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시각장애 판정받고 작가가 된 벤처기업가

2015. 3. 16. 13:3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절망을 이겨내는 힘, 복지



이건범 내만복 운영위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삶의 어려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사람들은 상상할 겁니다. 저의 시야가 어두컴컴할 거라고. 하지만 저는 눈앞이 너무 환해서 괴롭습니다. 빛 번짐이 아주 심한 망막변성증이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제 눈은 세상을 보지 못합니다. 갑자기 터진 사진기 조명에 잠시 눈이 멀 듯이 말이죠. 빛 속에는 그런 어둠이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자주 이렇게 묻죠. 글은 어떻게 쓰나요? 간단합니다. 여러분과 똑같이 글자판을 쳐서 씁니다. 손이 멀쩡하다면 누구든 자판을 외워 치는 건 사나흘 연습해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가 쓴 글을 제가 읽지 못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저는 글을 듣습니다. 음성합성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남의 글이나 제 원고를 듣고 고칩니다. 

누구나 남의 아픔을 자기 것처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경상도 사람들로 가득 차 너무 시끄럽던 어느 식당에서 나오다가 아내에게 짜증을 낸 일이 있습니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아내 혼자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발끝으로 조심조심 더듬으며 어렵사리 계단을 내려와야 했어요. 평소에는 늘 저를 세심하게 챙기던 사람이었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더군요. 뒤늦게 달려와 미안하다며 저를 부축하던 아내와 말을 주고받다가 자동차가 후진하지 못하도록 설치해놓은 낮은 방지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답니다. 

사실, 올라가는 계단은 윗계단 그림자가 비쳐서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지만 내려가는 계단은 아무런 구분을 못 느낄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지체장애인을 생각하거나 자기가 힘들다고 느껴서 그런지 오르는 계단에서 저를 도와주려 합니다. 정작 제게 도움이 필요할 때, 실내에서 아주 환한 바깥으로 나왔을 때나 계단을 내려갈 때 사람들은 저의 어려움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내와 새삼스레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내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특~" 제 아내도 경상도 사람입니다. 다급하면 사투리가 나오는데, '으' 발음과 '어'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덕분에 방지턱에 다시 걸려 넘어질 걸 겨우 피했죠.  

나에게 복지란  

복지는 결코 풍요로운 삶을 손에 쥐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으로 걸어나갈 용기를 주지요. 제 어려움이 그렇듯 세상의 어려움도 우리 예상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 우리에게 지옥인 게 아니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할 말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에, 비굴하게 살도록 강요하기에 지옥인 것입니다. 복지가 허술할 때 삶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사람이 얼마나 큰 좌절을 맛볼지 한번 제 경험을 가지고 짐작해 봅시다. 

저는 서른 한 살이던 1994년부터 정보통신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여 한때 꽤 크게 일구기도 했습니다. 120명의 직원과 함께 멋진 회사를 만들고 싶었지만, 세상의 요동치는 변화에, 벤처 열풍에 잘못 올라타는 바람에 순식간에 회사가 휘청거리게 되었습니다. 2002년의 일입니다. 그 해 순손실만 30억 원이었고, 죽을 고생을 하며 회사를 운영해도 도무지 빚은 줄어들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2005년에는 시각장애 1급 진단을 받아 사망에 준하는 장애로 판정받고 보험사로부터 종신보험금을 탔습니다. 그 돈도 회사의 회생을 위해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2006년에 저는 회사 문을 닫고 50억 원의 연대보증 채무를 진 채 파산했습니다. 쫄딱 망했지요.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너무 고단했습니다. 당장 돈이 없는 것도 어려움이었지만, 어떤 용기를 제 마음속에서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는 온통 잿더미만 수북했죠. 파산한 시각장애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때 국민연금공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 연체금 독촉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전혀 몰랐던 장애연금을 받아가라지 뭡니까. 그렇게 해서 국민연금 고갈 걱정으로 시끄러운 시대에 저는 연금생활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연금으로 우리 식구 셋이 먹고살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다만 그 장애연금은 제게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도전할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책을 기획하는 일을 맡았다가 제가 직접 글을 써보았죠. 반응이 좋았고, 저도 즐거움을 느껴 이제 저는 작가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좌우파사전>이라는 책을 만들어 상을 타기도 했고, 제 청년 시절의 감옥살이를 소재로 <내 청춘의 감옥>이라는 단행본을 냈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업하다가 망한 이야기를 <파산>이라는 제목으로 펴냈습니다. 이거, 돈 안 됩니다. 하지만 저는 늘 즐거운 꿈을 안고 살아가며, 제 글을 읽는 사람이 보내오는 온갖 반응에 황홀함을 맛봅니다. 

복지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절벽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안전그물이 튼튼하게 쳐져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창의적인 도전에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파산을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장애에 무릎 꿇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사람답게 말하면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복지는 우리에게 그런 힘을 주기에 결코 낭비일 수 없습니다. 제 눈에 빛은 어둠이지만, 복지는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한 줄기 빛임이 분명합니다. 





      ▲ 이건범 내만복 운영위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