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성남시 '어린이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를 환영한다

2018. 7. 12. 18:4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언제까지 '모금'으로 어린이 병원비를 댈 건가







나는 어렸을 적 여름마다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갔었다. 고등학교 때인가…. 친구 중에 한 명이 본인은 여름에 가족과 여행을 가본 적이 없으며,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 가까이에 있는 이 친구와 내가, 사실은 머나먼 다른 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가족과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내가 일하고 있는 아동복지단체인 '함께걷는아이들'은 저소득가정 아이들에게 악기 레슨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지원한다. 지원 받은 아이들 중 나중에 악기를 전공하는 아이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악기를 전공하는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부유한 집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다.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다니고 악기를 운반하려면 당연히 자기 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과 복지기관의 지원금으로 레슨을 받고 대학을 다니는 우리 친구들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은 자리에 있을까? 

아이들이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 어느 가정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우리는 너무도 다른 세상, 다른 기회, 다른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러한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게 아동복지단체에서 일하는 모든 사회복지사·활동가들의 바람일 것이다. 

아마도 가장 힘든 일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이 아플 경우이다. 자녀가 아픈 것은 가정형편을 떠나서 어느 가정에게나 힘든 일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아동 발병 이전에는 기초생활수급가정이 아니었던 가정 중 51.4%(72가정 중 37가정)가 아동이 아픈 이후에 부모의 실직과 의료비 지출로 수급가정이 되었다. 

자녀가 생명의 위독을 다투는 투병 중에도 입원비와 치료비용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지난 2017년 12월 5일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연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언하신 보호자 한 분의 말이 마음에 와서 박힌다.  


"어떤 부모가 아이의 생명 앞에서 돈을 저울질하고 싶겠습니까"

아이 병원비를 모금에 의존하는 대한민국 

아동복지단체는 아동이 아프고 병원비가 부족한 가정, 그러니까 부모는 간병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는 끝도 없는 병원비·치료비가 들어가는 상황에 처한 가정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알려지면 선한 마음을 가진 후원자들이 지갑을 열고 아동은 모금된 돈으로 어렵게 한고비의 치료비를 해결한다. 비록 다음 고비가 또 남아있긴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들의 모금이 계속되어야 할까. 이런 방식으로 아픈 아이들을 모두 도와줄 수도 없다. 아이들이 병원비 걱정없이 치료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아동의 생명은 국가에서 책임져주는 대한민국은 불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을 가진 아동복지단체, 사회복지단체, 시민단체가 모여서 어린이병원비는 국가가 보장하라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연대(이하 연대)는 2016년 2월에 출범하였다. 이후 거리홍보와 서명, 토론회, 언론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2017년 4월에는 대선 후보들에게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 정책을 제안하였다. 

당시 대부분 후보들이 응답해 주었는데, 역시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 건강보험보장 확대 방안인 '문재인케어'를 발표하였다. '문재인케어'에는 연대에서 제안한 내용의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15세 이하 아동의 입원비 본인부담율이 15%에서 5%로 낮아진 것이다. 또한 현재 건강보험에서 포괄하지 못했던 '비급여' 항목들도 '예비급여'라는 과정을 두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비영리단체, 공익단체들은 미션이 완성되어 자연스럽게 해산하는 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결말인 것 같다. 연대도 어린이병원비를 국가가 결국 보장하게 되어 미션을 달성하고 해체하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재인케어도 어린이 병원비를 완전히 해결 못해 

안타깝게도 '문재인케어'가 실행되어도 여전히 우리는 방송이나 아동단체에서 '아픈 아동을 위한 병원비 모금'을 봐야 할 것 같다. 연대에서 분석한 사례에 따르면, 2015년 3세로 '중증복합면역결핍증'을 진단받고 현재 치료 중인 아동의 경우, 문재인케어 이전에 가정에서 부담하는 병원비는 5645만 원(2016년 1년간)이었다. 문재인케어가 적용될 경우, 연간 4072만 원으로 조금 감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비용이 줄어들지만 여전히 엄청난 비용이 병원비로 들어간다. 

왜 그럴까? 예비급여 항목 때문이다. 아동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병은 대부분 희귀난치병으로 병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거나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에 아이에게 적용되는 치료법, 치료약은 상당부분 비급여로 이루어졌고, 문재인케어 적용 후에도 비급여는 아니지만 완전 급여가 아니라 '예비급여' 항목으로 남아 본인부담이 50%~90%에 달한다. 여전히 그 부담이 아픈 아동의 가정에게 돌아간다.  

문재인케어도 이러한 한계를 인정해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라는 보완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중위소득 이하 가정에게만 적용되고 금액도 진료비의 절반까지만 지원되며, 총 지원액이 연간 2000만 원으로 제한돼 있다. 문재인케어가 이전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아픈 아이들의 병원비를 완전히 해결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문재인케어가 발표되고 기쁘기도 하지만 허탈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려지고 치료하기 어렵지 않은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우리는 아주 가벼워진 영수증을 받게 될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인정하는 '급여'로 치료를 받으면 병원비의 본인부담금이 15%에서 5%로 준 덕택이다.  

하지만 고치기 어려운 희귀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우리는 "뭐야? 문재인케어로 어린이 병원비 보장한다더니 뭘 보장한거야"라고 소리치게 될 것이다. 즉, 아직 모금방송은 끝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연대는 다시 제안했다. 어린이 병원비로 환자 가정이 1년에 100만 원까지만 쓰도록 하자. 본인부담이 100만 원이 넘을 때는 정부가 보장하라고. 물론 이 100만 원에는 예비급여도 포함된다. 이래야 수천만 원의 병원비가 나와서 아이의 치료 여부를 돈 때문에 고민하게 되고, 모금에 의존하게 되고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는 막을 수 있다.

성남시의 '어린이 병원비 완전 100만 원 상한제'를 주목한다!

연대는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지방정부에서 먼저 이 정책을 적용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은수미 성남시장후보, 권태홍 전라북도 도지사 후보, 박수택 경기도 고양시장 후보, 윤오 서울시 도봉구 의원 후보와 정책 협약을 맺었고, 이 중에 성남시 은수미 후보가 당선되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어린이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를 '10대 핵심 공약'으로 결정하여 정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국민건강보험으로 시행하면 가장 좋겠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먼저 추진해 좋은 선례로 확산되기 바란다. 성남시가 선구적으로 "어린이병원비 100만원 상한제"를 시행하면서 정책의 실행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하는 좋은 모델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우리 연대는 성남시에서 지역 주민, 환아 부모, 전문가 등이 적극 이 정책 과정에 참여해 "어린이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가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며, 연대 역시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함께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연대 활동을 하던 활동가가 얼마 전 출산을 했다. 주위에서 모두 태아보험을 들 것을 권유하였으나, 어린이병원비는 국가가 보장할 것을 기대하고 믿으면서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심장의 질환이 의심되어 지속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심장초음파가 한번 받을 때마다 수십만원의 비용이 들고 아직도 비급여 항목이다.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이 절실함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내가 모든 아동들이 사보험에도, 모금에도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이유이다.


▲ 2016년 10월, 서울대 어린이병원 앞에서 진행된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 국민서명운동' 발족식.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