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30만원, 또 줬다 뺏을 건가요?

2017. 7. 12. 13:2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문재인 정부에서 이 주제로 칼럼을 쓰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 노인이 겪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이야기이다. 이분들은 매달 기초연금을 받지만 다음달 기초생활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당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연금 20만원이 그러하더니 앞으로 금액이 30만원으로 올라도 아무런 혜택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황스럽다. 야당 시절에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그리 비판하더니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갑자기 말을 바꾸어 박근혜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바로 ‘보충성’ 원리이다. 이는 생계급여가 정부가 정한 기준액과 수급자의 소득인정액의 차이를 보충해주는 복지이므로 기초연금을 받았으면 같은 금액을 삭감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당사자 어르신들은 새 정부에서 이럴 줄은 몰랐다며 탄식하신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작년 총선 공약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최빈곤층인 기초생활보장 대상 어르신들이 기초연금 혜택에서 사실상 제외”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생계급여와 별도로 기초연금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관련 법안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돼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이 공약이 사라졌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되풀이된다는 의미이다. 화들짝 놀란 당사자 노인들과 복지단체들이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문의했으나 현행대로 간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내일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계획 역시 같은 기조로 알려져 있다. 


물론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공공부조 복지의 기본 원리는 보충성이다. 그렇지만 기초연금에 이 원리를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초연금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보다 늦게 도입된 노인복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연금을 전액 소득인정액으로 잡아버리면 수급 노인에게는 급여 총액이 그대로이고 차상위 이상 노인들만 20만원 늘어난다. 그 결과 노인 현금복지로 기초연금이 도입되었지만, 수급 노인과 일반 노인의 가처분소득에서 기초연금만큼 격차가 발생하는 형평성 문제가 초래된다.


게다가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받는 현금 복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억울함은 더 크다. 2007년까지 수급 노인들은 기초생활 생계급여와 함께 경로연금, 교통수당을 받았다. 당시 경로연금은 저소득 노인을 위한 지원금, 교통수당은 전체 노인에게 제공되는 노인복지로 여겨 보충성 원리가 적용되지 않았기에 수급 노인에게는 생계급여와 별도로 대략 6만원가량의 현금급여가 존재했다. 그런데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면서 수급 노인의 현금복지에 큰 변화가 생겼다. 경로연금과 교통수당이 폐지되었고, 이 노인수당들을 통합했다는 기초노령연금에 경로연금과 달리 보충성 원리가 적용되었다. 수급 노인은 기초노령연금을 받지만 생계급여에서 공제되므로 기존 경로연금, 교통수당만 빼앗겨버린 셈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기초연금으로 이름이 바뀌어 박근혜 정부에서 반복되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될 예정이다. 


보충성이 공공부조 설계에서 기본 원리이지만 어떤 변형도 용납하지 않는 철칙은 아니다. 지금도 양육수당, 국가유공자·참전유공자 수당은 전액 소득인정액에서 제외되고, 집단의 특성을 감안하여 노인, 장애인, 대학생이 버는 소득은 일부만 소득인정액으로 계산한다. 기초연금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이후에 도입되었고, 대다수 노인에게 제공되는 노인수당 취지를 존중해 소득인정액 계산에서 제외하는 유연함을 발휘할 순 없을까. 


정부 쪽에서 이런 설명도 들린다. 이 문제는 현행 기초생활보장제와 기초연금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서 풀어야 한다고. 좋다. 설령 그러하더라도 그 재편이 완료되기까지는 보완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는가? 


이런 이야기도 들린다. 수급 노인이 무려 40만명이라 완전 해결하려면 재정이 한 해 1조원 넘게 소요된다고. 그렇다. 거꾸로 보면, 빈곤 노인들이 그 막대한 규모의 복지를 박탈당해왔다. 혹시 집권이 거의 확실시되는 대선에서 정책을 바꾼 주된 이유가 예산 때문이었을까. 복지재정은 모두의 과제이다. 왜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그 부메랑을 맞아야 하는가?


매년 기초연금이 도입된 7월이면 당사자 어르신들이 청와대 앞에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을 요구하는 도끼상소를 벌여왔다. 내일 대통령이 국정기획자문위의 활동 결과를 보고받는 그 시간에, ‘이제 30만원 줬다 30만원 뺏을 건가요?’라며 어르신들이 네 번째 상소를 올린다. 전임 대통령은 무관심으로 냉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응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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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112105005&code=990308#csidxbff8eb8fd620cbd984eea3ce6237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