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청년배당 VS 건강보험 정책배틀 해보니

2017. 2. 20. 15:4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민생해법’을 주제로 한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정책배틀’에 참가한 시민정책배원단과 패널, 스태프들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청년수당’과 ‘건강보험하나로’중에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모바일 투표 결과를 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2일 서울 홍대 입구 ‘미디어카페 후’에서 정책 배틀에 나선 두 팀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주권자를 대표하는 시민배심원단 앞에서 각자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민생해법(청년배당 대 건강보험 하나로)을 제시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엄중한 시간. 공연을 앞둔 연주자들의 예민한 표정처럼 불 꺼진 워크숍 공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송파 세모녀 사건’ 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각각 ‘청년배당’과 ‘건강보험 하나로’(건강보험)를 1순위 민생해법으로 제시한 기본소득네트워크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쪽은 우리 사회 비극의 현장으로 배심원단을 소환했다.

먼저 건강보험팀은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세들어 살던 세 모녀가 집세 70만원이 담긴 봉투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소개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는 경로엔 항상 ‘질병’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 송파 세 모녀 사건에서, 어머니와 두 딸은 12년 전 아버지가 방광암으로 투병하다 숨지면서부터 생활고를 겪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던 어머니가 허리를 다쳐 직장을 잃게 된 것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큰딸은 고혈압, 당뇨병으로 직장에 다닐 수 없는 처지였다. 이들이 치료비 부담 없이 질병을 극복해 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청년배당팀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읊조리는 20대 청년의 삶을 들었다. 체감실업률 20%에 이르는 청년들은 반듯한 일자리를 꿈꾸며 경쟁하지만, 일자리 절벽과 학자금·생활비 대출에 시달리며 좌절만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안전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정비용역업체 김아무개씨의 가방에는 컵라면과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들어 있었다. 그는 서울메트로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굴레를 묵묵히 견뎌내던 청년이었다. 이들 청년에게 청년배당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생명줄이라는 것이다.


우리 정책의 비교 우위는요

건강보험팀이 내세운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건강보험 하나만 있으면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이다.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몫(보장률)을 80%까지 올리고, 환자가 부담하는 치료비에도 상한(연간 100만원)을 두는 정책이다. 큰 수술과 입원 치료로 병원비가 수천만원이 나오더라도, 환자 본인 부담은 100만원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건강보험팀은 이런 정책이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2014년 기준 1년 의료비 총액이 65조5천억원인데, 이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한 몫이 40조7천억원, 환자가 부담한 금액이 24조8천억원이다. 어마어마한 치료비 부담에 국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 가구당 보험료가 한달 28만8천원(2013년 기준)에 이른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끌어올리면 불필요한 사보험료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소득 격차가 건강 격차로 연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한 재원은 연간 14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전국민이 내고 있는 연간 사보험료 총액 30조~50조원과 비교하면 절반에 못 미친다.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강점도 있다. 불필요한 세대간·지역간 갈등 없이 전국민이 ‘복지국가의 맛’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건강보험공단엔 흑자 재원 20조원 정도가 쌓여 있는 상황이다.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정책인 셈이다.


건보 하나로
‘세모녀’ 예로 들며 질병비용 환기재원까지 구체화…설득력 더해
“보편성 가진 건보 정비가 현실적”

청년 배당
‘이생망’ 언급하며 20대 삶에 초점 기본소득으로 가는 징검다리 강조
“청년층에도 공동체 의식 생길 것”

‘송파 세모녀’ ‘구의역 청년’ 모두 살리면 안되나요?

“청년배당 지급 합의된 사회라면 건보 하나로 당연히 시행될 것”

청년배당팀은 ‘시대의 변화’를 내세웠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고도화되면서 일자리의 질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데다,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일자리 절벽’이 다가오고 있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유지되는 기존의 복지시스템 역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국 남은 방법은 대대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뿐인데, 그 과정에 인간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은 청년배당과 같은 기본소득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청년배당은 장차 고민해야 할 전국민 기본소득의 마중물과 같은 기능을 한다. 먼저 19~29살 청년들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청년배당)하고, 이어 6~12살 아동에 대해 월 2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또 65살 이상 고령층에게는 월 30만원의 기초연금을 전면화한다. 이렇게 점차 범위를 확장해 기본소득 도입에 탄력을 붙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은 청년배당에 16조8천억원, 아동수당과 기초연금은 각각 7조4천억원과 23조4천억원이다. 청년배당팀은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지대·임대료에 토지보유세(0.5%)를 도입하고 가계소득의 3%를 ‘시민세’로 거두면 48조원의 세수가 확충된다는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의 연구 결과를 재원 마련 방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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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질문, 쉽지 않은 선택

디테일한 짜임새를 강점으로 내세운 건강보험팀과 청년 문제를 중심으로 가치와 이념을 강조한 청년배당팀 사이에서 배심원단의 선택은 쉽지 않았다. 두 팀에 ‘송곳 질문’이 이어졌다. “커피숍, 치킨집으로 대표되는 40~50대 자영업자들의 비참한 삶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군대에 있는 장병들도 청년배당을 받을 수 있을까요?”, “건강보험 보장성이 높아지면 과잉진료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요?”, “민간보험사들 반발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대책은 있습니까?” 패널들은 진땀을 흘리며 배심원단에 답을 내놓았다. 배심원단 내부 토론 역시 치열했다. 인천시청에 근무한다는 유아무개씨는 “정책적 의지와 우리 공동체에 필요하다는 결단만 있다면 무엇이건 선택할 수 있다”며 청년배당 쪽 손을 들었다. 20대 남아무개씨는 “내가 내는 세금이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느끼면 청년층에게도 공동체 의식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디테일’에 입각한 반론도 많았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김아무개씨는 “청년배당은 역차별과 도덕적 해이 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보편성을 가진 건강보험 하나로가 복지제도 정비 쪽으로 쉽게 연결된다”고 말했다.


둘 다 추진하면 안되나요?

패널들의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 배심원단 토론을 마친 뒤 최종 표결에서 두 정책에 대한 배심원단의 호응도는 25 대 25, 정확히 절반으로 갈렸다. 두 정책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개혁과제라는 표심이었다.

배심원단이 의견을 남길 수 있는 댓글창에는 이미 이런 결과를 예측한 듯한 댓글도 눈에 띄었다. “혹시 토론 주제가 무엇이 시급한지인가요? 사실 두 제도 모두 중요한 사안인 건 알겠는데….”(이아무개) “청년배당 지급 합의된다면 하나로는 당연히 시행될 것으로 보임.”(전아무개) ‘정책 배틀’이라는 형식 때문에 우열을 가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두 가지 정책 모두 함께 추진해야 할 개혁과제 아니냐는 지적인 셈이다.

양팀 패널의 의견도 비슷했다. 청년배당팀 패널로 참석했던 신지혜 평화캠프 코디네이터는 “청년배당은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정책이기 때문에 정책의 디테일을 설명드리기보다 그 가치와 지향성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며 “기본소득으로 가는 징검다리로서 청년배당의 가치를 말씀드린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팀 패널인 김종명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의료팀장도 “처음에는 아예 게임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설명드릴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며 “건강보험 개혁은 법을 바꾸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을 가장 주요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