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홍준표의 설익은 무상급식관

2015. 3. 22. 20:4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오늘(17일) 홍준표 경남지사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만나 무상급식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인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어 무상급식 중단까지 홍 지사의 거침없는 행보가 만든 자리이다. 연초에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정치인으로서 용꿈을 향한 돌격이라지만 그의 무상급식 이해에서 미래 국가지도자에 걸맞은 깊이를 찾기 어렵다.

우선 홍 지사는 무상급식 평가에 불공정하다. 무상으로 인해 급식 질이 떨어져 음식물 쓰레기가 늘고 처리비용도 증가했다고 지적한다. 정말 그런가? 무상급식은 가공식품보다는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기에 과일 껍질과 같은 전처리 재료가 늘어난다. 좋은 쓰레기이다. 식후 잔반 사례가 언론에 가끔 소개되는데, 지난해 경기교육청의 조사에 따르면 약 5000명의 초등학생 중 81%가 급식 질에 만족하고 학부모는 85%로 더 높다. 굳이 제도적 원인을 찾는다면 친환경 급식의 저염·저지방 식단이 일부 학생들의 입맛과 어긋날 수 있다. 이는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혀와 학생 성장발달 단계에 적합한 건강식단이 벌이는 생산적 갈등으로 격려할 일이다. 처리 비용이 늘어난 핵심적인 원인도 양보다는 단가에 있다. OECD 회원국 중 음식물 쓰레기를 해양에 버리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는데 2013년부터 이게 금지돼 처리 단가가 올랐다. 이건 국제협약에 따른 의무이다.

홍 지사는 복지예산 부족의 책임 소재를 혼동한다. 그는 무상급식을 유지할 만큼 예산이 있느냐고 항변한다. ‘재정이 어렵더라도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던 도지사 취임사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근래 지방정부의 재정난은 공감하지만 무상급식 지원금은 경남도 전체 예산의 0.5% 미만이다. 정말 돈이 없어서 전국에서 무상급식을 지원하지 않는 단 한 명의 도지사가 되려는 것인가? 게다가 지자체, 교육청 예산이 빡빡해진 이유가 지역마다 조례 제정을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정착돼 가는 무상급식 때문인가, 아니면 기초연금을 두 배로 올리고선 지자체에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그리고 누리과정 예산 책임을 모두 교육청에 맡기고도 증가분을 지원하지 않는 중앙정부 때문인가? 홍 지사가 싸울 상대는 무상급식이 아니라 중앙정부이다.

홍 지사는 지나치게 좌우파 진영논리를 구사한다. “가진 자의 것을 거둬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게 진보좌파 정책”인데 자신이 서민계층을 도와주는 선별적 복지를 펴니 오히려 진보좌파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어느 좌파가 서민 복지지원을 반대한단 말인가? 당연히 어려운 계층은 좌우를 떠나 모든 복지의 대상이다. 대신 기초생활보장제처럼 애초 가난한 사람만을 위해 설계된 ‘선별적 복지’가 있고, 급식, 보육, 교육, 의료 등 모두에게 필요한 권리로 진화하는 ‘보편적 복지’도 있다. 무상급식 논란은 학교급식을 과거 시혜적 복지로 되돌릴지, 아이들 보편 권리로 안착시킬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좌우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다.

홍 지사는 서구 복지국가 발전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 좌파가 상위계층까지 복지를 제공하는지 의문을 품는데, 선진 복지국가일수록 보편적 복지를 지향해 왔다. 스웨덴 복지학자 코르피는 복지국가 역사를 통해 ‘재분배의 역설’을 입증했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복지를 제공해야 재분배 원리에 맞을 듯하지만 실제는 보편적 복지의 재분배 효과가 오히려 크다. 선별 복지는 복지재정을 책임져야 할 상위계층의 세금 동의를 이끌기 어려워 ‘약한 복지/약한 재정’ 악순환에 빠지지만 보편 복지는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고 시민 의무로 능력별 세금을 부가해 ‘강한 복지/강한 재정’을 구축한다.

예를 들어 선별 방식에선 가난한 노인의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고착되지만 보편 방식에선 더 재정을 늘려 모두에게 30만원, 40만원으로 올릴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복지 앞에 놓여 있는 장벽이 바로 세입 아닌가. 이를 넘어서려면 보편복지 노선으로 가야 하고, 한국에서 급식은 이를 상징하는 의제이다.

경남도는 무상급식 중단 명분을 세우고자 대신 “서민자녀 교육지원으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일간지에 광고를 실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 연 50만원 교육복지 카드로 용이 나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고, 홍 지사 역시 시대에 역행하는 편협한 복지 이해로는 용꿈을 이루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