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박근혜가 가니, 청년수당이 왔다

2017. 4. 14. 12:4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탈박근혜, 청년 정책의 정상화 시작



_ 기현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지난주 4월 7일, 박근혜 정부 당시 직권 취소되었던 서울시의 청년 수당이 드디어 정상화되었다. 서울시가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시작한 지 무려 16개월 만이다. 청년들의 현실이 어렵다는 사실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알고 있지만, 청년을 지원하겠다는 새로운 정책에 대해서 이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청년 실업이라는 묵혀둔 문제가 드러나고, 일자리도 살자리도 불안정한 청년들에게 전혀 다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중앙과 지방정부가 함께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복지부의 동의 통보는 환영할 일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청년들 

"낼 모레가 서른인데, 이생망이에요."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N포세대(취직, 결혼, 연애, 내 집 갖기 등을 모두 포기한 세대)라는 청년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청년들의 현실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지난 10년간 청년 고용률은 0.9% 포인트 줄었고, 실업률은 2.6% 포인트 늘었다. 구직 준비 기간은 평균 11개월로 지속적으로 길어지고 있다(서울시 청년 수당 참여자의 경우 평균 19개월). 구직 준비를 위한 기본 스펙은 어학 능력, 직무 역량부터 창업이나 인턴 경험, 해외 자원봉사 등 다양한 경험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주5일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고, 주5일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내 이력서가 심사위원들의 손에 10초 이상은 머물러야 승산이 있다니, 진짜 나를 보여주기보다는 눈에 띄는, 꾸며진 나로 포장하는 필력만 늘고 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두렵다. 나가면 다 돈이다. 친구를 만나도(실은 만날 친구들도 대부분 취업준비생), 학원을 가도, 동네 도서관을 가도 움직이면 돈이 든다. 등록금으로 쌓인 빚이 이미 2000만 원은 족히 넘는다. 결국 구직 준비를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학원 다닐 시간, 도서관에서 공부할 시간이 없어진다. 뭘 하고 싶었는지, 뭘 하고 싶은지가 점점 희미해진다.  

취직한 선배들을 봐도 답이 없다. 첫 직장 근로기간이 평균 15개월, 첫 직장의 정규직 전환은 21%에 불과하다. 직장도 없고(있더라도 불안정하고), 가진 돈도 없고, 내 집 마련은 애당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저 월 180만 원 꼬박꼬박 받으면서 먹고, 자는 기본 생활만 해결되면 좋겠는데 역시 이번 생은 망했다 싶다. 



포기하려는 순간 만난 청년 수당 

서울시 청년 활동 지원 사업(청년 수당)은 청년들의 사회 진입을 위한 이행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다. 청년기의 우선 과업인 '진로' 이행을 돕기 위해 수당 지급과 동시에 진로 탐색, 정서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현재 학교를 졸업하고 미취업 상태에 있는 청년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가 전국 124만 명, 서울에만 41만9000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 중 14.7%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된다. 

청년에게 취업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일자리를 갖고, 경제 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면서 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가족 형성'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정책은 곧 일자리 정책이라는 명제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정책은 저성장 시대에 맞지 않았다. 청년 수당은 그동안의 일자리 정책 프레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이다. 청년 당사자가 참여하는 청년의회, 청년정책네트워크, 그리고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까지 참여한 거버넌스의 성과 중 하나다.  

청년들에게는 다양한 일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일자리)와 진로를 고민하고 탐색할 시간(설자리), 안정적인 주거(살자리), 다양한 활동의 기회(놀자리)가 필요하다. 청년 수당은 자기탐색과 진로를 고민할 기회를 보장하자는 취지의 정책이다. 

"저도 어렸을 때 제일 하고 싶었던 게 화목하게 가정을 일구는 것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해요. 그냥 분수에 맞게 살려고요. 현실의 벽이 높기는 하더라고요."

"이번에 포기를 할 참이었는데, 그 때 딱 청년 수당 모집을 하더라고요."

청년들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이 시작된 것은 청년들의 삶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지만, 장기 실업은 저소득, 저출산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사실상 장기 실업 상태가 지속되면서 청년 개인 삶의 활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꿈꾸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한가.

청년 수당은 최소한의 안전망 

2016년 8월, 단 한 번의 청년수당이 2831명의 서울 청년들에게 지급되었다. 정책이 당초 계획대로 최대 6개월까지 지원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단 한 번의 수당 지급과 4개월 간의 프로그램 지원에도 청년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뭔가를 하다가 떨어지거나 그래도 안전망 같은 느낌이 들어요."

"쇼트트랙에서 후발 주자 엉덩이를 밀어주면 스타트가 훨씬 힘을 받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오랜만에 과일을 사먹었어요. 내가 진짜 인간다운 식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지원 받는 기간 동안 더 열심히 취업 준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책 도입 시기에 우려가 컸던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실제로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청년들이 사회로 받은 생애 첫 지원으로 청년 수당의 의미가 생각보다 더 컸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주고, 복지 급여 받을 때처럼 가난을 전시하지 않고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자존감을 지키면서 자신감도 붙고, 사회적 빚이 생겼으니 공공 정책과 납세의 의무, 그리고 우리 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해 더 큰 책무감을 느꼈다. 

▲ 2016 청년 수당 참여자 결과 보고서 의미망 분석. '감사', '도움', '공부', 취업' 등의 단어가 눈에 띈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청년들에게 청년 수당과 활동 지원 사업은 '꿈'과 '시간', 그리고 '사회'를 접하는 통로였다. 군 제대하고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절망하고 있을 때, 아르바이트로 지쳐 있을 때, 투병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해보고자 할 때, 학교를 막 졸업하고 막막할 때 청년들은 청년 수당을 만난다.  

월 50만 원이면 매월 83시간, 최대 6개월이면 498시간을 벌 수 있다. 이 시간 동안 청년들에게는 진로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교육과 상담, 자기 탐색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관심 분야의 현직자(선배)를 만나는 기회, 또 또래집단과 관계를 맺는 등 다양한 사회적 자본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지원은 경제적 악순환뿐만 아니라 구직 도전 실패에 따른 무력감, 계속되는 도전과 실패, 무력감이 강화되는 심리적 악순환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청년니트 지원 정책, 청년 수당 

올해 서울시 청년 수당, 경기도와 인천시의 청년 구직 지원금, 경상북도 청년직업교육 훈련수당까지 청년니트를 지원하는 청년 정책이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미취업 상태의 청년 중 중위 소득 150% 이하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월 50만 원(최대 6개월)의 청년 수당과 활동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경기도는 미취업자 중 중위 소득 80% 이하의 청년에게, 경상북도는 미취업자 중 직업 훈련 참여자에게 월 40만 원의 훈련 수당을 지원한다. 청년들이 구직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 일정한 소득 보장과 다양한 자원을 연계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구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정책 대상을 저소득 청년으로, 지원금의 명목을 구직으로만 한정하고 있는 점은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청년니트의 특성을 고려한 청년 지원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는 분명하다. 

청년 지원 정책은 '어떤 청년'에 더 집중해야 하는가? 청년들의 니트 상태에 따른 지원 정책의 세분화가 필요하다. 진로를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구직 니트' 청년에게는 수당과 함께 일자리 연계, 취업 관련 커리어 컨설팅, 취업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상담을 지원한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구직 준비 니트' 청년에게는 수당 지급과 함께 자기 탐색, 관심 분야별 현직자 멘토링, 단기 일자리, 자기 모색 상담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구직 활동에 관심이 없거나 포기한 '비구직 니트' 청년에게는 집에서 나와 또래 관계를 맺고, 관심사를 찾을 수 있도록 전문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처럼 청년 니트 지원 정책은 미취업 청년들에게 시간 보장과 소득 보장을 넘어 자기를 탐색하고, 스스로 진로를 설정하여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서적 지원을 하는 종합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과제는 많다. 여전히 일하고 있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근로 빈곤 청년), 가족 간병 등으로 사회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청년 등 진로 이행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이중 소외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를 맞이하는 2017년, 청년 정책 정상화의 시작으로 각 지자체의 청년 수당 경험을 나누고, 보완하면서 청년들의 삶에 제대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서울시 청년 정책에 대해서는 아래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다. 

김종진 외, 2017,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한 청년정책 연구>, 서울시
아르스프락시아, 2016, <청년활동지원사업 지원서 분석>, 서울시
서울시, 2015, <2020 서울형 청년보장> 
김홍준 외, 2016, <청년층 활동유형별 지원정책 개선방안 연구>,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김학준, 2016, <의미망 분석을 통한 청년지원사업 정책효과 연구>,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서복경, 2016,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참여자 분석 연구>,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기현주 내만복 운영위원은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