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저널] 기초연금 1년, 다섯가지 한계와 과제

2015. 10. 9. 22:1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

 

 

올해 초 서울 용산구에 사는 한 70대 기초생활 수급자 노인이 화장실도 없는 5평 단칸방에서 쓸쓸히 죽어간 일이 있었다. 그의 통장에는 단돈 27원만 남아 있었다. 의료급여 수급자였음에도 죽기 한 달 전엔 폐결핵 치료비로 30만원을 썼다. 월세와 생활비 등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홀로 죽음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10월에는 서울의 다른 곳에서 60대 기초생활 수급자 노인이 자신의 시신을 치울 사람들에게 국밥 값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은 노인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지난 해 7월부터 기초연금이 도입됐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기초연금이 1년을 넘었지만 노인들은 안정적인 생활은 고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조차 쉽지 않다. 최소한 가난한 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을 막기에도 기초연금을 비롯한 노인들을 위한 복지가 너무나 빈약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도 여전하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내 놓은 노인 빈곤 관련 자료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노인들 중 푸피족(Poopie. Poorly-off older people)이 54%, 200만 가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푸피족이란 65세 이상 고령층 가운데 가구원 수를 감안해 조정·산출한 ‘가구균등화 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노인을 말한다. 반대로 여유를 즐기며 풍요롭게 사는 노인이란 뜻의 ‘우피(Woopie. Well-off older people)족’은 6.2%, 23만 가구에 불과했다. 특히 독거노인 170만 가구 중 푸피족은 122만 가구(71.95%)에 달했다.

 

그런데 지난 달 복지부가 기초연금 도입 1년을 맞아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크게 달랐다.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의 92.5%가 ‘기초연금이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또 기초연금으로 달라진 생활 변화와 느낌을 물으니 ‘병원가는 부담이 줄었다’거나 ‘생활에 여유가 생길 수 있겠다’고 해 기초연금 수급자의 만족도는 높아 보였다.

 

하지만 긍적적 응답이 많다고 과연 기초연금이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앞서 다른 노인 빈곤 관련 조사 결과와는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기초연금 수급자만의 긍정적 평가는 지난 해 7월부터 당장 기초연금이 올랐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 하나 따져보면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노령)연금 두배 인상’한다는 기초연급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초생활 수급자 노인의 ‘줬다 뺐는 기초연금’이다. 약 40만명 기초생활 수급자 노인은 이달에 받은 기초연금을 다음 달 생계비에서 고스란히 삭감당해 빼앗기고 있다. 정작 가장 가난한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통장에 27원만 남기고 죽어간 노인, 국밥 값을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인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보충급여 원리’때문이라며 1년 넘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매달 반복하고 있다. 지난 해 기초연금 시행에 앞서 제정한 ‘기초연금법’은 분명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에게도 기초연금을 지급한다고 하고 있다.(제5조) 또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시행 전 이러한 내용을 적극 홍보해 왔다. 정부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엄연한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기초연금은 노인이기 때문에 드리는 보편적 수당이고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생계비는 노인이 아니더라도 가난하기 때문에 지급하는 공공부조다. 기초생활 수급자 노인에게 ‘기초연금 줬다 뺏기’를 당장 중단하고 기초연금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

 

둘째,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을 새롭게 기초연금으로 바꾸면서 매년 기초연금액 조정 기준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에서 물가연동으로 슬쩍 바꾸어 놓았다. 이 문제는 당장 올해부터 나타났는데 올해 4월 기초연금이 작년 물가상승율 1.3%를 반영해 월 20만원에서 20만 2,600원으로 2,600원 오르긴 했다. 하지만 기존 소득연동 기준이었다면 3.2%인 6,400원이 올라야지만 고작 2,600원 인상에 그쳤다. 1년치 결과다 보니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물가연동 기준과 소득연동 기준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정부 장기 재정추계에 따르면 물가인상률은 소득증가율의 약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당장 7년 후인 2022년부터 기존 방식을 유지했을 때보다 기초연금 예상액이 작아진다. 2036년이면 반토막 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기초연금 두 배 인상’ 효과는 7년 후면 아예 없던 일이 된다. 기존 제도를 그냥 두는 것보다 못하다. 노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다. 조정 기준은 소득 연동으로 반드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셋째, 기초연금액을 엉뚱하게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감액하는 문제다. 지난 해 기초연금법 제정 과정에서 가장 부각된 주제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큰 원망을 사고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주머니가 아예 다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재원으로 가입자들에게만 지급하는 사회보험이고, 기초연금은 기여 여부와 무관하게 조세를 가지고 65세 이상 노인에게 드리는 사회수당이다. 두 제도를 공연히 섞어서 형평성 문제를 일으키고 공적 연금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울 이유가 없다.

 

넷째,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기초연금 몫을 줄여줘야 한다. 기초연금이 두 배 올랐지만 국고보조율 75%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른 만큼 감당하기에는 지자체 부담이 크다. 얼마 전 일부 지자체는 지급중지(디폴트)를 검토할 정도로 심각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날수록 그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보육사업 국고보조율이 지난 해부터 기존 49%에서 64%로 15%나 오른 것에 비하면 기초연금 보조율 제자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기초연금은 국고보조율을 대폭 올리거나 지자체는 지급 사무를 맡고 중앙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상위 30% 노인에게도 기초연금을 드려야 한다. ‘모든 어르신에게 드리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일뿐만 아니라 보편적 복지라는 기초연금 취지에도 맞다. 상위 계층 노인에게도 기본적인 권리로서 기초연금을 드리고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는 게 기초연금을 튼튼히 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기초연금 1년을 맞아 ‘박근혜정부 핵심 국정과제로 어르신들의 편안하고 활력 있는 노후생활을 위한 핵심제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초연금을 서둘러 준비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앞의 다섯 가지 문제만 보아도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기초연금이 있으나마나한 노인들, 반토막이 날 기초연금의 운명, 국민연금과 엮인 불신, 지자체 부담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커 보인다. 기초연금이 노인 빈곤을 해소하고 나아가 노후 생활 안정을 위한,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인 공적 연금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할 일이 많다.

 

 

* 이 글은 '복지 저널'에 기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