재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참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는 세 가지를 내포하는데 집단적·반복적 토론, 이를 통한 검증된 정책안, 축적되고 전수되는 경험이다. 개별 시민이 참여했을 때에는 달성하기 어려운 요소다.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을 쌓자! 

다른 차원의 정부가 되기 위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조건은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을 쌓는 것이다. 기술을 쌓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충분한 정보공개와 확대되고 진화한 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갈등을 조정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정책 결정 과정은 관료의 영역이었다. 최근 들어 공론과 숙의라는 이름으로 정책 결정 과정을 혁신하는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단기간 찬반조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이해관계자의 참여만큼 중요한 것은 조정과 조율, 그리고 합의인데, 이는 사전에 정한 규칙으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의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시민단체, 전문가, 이익집단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이해관계자가 있는 정책 의사결정 과정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규칙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가 과감한 상상력으로 그려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유례없는 폭염을 기록한 올 여름, 내년은 더 더울지, 아닐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당장 내일, 부동산 가격은 더 오를지, 아니면 갑자기 폭락할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사회는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점점 더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있으며, 변동의 폭 역시 크고 이로 인한 사회문제 역시 해법을 모색하기 쉽지 않은 조건에 있다. 

청년자치정부에 거는 기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권한이 특정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별, 세대, 인종 등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문제의 진단과 해법, 그리고 결정하는 공적인 장은 '50대 남성'으로 대표되는 일부 사회집단에게 기울어져있다. 

지난 40년 눈부신 경제성장과 수준 높은 민주화를 이루는 동안 기성의 규칙과 관행이 자리 잡으면서 새롭게 사회에 진입하는 사람들, 대표적으로 청년들이 공적 영역에서 성장하고 공적인 갈등과 제도를 다루는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게 되었다. 더 나은 민주주의, 차원이 다른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중된 권한을 더 넓게 나눠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년자치정부는 그 시도를 청년에서부터 해보자는 것이다.  

아이슈타인은 생전 "지식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직면한, 그러나 과거에는 겪어보지 않은 문제들과 닥쳐올 문제에 대한 해법은 현 세대가 내딛는 과감한 여지에서 잉태하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청년자치정부에 거는 기대는 미래에 대한 준비, 바로 여기에 있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11897#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