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고용보험 개혁’ 노동자가 연대해야

2015. 9. 30. 15:4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아무리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 시장경제라지만 어쩌다 이리 사람을 막 부리는 대한민국이 돼 버렸을까? 불안정, 저임금 노동이 심각한 상황임에도 최근 노동개혁 논의에서 또 말문이 막힌다. 취업규칙의 일방적 변경, 저성과자 일반 해고 등도 문제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이 사회안전망 보완책으로 내세운 실업급여마저 그러하다.

첫 제안은 지난 8월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서 나왔다. 실직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50%에서 60%로 올리고 급여 기간도 현행 3~8개월에서 1개월씩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낮추는 내년 예산안을 제출하고, 노사정 합의문에 “실업 인정 심사 강화” 문구가 들어가더니 새누리당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최소 기여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9개월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올해가 고용보험 도입 20년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불안정 노동시장에 맞도록 고용보험을 전면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취업자의 54%, 노동자의 36%가 고용보험 밖에 있고, 비정규 노동자 중에선 열에 여섯이 고용보험과 무관하다. 그런데도 정부와 새누리당 방안은 가장 실업에 취약한 노동자, 누구보다 실업급여가 절실한 사람들을 그대로 방치한다. 고용보험 20년 역사가 고발하는 핵심 문제를 일부러 못 본 체한다.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청년, 불안정 노동자를 내세우지만 정작 실업급여에서는 이들을 더욱 벼랑으로 내몬다. 우선 기여기간 연장은 실업급여 문턱을 높이는 심각한 개악이다. 지금은 6개월 가입하면 수급자격이 부여되었으나 이후 9개월로 늘린다는 게 새누리당 개정안이다.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의무기간을 채우지 못해 실업급여 자격을 얻지 못하는데 기간이 늘어나면 사각지대는 확대될 것이다. 한국의 불안정 고용시장에서 최소한의 염치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하한액 인하 역시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급여를 약화시키는 내용이다. 현재 실업급여 계산 기준은 자신의 평균임금 50%이지만 상하한액 구조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 2014년에 50% 급여산식에 따르는 수급자는 5.5%에 불과하고, 하한액이 적용되는 실업자가 무려 3분의 2이다. 정부는 급여율을 60%로 인상한다고 생색내지만, 오히려 다수 저임금 실업자의 급여를 깎는 조치를 동반한다. 변화 수치는 똑같은 10%포인트이나 대상 규모가 현격히 다른 꼼수이다.

급여기간 1개월 연장은 절대적 기준에서 개선된 점이다. 하지만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가입기간이 짧아 대부분 급여기간이 4~5개월에 불과하다. 이 기간에 다른 직업 탐색과 준비가 가능할까? 짧은 급여기간은 충분한 준비 없이 취약한 일자리에 또 나서게 하는 압박 요인이다. 더 늘려야 한다.

결국 정부와 새누리당이 서구의 유연 안정성을 흉내 내는 듯 실업급여 대책을 내놓았으나 어이가 없다. 노동자는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대통령까지 나서 실업급여 카드를 꺼냈다는 점을 주목하자. 고용보험 대개혁 운동을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고용보험 밖에 있는 노동자를 위한 실업부조 도입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재원이 장벽으로 제기될 것이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권력은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다. 고용보험 개혁에서도 기업이 책임지라는 선언적 요구보다는 현실을 변화시킬 실질적 힘이 관건이다. 다수의 참여를 이끄는 재원전략이 요청된다. 평범하게도 보험료 인상이 그 길일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실업급여 보험료율이 노사 합쳐 3%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1.3%에 머문다.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안정된 중심권 노동자가 동의하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있지만, 그에게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고생하는 자식들이 있고, 이제는 그 역시 일자리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와 내 자식을 위한 연대라 여기고, 저임금 노동자에게 보험료를 지원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어찌 나올까? 모두의 실업 안전망을 위해 노동자 스스로 더 내겠다는데, 노사 절반 보험료 구조에서 기업이 이를 거부할 명분이 있을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을 위해 실업부조를 도입하자는 데 정부가 자신의 몫을 회피할 수 있을까? 설령 그러해도 나아가자. 우리 사회에 노동자가 주도하는 고용보험 개혁 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 노동개혁의 적극적 의제로, 노동자들이 손을 잡는 고용보험 연대전략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