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30억 재산가 vs. 3000억 재산가, 보험료가 똑같은 이유

2015. 6. 23. 20:5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국민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혁




박표균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 위원장

      


#1. 광주에 사는 국민건강보험 지역 가입자 이모 씨는 종합 소득 1920만 원, 재산 2억 원, 금융 소득 4200만 원으로 월 보험료 33만1920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인 김모 씨는 월 보수 320만 원, 재산 2억 원, 금융 소득 4200만 원으로 이모 씨와 조건이 거의 비슷함에도 직장 가입자여서 월 보험료를 이 씨의 4분의 1가량인 9만4240원만 낸다.

#2. 35년간 공무원이었던 조모 씨는 퇴직 전에 월 16만 원 정도의 보험료를 냈다. 정년 퇴직 후 지역 가입자로 편입되자 중형 아파트와 연금 소득 3400만 원 때문에 보험료가 20만4500원이나 나왔다. 그는 공단 직원에게 알아본 후 곧바로 아들 직장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도 되었다.

"기네스북에 기록될 만한 국민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현재의 국민건강보험 부과 체계는 1989년 전 국민 건강 보험을 시행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26년이 지나도록 기본 틀을 고수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땜질식 처방을 하다 보니 누더기가 되었고, 심지어 공단의 담당 직원조차도 내용을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민원 중 보험료 관련이 80%를 차지하고, 그 건수는 매년 5000만 건이 넘는다. 그야말로 기네스북에 기록될 만한 부끄러운 수치이다.

그 원인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부과 때문이다. 지역 가입자의 소득 자료 보유율이 10%대로 미비했던 1989년 상황에서 임금 근로자가 아닌 지역 가입자는 세대원 수와 나이 등에 따라 소위 '추정 소득'으로 보험료가 부과되었다. 이어 2000년에는 종합 소득 500만 원 이하이거나 없는 세대에 대해서 재산, 자동차, 성·연령에 따라 점수를 매겨 보험료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직장 가입자보다 지역 가입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1989년, 직장과 지역 가입자가 반반씩이던 2000년과 비교하면 현재는 직장 가입자가 70%를 훨씬 넘는다. 소위 '있는 자'들인 변호사나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도 1인 이상 사업장의 직장 가입자 편입으로 대부분 직장 가입자로 전환되었다. 현재 지역 가입자인 자영업자의 소득 자료 보유율은 47% 정도다. 지역 가입자 구성원 대부분이 특수 직종, 영세 자영업자, 농어민이나 무직자 등임을 감안하면 나머지 53%는 사실상 신고할 소득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최소한의 개선안마저 저버린 정부"

박근혜 정부는 이렇듯 형평성이 결여된 부과 체계를 손보려 2013년 '보험료 부과 체계 개선'을 국정 과제로 삼았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같은 해 7월 각계 16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기획단을 출범시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포함된 기획단은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까지 망라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2014년 9월 최종적으로 '소득 중심의 부과 체계'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복지부는 기획단의 개선안 발표를 작년 9월에서 12월로, 올해 1월 14일에서 29일로 미루더니 지난 1월 연말 정산 파동으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자, 1월 28일 '기획단 발표 백지화'를 선언했다. 당시 우리 노동조합(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은 즉각 "'근조', 국민건강보험 1% 부자 위해 99% 국민을 저버린 문형표는 즉각 사퇴하라!"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폭거를 규탄하기도 했다.

들끓는 반대 여론에 직면한 여당은 개선안을 당정협의회로 끌고 왔고, 늦어도 6월 중에는 당정 개선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메르스 정국'은 이마저도 덮어버리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 부과 체계는 부자들에게 제대로 보험료를 걷지 않는 대신 서민들을 쥐어짜서 재정을 충당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예를 들어, 연 이자 소득 4000만 원이 있어도 피부양자로 등재하면 한 푼의 보험료도 내지 않지만, 소득도 없이 40만 원의 지하 월세를 살던 '송파 세 모녀'는 월 5만140원을 내야 했다. 심지어 연금 소득, 금융 소득, 기타 근로 소득을 합해 연 1억2000만 원의 수입이 있어도, 수십 채의 집을 갖고 있어도 보험료가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고 적힌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지방경찰청


발표 예정이던 기획단의 부과 체계 개선안의 주요 내용은 월급 외에 금융 소득, 사업 소득 등이 2000만 원이 넘는 26만 명의 직장 가입자와 무임승차했던 19만 명의 고소득 피보험자 등 45만 명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고, 지역 가입 770만 세대 중 602만 서민 세대의 보험료를 부담 수준에 맞게 낮추려는 것이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절대 다수인 1450만 직장 가입자는 보험료가 동일하며, 2040만 피부양자도 종전과 같이 보험료가 없다.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세대는 기존 월 5만 원에서 1만 원 정도의 보험료만 내면 된다. 이는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보험료부과 형평성 논란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 볼 수 있다.

"서민 지역 가입자에게 가혹한 보험료 체계"

기획단의 안은 결코 만족스러운 최선의 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저소득층에게 가혹하고, 고소득층에게 관대한 부과 체계의 틀을 바꾸는 첫발을 내딛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주요 내용은 임금 외의 일정 소득 이상에 대한 보험료 부과, 피부양자 자격 인정 기준 강화, 성·연령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부과 폐지 등이다. 재산에 대한 부과 기준도 상당히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회 보장 선진국인 유럽은 물론, 대만(타이완)조차도 재산이나 자동차에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으며,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한다. 우리의 보험료 부과 방식은 역진성에 더하여 세계에서 가장 불공정하고, 후진적 형태다. 이는 물론, 저소득층의 고통을 외면한 채 무사안일로 일관하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2년에 지역 가입자가 부담한 총 국민건강보험료는 6.8조 원이었다. 여기서 재산 비중이 47%, 소득이 26%, 자동차가 13%, 성·연령이 13%였다. 재산, 소득, 자동차, 성·연령 등 모든 부과 기준이 공평하지 않다. 재산은 50등급으로 나누는데, 재산당 부과되는 보험료를 보면, 5000만 원은 4만5000원, 1억 원은 7만5000원, 3억 원은 12만 원, 10억 원은 17만 원, 30억 원 이상은 25만 원이다. 재산 대비 보험료율이 상위 계층일수록 낮아지는 역진성을 지닌다. 특히 부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재산 기준 상한을 30억 원으로 정한 탓에 30억 원이든, 300억 원이든, 3000억 원이든 보험료는 26만 원 정도로 동일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지역 가입자의 재산 기준은 서민들에게 가혹한 방식이다. 이는 지역 가입자 소득에 대한 부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소득이 낮을수록 그 구간을 촘촘히 하고, 반대로 소득이 높을수록 구간을 느슨하게 하여 고소득 부자일수록 상대적으로 부담을 적게 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누진 조세의 원리에도 역행한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거두어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려면 직장 가입 고소득자들에게 발생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그리고 연착륙을 위해서 그 소득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장기간 지속되어온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간의 불공정한 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선하려면, 세계 표준인 소득 중심으로 단일화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저소득층이 주로 몰려있는 지역 가입자에게 가혹했던 재산은 그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지고 후진적인 자동차, 성·연령 점수는 즉각 폐지해야 한다. 직장 가입자나 직장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소득이 있어도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

소득 자료 보유율이 47%대로 낮으므로 소득 중심으로 가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다. 보유율이 47%라는 것은 지역 가입자의 53%는 소득 신고가 전혀 없으며, 그 소득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가입자에서 소득 파악률이 낮은 이유는 고소득층이 소득을 숨겨서가 아니라, 지역 가입자의 다수가 서민들로, 실제로 신고할 만한 소득(과표 소득)조차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등 중 상당수는 국민건강보험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의료수급자로 전환되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정부는 "제2, 제3의 송파 세 모녀의 고통"을 방치 말아야

지난 1월, 기획단이 발표하려 했던 안은 위와 같이 곪아있는 보험료 부과의 총체적인 환부들을 일정 부분 도려낼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의 연대성 실현을 통해 국민건강보험 본래의 목적인 보장성 확대에 매진할 기회이기도 하였다.

올해 1월 기준으로 6개월 이상 체납액은 2조5000억 원에 이르고, 그 체납 세대 수는 무려 150만 세대이다. 여기엔 월 5만140원의 보험료가 부과되었던 송파 세 모녀처럼 보험료가 월 5만 원 이하인 100만 세대가 들어가 있다. 이들은 6개월 이상 체납 시 병·의원 이용 제한이라는 규정과 심리적 압박 때문에 대부분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작년 11월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자신은 송파 세 모녀와 달리 강남에 아파트가 있고, 수천만 원의 연금 수입을 받게 되지만, 직장 피부양자로 올라가게 되어 한 푼의 보험료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일갈했을까. 복지부가, 청와대가 부과 체계 개선을 무사안일과 정치적 계산으로 뭉갤수록 건강보험의 목적과 취지는 실종되고, 제2, 제3의 송파 세 모녀의 신음은 천지를 떠도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