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세금 정의’ 단일전선

2015. 9. 3. 14:4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보통 이맘때면 세법개정을 두고 공방이 거셌다. 언제든지 심의하는 일반 법안과 달리, 세법 논의는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을 쌓아 놓았다가 정부안이 발표되는 8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용한 편이다. 이명박 정부 내내 부자감세가 쟁점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2013년 소득세(연말정산 변화), 2014년 담뱃세 논란이 있었건만 올해 정부 세법개정안은 밋밋하다. 업무용 자동차 과세, 고가품 개별소비세 완화 등이 있으나 전체 세금 지도에서 보면 주변적 이슈다.


그래서 심각하다. 우리나라 재정 형편이 이리 한가로운 세법개정안을 다룰 때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10조원대에 머물던 재정적자가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 23조4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임기 안에 재정균형 수준에 도달하겠다며 잡은 2015년 적자 목표가 17조원이었는데, 어느새 46조5000억원으로 대폭 상향됐다. 올해 중앙정부 총수입 대비 무려 12%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재정 상태가 이러한데도 정부의 진단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세입 부족은 경기침체, 메르스가 원인이고, 세출 절약을 위해 복지 구조조정에 나서겠단다. 늘 경기 부진 탓이고, 취약계층 복지가 희생양이다. 핵심을 직시하자. 재정적자의 근본 원인은 세입이 너무 적기 때문이고, 복지마저 이 장벽에 부딪혀 있다. 프랑스, 스웨덴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다. 국제 평균은 지향해 가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부담률은 2013년 약 GDP 24%로 OECD 평균 약 34%에 비해 10%포인트 낮다. 복지지출 역시 약 GDP 10%로 OECD 평균 약 21%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다. 세입과 복지에서 모두 GDP 10%, 올해 GDP 1500조원으로 계산하면 150조원을 채워야 한다.

더 거두기 어렵다고? 없는 건 세원이 아니라 정부 의지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깎은 대기업 적용 법인세율을 원상회복하자. 정부는 비과세 감면 축소로 일부 증세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 올해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만 3조원이다. 모든 기업에 세금을 더 내라는 것도 아니다. 이윤이 생길 때만 내는 게 법인세이다.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안에 막대한 현금성 자산이 존재하고, 사회보험료 기업 몫도 외국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지 않은가.

구멍투성이 소득세도 정비하자. 근로자는 버는 만큼 세금을 내는데 왜 자산을 가진 금융소득자는 예외인가. 이자, 배당으로 번 2000만원까지는 누진세율이 아니라 14% 단일세율 혜택이 제공된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조금 개선되었지만 현재 종목당 시가 50억원까지는 주식양도 차익에 세금이 없다. 소득세율 최고 구간도 올릴 수 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41.8%가 OECD 평균 43.6%와 비슷하게 보이나(지방소득세 포함), 동구권 6개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평균 47.2%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한 해 3억원 넘게 벌며 외국에 가끔 나간다면 이 정도는 내야 부자 값을 할 수 있다.

증세 이전에 지출 수술이 급하다는 제안도 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 물증이 넘친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현 정부에 세금 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빈약한 세입을 방치할 수도 없다. 재정은 세입과 세출의 짝이지만, 구체적 내역은 독립적이기에 동시 과제이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국정을 고집하는 배경에는 재정 제약을 구실로 삼아 복지 민심을 억누르려는 의도도 있다. 고령화시대 복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물결이다. 근래 복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더 내겠다는 여론도 과반이 넘는다. 새로 걷는 세금은 복지에만 사용하는 사회복지세를 도입하면 재정 불신도 우회할 수 있다.

안다. 이 주장이 박근혜 정부에 쇠귀에 경 읽기란 걸. 국정 운영자가 재정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우리나라만큼 세금 정의 열정이 뜨거운 곳이 있을까? 조세 저항 역시 정의를 갈망하는 민심의 표현이다. 몇 해 전부터 시민의 세금 관심은 무척 높아졌음에도 이를 집약하는 좌표가 분명치 않다. 세금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선 ‘구체적 목표’가 필요하다.

법인세든, 사회복지세든 또 다른 무엇이어도 괜찮다. 올해엔 하나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해 시민, 노동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금운동이 시작되길 기대한다. 야당은 시야를 국회 밖으로 넓히고, 시민단체도 세금 단일전선 모색에 힘을 모으자. 정부 세법개정안은 더 이상 대한민국 세금 논의의 준거가 되지 못한다. 복지민심의 단일 개혁안으로 ‘세금 정의’ 열매를 하나씩 맺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