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문재인, 재원 방안 준비된 것 맞나?

2017. 4. 27. 14:5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2017년 대선의 빈약한 재정공약




_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




대선 후보 방송 토론을 볼 때마다 의아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왜 뻔히 예상되었던 질문에 속 시원히 답을 하지 못할까? 공공 부문 81만 개 일자리 공약의 재정 방안을 물으면 이미 밝혔다고 얼버무린다.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면서도 당연히 제기될 보험료율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 25일 JTBC 주관 토론회에선 거듭 질문하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를 향해 '우리 정책본부장하고 토론하시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날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로부터 복지 공약 소요 재정이 과소 추계되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문후보가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에 보고한 총 공약 소요액이 연 35.6조 원이다. 이에 심 후보는 부양의무제 폐지, 고용보험 급여 강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만으로도 약 30조 원에 이른다면서 총소요액을 너무 축소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는 왜 정책 공약 비판에 답을 하지 못할까? 

토론에서 문후보가 집중 공격을 당하자,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윤호중 정책본부장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토론에서 제기된 주요 논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덕분에 내가 가졌던 여러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문 후보에게서 느꼈던 정책 공약의 불투명함이 정작 캠프 정책팀 자체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 본부장은 공공 부문 일자리 재정 내역에 대해 말했다. "선대위에서 친절하게 언론에 설명했어야 하는데, 준비했지만 알려드리지 못한 점 있었다." 아니 민주당 예비 경선 때부터 가장 뜨거웠고, 지난 5당 후보 방송토론에서도 계속 제기되었으며, 자신의 후보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해 궁지에 몰렸던 주제였는데, '준비했지만 알려드리지 못했다'니. 이런 업무 태만이 있을까. 

공공 부문 81만 개 재원, 정부 예산만 잡았다? 

윤 본부장은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중 주로 예산이 투입되는 일자리는 17만 개 공무원 충원이라 설명한다. 여기에 약 17조 원이 들어간다. 일자리 확충도 17만 개를 한꺼번에 늘리는 게 아니라 매년 일정 인원을 증원하는 순차방식이라며 질문을 던졌던 유승민 후보에게 '등차수열을 공부하시라'는 충고도 덧붙인다.  

왜 정작 이렇게 알리지 않았을까? 기초연금 공약이 30만 원이지만 첫 해 25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밝힌 것처럼, 왜 공무원 일자리 계산법을 친절히 소개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사회보험, 부대비용 등을 둘러싸고 논점이 있지만, 일단 17만 개 일자리에 필요한 재정 논란은 이 수준에서 넘어가자. 

그래도 남는 문제는 나머지 64만 개 일자리의 재원이다. 윤 본부장은 대답한다. "그것은 사회보험에서 부담하는 것이기에 예산에 집어 넣지 않았다'고. 아마 보육, 요양 등 민간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공공 부문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또한 공공기관에서 간접 고용된 인력이 직접 고용으로 전환되는 일자리도 포함되는데 이 경우에도 공공기관 역시 정부조직이 아니니 여기에 필요한 예산을 소요 재정에 계산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19대 대선 후보. ⓒ문재인 캠프


과연 이게 상식에 맞는 셈법인가? 정부, 사회보험,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일자리를 모두 합해 81만 개라고 제시했으면, 그 주체가 누구든 전체 소요 재정을 계산하고 각 주체별 재정 몫과 재정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자리 수는 총합을 말하고 소요 재정은 공무원 중심으로만 계산하는 게 논리와 상식에 맞는가? 

일자리 수치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민주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을 보면, 81만 개 중 실제 늘어나는 순증 일자리는 소방관, 경찰, 교사 등 공무원 17만 명이다. 나머지는 민간 부문에서 일하는 보육, 요양노동자, 그리고 공공기관에 간접 고용된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으로 전환되는 노동자의 수치로 이해된다. 엄밀히 따지면 일자리 확대가 아니라 '전환'이다. 

물론 불안정한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정책도 중요하고 바람직하다. 그런데 문재인 캠프가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공약에서 '순증'과 '전환'을 구분하지 않고 단순 합산해 발표해 논란을 자초한 면이 있다. 처음부터 순증과 전환을 구분해 발표하고, 전환에 필요한 재정도 그게 사회보험 몫이든, 공기업 몫이든 계산해 알리고, 그 적절성을 검증받았야 했다. 그래야 공연히 수치 논란에 빠져들지 않고, 정부가 일자리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는 의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사회보험 소요액은 발표에서 뺐다? 

특히 사회보험에서 수행하는 공약 사업은 재정 계산에서 제외했다는 윤 본부장의 발언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은 크게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사회수당 유형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사회보험이 지출 규모에서 3분의 2를 차지하고 앞으로 80%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복지구조가 사회보험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복지를 늘려간다면, 공공부조, 사회서비스/사회수당도 확대해야겠지만 핵심은 사회보험 부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들마다 사회보험 급여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민연금 급여율을 인상하거나 크레딧을 확대하고, 실업급여와 육아휴직 급여를 강화하며,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린다. 이는 바람직한 공약이고 해당 사회보험의 보험료 인상을 수반하는 정책이다. 

윤 본부장은 말한다. '건강보험 비급여(의 급여)화 소요 예산을 계산하지 않았다. 건강보험은 자체 수입으로 운용되는 사회보험이다. 그래서 소요 예산 추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이야기한다.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연장하는 것에 대한 비용이 계산되지 않았다, 고용보험 역시 자체 수입으로 운영되는 사회 보험이기에 소요 재원의 재정 부담으로 추계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현재 국가재정법에 의해 정부는 예산과 기금을 합해 정부총지출을 발표한다(우리나라 재정체계 특수성으로 국민건강보험만 재정 밖에 존재). 올해 약 400조 원이다. 이는 예산과 기금을 합친 금액이다. 복지 사업의 회계가 예산이든 사회보험기금이든 국민의 입장에선 복지 급여가 확대되는 것이고, 세금이든 사회보험료이든 재원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보가 사회보험 급여 확대를 공약했으면 당연히 필요 재정이 얼마고 보험료를 어떻게 할지를 밝히는 건 상식이다. 사회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이에 수반되는 소요재정은 예산회계가 아니어서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궤변에 가깝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재원은 무엇인가? 

보건의료 공약의 재정 방안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아직 문재인 후보는 보건의료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에 실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윤 본부장의 추가 설명도 상식을 벗어난다. 그는 말한다. "현재 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20조 원에 달하기 때문에 우리가 공약한 비급여(의 급여)화에 소요되는 재원은 충분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정말 그런가? 최근 정부 공식 발표에 의하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차기 정부가 끝날 즈음인 2023년 경에는 누적 흑자액이 모두 소진될 전망이다. 이는 흑자분이 보장성 확대의 재원이 되기 어렵다는 걸 시사한다. 

혹시 정부 재정 전망이 틀려 누적 흑자액이 계속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흑자분을 유지하기 힘들다. 지난달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개편된다. 당장 내년부터 보험료 수입이 연 1조 원 감소하고, 이후 연 2조 원씩 감소 폭이 커진다. 이런데도 흑자분 사용이 보장성 확대를 위한 재원 대책이 될 수 있는가?

또 가정을 바꿔 보자. 건보 재정이 적자로 전환되지 않고, 부과체계 개편에서도 보험료 수입이 유지된다고. 그러면 윤 본부장 말대로 누적 흑자분이 재원대책으로 적합할까? 아마도 급여화 공약만으로도 임기 내에 흑자분을 다 사용할텐데 그 다음엔 어찌 할 건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지속적인 것이라면 재원도 지속가능한 방안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결국 시범사업 수준? 

윤 본부장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에 대한 설명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토론회에서 심상정 후보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만 연 10조 원이 소요된다며 문후보의 소요 재정 과소추계를 지적했다. 심후보가 언급한 10조 원은 국회예산정책처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수치이다. 국회예산정책 자료에는 주거급여, 의료급여, 생계급여 등 급여 수준에 따라 단계별로 폐지할 경우의 소요 재정도 함께 제시돼 있다.  

윤 본부장은 해명한다. '부양의무자 폐지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다. 어느 기준에서 폐지하면 어느 정도의 기초생계보호 대상자가 늘어날지 한번도 통계화된 적이 없다. 따라서 소요 예산으로 만들 근거 자료도 없다. 우선 시범 사업을 하고, 그 결과로 데이터를 만들고, 그것을 기준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법제화하겠다. 그래서 예산을 계산할 수 없었다. 단, 시법사업 예산은 소요 재원에 포함했다'. 

아, 문후보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아직 어떤 방식으로 단계적 절차를 밟을지 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니. 알고 보니 실제 내용이 시범 사업이었다니. 당황스럽다.  

'증세 없는 복지'? 

왜 문재인 후보는 공약 소요 재정을 줄여 발표하려 할까? 재정 방안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재정 개혁과 조세 개혁을 제시하지만 내용은 여전히 막연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문 후보는 공공 부문 81만 개 일자리 재원을 기존 일자리 예산을 손봐서 마련하겠다 밝혔다. 그런데 정작 일자리 예산을 보면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노인일자리 사업 등 손보기 어려운 사업이 대부분이다. 어떤 사업을 구조조정하겠다는 걸까? 단지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의지 선언뿐이다. 

가장 분명한 재정 방안은 증세이다. 그런데 문 후보는 여기서 주춤한다. 문 후보가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에 밝힌 재원조달액은 연 35.6조 원이다. 이 중 재정 개혁이 22.4조 원이고 조세 개혁이 13.2조 원이다. 이 조세 개혁 중 탈루세금 과세 강화, 세외수입 확대를 제외하면 세법개정에 의한 증세는 연 6.3조 원에 불과하다. 세법 개정으로만 연 70조 원 가까이 증세하는 심상정 후보와 크게 비교된다.  

윤 본부장은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확대, 법인세 감면 축소, 그리고 부족하면 법인세 명목세율을 인상하겠다고 제시했다. 대략 이 세 항목을 합친 게 증세의 전부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 비판해도 변명하기 어렵지 않을까.

'빈약한 재정 방안'이 낳은 결과들 

빈약한 재정 공약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헬조선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자리와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걸어야 하지만 그에 따른 재정 공약이 부실하니 말이 꼬인다. 단지 문 후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윤 본부장의 설명은 애초 캠프 정책팀의 안이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빈약한 재정 방안이 초래하는 문제들을 정리해 보자. 우선 실제 준비된 재정에 비해 복지, 일자리 공약이 부풀려졌다. 공공 부문 81만 개 일자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 문구는 화려하나 실제 내역은 그에 못 미친다.  

둘째, 공약 재정소요액이 과소 추계되었다. 복지, 일자리 공약을 발표하면서 소요 재정에선 사회보험 몫이라며, 공기업 몫이라며 계산에서 제외되었다. 

셋째, 일부 복지정책이 실제 후퇴했다. 최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모두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을 공약에 담지 않아 노인, 복지단체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두 후보 모두 이 문제 해결을 약속했었는데 왜 이번에는 빠트렸을까? 캠프가 여러 이유를 내세우지만, 재정 압박도 상당히 작용했으리라 추정한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당하는 기초생활 수급 노인의 수가 무려 40만 명에 육박한다. 이 문제를 완전 해결하려면 연 9000억 원이 소요된다. 재정 공약의 빈약함이 가장 가난한 노인을 기초연금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 2016년 더불어민주당 총선 공약.


▲ 2016년 국민의당 총선 공약.


안철수 후보의 재정 공약도 빈약하고 추상적 

사실 이 글의 비판 내용은 대부분 다른 후보들에게도 적용된다. 방송 토론에서 문 후보의 공약이 논란이 된 까닭에 비판이 문 후보에게 집중되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안철수 후보는 분야별 소요 재정 총액을 제시할 뿐 개별 공약별 소요 재정을 아직 밝히지 않았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개별 공약별 소요 재정을 밝힌 문재인 후보에 비해서도 재정 방안의 구체성이 부족하다. 

현재까지 후보들이 밝힌 재정 방안 공약은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총괄표가 유일하다. 이 자료를 보면,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고는 후보들의 재정 방안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안 후보의 재원 방안을 보자. 총 재원조달액이 연 40.9조 원이다. 여기에는 세수 초과 징수 예상분, 재정 개혁, 비과세 감면 정비, 공평 과세 구현 등 방향만 제시돼 있다. 

특히 세수 초과 징수 예상분으로 연 7.3조 원을 조달하겠다는 공약은 내용 자체를 수긍하기 어렵다. 세제 변화가 없더라도 경제 성장에 따라 세금의 자연 증가는 존재한다. 안 후보는 이를 뛰어 넘는 초과 징수가 매년 7조 원에 달할 거라 가정한다. 이게 과연 현실성 있는 이야기인가? 아마도 작년에 약 10조 원 세입이 추가로 걷힌 게 기대의 근거일 뜻한데, 그러면 그 이전 4년 내내 세입이 예상에 미치지 못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국민의당 안철수 19대 대선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재정 공약에 당당한 후보를 보고 싶다 

이제 투표일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12일. 아직도 시민들은 후보들의 재정 공약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아무리 조기 대선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특히 1, 2위를 달리는 두 후보에게 묻는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대선 후보라면 자신의 청사진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제시했어야 했다. 유권자들이 충분히 검증하고 비판하고 또 공감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야 당선돼도 검증과 확인을 근거로 자신의 공약을 강력히 추진할 것 아닌가? 공약 필요 금액을 명확히 계산하고, 재정방안을 꼼꼼하게 설계하며, 증세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당당한 후보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