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5. 14:52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막론하고 건강보험료 산정에 불만이 많다. 매년 건강보험료 민원이 6000만 건에 이른다. 국민 수보다 더 많은 민원이다. 그러나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에 그다지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만은 추진할 줄 알았다. 부과체계는 주위 사람들과 건강보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꼭 나오는 주제다. 직장가입자든, 지역가입자든 모두가 건강보험료 산정이 엉터리라고 말한다. 내가 일하는 복지 시민단체에도 과도한 건강보험료가 억울하다며 하소연하는 전화가 올 정도다.
현행 건강보험 부과체계는 1988년에 지역으로 건강보험이 확대되던 때 설계된 틀에서 비롯되었다. 직장가입자에게는 소득에만 보험료를 계산하고, 지역가입자에게는 재산, 자동차, 심지어 사람까지 보험료를 매기는 황당한 부과체계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
형평성은 세 영역에서 깨져 있다. 직장가입자 중 근로소득 외 추가로 종합소득이 있는 경우 연 7200만원까지 보험료가 적용되지 않는다. 자식이 직장가입자면 은퇴 후 피부양자로 등록해 금융, 연금, 기타소득이 각각 연 4000만원 이하이면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모두 상위계층을 위한 특혜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재산과 자동차에 과도하게 보험료가 부과돼 소득이 별로 없는데도 무거운 보험료 고지서를 받는다.
50만원 월셋방에 살았던 송파 세 모녀도 월세를 전세 재산으로 환산하고 3인 식구에도 보험료가 부과돼 매달 5만원씩 내야 했다. 이러니 고소득 직장가입자는 실제 소득에 비해 보험료를 적게 내고, 일반 노동자의 경우 직장을 잃어 지역가입자로 옮아가면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문제라고 하지만 건강보험에서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은 거의 직장가입자로 전환돼 있어 지역에 남은 사람은 대부분 영세자영자, 농어민, 일용직, 노인들이다. 매년 건강보험료 관련 민원이 6000만 건, 국민 수보다 더 많은 민원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통령이 이러한 현실을 모를 리 없다. 어떻게 바꿀지 구체적 방안도 준비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부과체계 개편을 핵심 국정과제로 정했고, 2013년 전문가와 가입자단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기획단이 발족해 2014년 9월 개편안을 마련했으니 사회적 논의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2015년 1월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 하루 전에 개편안을 전격 백지화해버렸고, 여론 비판이 들끓자 당정이 서둘러 협의회를 가동해 방안을 청와대로 넘겼다는데 결국 아무런 발표 없이 2015년이 흘러갔다.
야당,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이라는 ‘디딤돌 의제’를 잡아라
이래도 되는 것일까? 2014년 기획단이 마련한 개편안에 따르면 최상위 1%에 해당하는 고소득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 45만명이 보험료를 더 내고, 일반 노동자는 보험료가 변하지 않으며, 지역가입자 중 서민에 속하는 약 70%가 보험료를 덜 낼 예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이 1%를 보호하기 위해 부과체계 개편을 실종시키고 있단 말인가? 오죽하면 ‘선거의 여왕’답게 총선을 위한 민생 카드로 아껴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나온다. 정무적 계산만 따지더라도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원하는 일이기에 분명 남는 장사일 테니 말이다. 솔직히 이제는 국정 운영에 ‘우주, 혼, 기운’까지 동원하는 대통령의 깊은 마음을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제1야당이다. 국민 절대다수의 절박한 민원이라면 야당에게도 중요한 의제임이 분명한데 별 대응이 없다. 올해 초 부과체계 백지화가 선언되었을 때 반짝 규탄하고는 잠잠하다. 100명이 훨씬 넘는 국회의원을 가지고도 역동적인 민심을 모을 기획은 하지 않고 매번 ‘의석이 부족하다’ 한탄만 한다. 총선·대선에서 국민에게 권력을 요청하는 세력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의 힘을 모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소득만큼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험료를 내게 하고, 전월세 혹은 조그만 집을 가진 지역 서민에게 보험료를 줄여주는 ‘정의로운 부과체계’ 안을 가지고 지역 곳곳에서 보험료 샤우팅 대회를 열고, 이 힘을 모아 입법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총선을 앞두고 야권 내부에서 경쟁이 붙었다. 혁신이든 새정치든 민심을 모으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건강보험 부과체계가 적합한 의제 중 하나다. 이는 국민 모두가 체험하는 생활 의제이고 보험료 형평성을 도모하는 정의로운 의제이며, 향후 무상의료 재원 확충을 위한 디딤돌 의제다. 자체 개편안을 들고 전국 곳곳에서 민심을 조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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