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미혼모 낙태·입양 강요' 사과한 호주, 한국은?

2015. 3. 9. 21:5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미혼모,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 



"현재 우리 사회에 미혼모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기자들을 만나면 처음 묻는 질문이다. 어제가 여성의 날이었다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질문에 정확한 통계 수치를 대지 못한다. 

미혼모 통계조차 없는 우리 사회

한국의 미혼모 대략 3만5000명. 이는 여성가족부가 이런 저런 자료를 근거로 추정한 수치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사회 미혼모정책의 가장 큰 문제다. 미혼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현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미혼모를 공식적인 사회정책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또한 미혼모들에 대한 온갖 차별과 편견, 그로 인한 미혼모 가족의 설움과 고통을 국가가 방치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혼모라 하면 청소년 미혼모를 떠올리는게 일반적 인식이다. 하지만 2009년 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시설에 있는 미혼모의 30.6%만이 10대이고, 20대가 52.7%, 30대가 16.7%를 차지한다. 24세를 기준으로 이하는 62.4%, 이상은 37.6%이다.  

고연령의 미혼모들은 시설입소보다 재가비율이 높고 저연령보다 양육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의 양육지원정책은 24세 이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 부처 고위 관계자에게 청소년과 성인을 구분하지 말고 양육미혼모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니, 성인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니 자기가 알아서 하고, 미성년은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답하였다.  

성인 미혼모는 완전 방치 

과연 24세 이상의 성인미혼모들은 자기가 알아서 아이를 키우며 살 수 있을까? 대졸에 외국어 하나를 능숙하게 하는 실력으로 직장을 다니던 여성도 미혼모가 되면 아래로 곤두박질쳐지는게 우리 사회 미혼모의 현실이다. 임신 전에 다니던 직장을 아기 낳고도 계속 다니는 것은 흔하지 않다.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배불러 오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일 자신이 없어 스스로 그만두는 사람이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직장을 다니려고 온갖 노력을 하지만 결국은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못 받고 잘리는 거다.  

아이와 살기 위해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배를 꽁꽁 싸매서 다녔는데 들켜서 해고되고, 해고되지 않으려고 아이 아빠에게 사정사정해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혼인신고 안 했다고 잘리고, 사장이 좋은 사람이라 육아휴직은 받았는데 동료들 때문에 복귀가 두렵다.  

이렇게 회사에서 쫓겨나서 벌어둔 돈 까먹고 살다보면 아기 낳은지 몇 달 안돼서 경제적 형편은 바닥을 치게 된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아이가 미숙아로 나와 인큐베이터 신세를 진다든지, 엄마나 아이가 아파서 병원비가 들게 되면 아기 분유나 기저귀도 못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현실이 이런데 성인미혼모는 자기가 선택한 것이니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정부 당국자의 말은 현실을 모르거나 무책임하다.

지금까지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려면 부모에게서 쫓겨나고 학교와 직장에서 쫓겨나고 이웃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사실 성인 미혼모는 차별만 없다면 정부의 지원없이도 아이랑 살 수 있다. 넉넉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벼랑 끝으로 몰리지는 않는다.  

미혼모에 대한 차별부터 없애야 

많은 미혼모들은 미혼모정책에서 지원보다 차별시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차별을 받아 그 결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기 때문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지, 차별이 없다면 지원을 요청할 상황도 없다는 것이다. 

차별시정이 병행되지 않는 양육미혼모 지원정책은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가져오는 편견을 강화할 수도 있다. '미혼모 양육지원'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키울 형편도 안되면서 조심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고, 낙태하거나 입양하지 왜 자기가 아이를 키운다고 하나?'는 생각을 갖게 하고 미혼모들은 철이없고 무책임하다는 편견을 낳게 한다. 또한 '미혼모 자립지원'은 미혼모들이 어리거나 뭔가 모자라서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로 몰아간다. 결과적으로 미혼모들은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려놓고 정부재정만 축내는 한심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미혼모가족에 대한 지원은 미혼모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차별과 존재부정으로 인해 미혼모가족들의 생활조건과 처지를 어렵게 만든데 대한 배상적 성격의 지원이라 보는 시각이 필요한 이유이다. 

자기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 

미혼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핵심 이유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부모가 자식을 키우지 않겠다 하는게 문제지, 자기 아이 자기가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만 아니라 동물도 자기 새끼를 자기가 키운다. 미성년이 아니고 성인이라면 연애, 결혼, 임신, 출산은 자유 의사에 맡기고 선택에 따른 결과까지 본인이 책임을 지면 된다.  

또한 표시가 안난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지않는 미혼부는 아무런 비난도, 불이익도 받지않고 책임을 요구받지도 않는다. 낙태를 하거나 입양을 보낸 것보다 더 책임성있게 행동한 양육 미혼모가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과거에는 결혼 안에서 임신과 출산과 양육이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이제는 연애와 결혼이, 임신과 출산이, 출산과 양육이 자동스럽게 연결되는 시대는 아니다. 사랑하지만 결혼하지 않을 수 있고, 임신해도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고, 결혼을 안 해도 아이를 함께 기를 수는 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것은 결혼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음을 드러내며 그래서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이미 결혼과 상관없이 사랑한다면 성관계를 가지는게 일반화되었다. 미혼모는 피임이 실패하여 임신이 되었을 뿐이다. 피임의 실패가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미혼부가 부도덕하다. 미혼부의 책임이라는 인식조차도 없는 사회, 양육 미혼모를 비난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부도덕하다.

낙태는 금지시키면서 미혼모의 양육을 지원하지 않는 나라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다. 낙태보다는 출산해서 입양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입양보낼 바에 낙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처는 남는다. 낙태를 금지시키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잘 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미혼모 정책, 2010년에야 시작 

물론 청소년은 본인도 성장발달의 과제를 안고 있는데 아이들은 24시간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청소년 미혼모들에게는 무조건 출산하고 양육과 입양만 선택지로 제공하기보다, 낙태와 출산, 양육과 입양의 선택지를 모두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충분한 상담을 통해 미혼모 임신이 재발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청소년미혼모의 예방도 필요하다. 청소년 미혼모들의 경우는 임신을 해서 집에서 쫓겨난 경우보다 이미 가출해 있다 임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나 남자 형제들의 폭행과 폭언, 가족의 불화, 돌봄의 부족은 청소년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들의 가족환경을 개선하고 엄마아빠가 되는 의미를 포함한 성교육, 피임과 좋은 친구관계를 만드는 것을 조력하는 등 청소년 미혼모 예방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양육 미혼모 당사자조직과 입양인 조직이 만들어져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2010년 이전에는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정책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낙태하거나 국내외 입양으로 미혼모라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양정책만 존재하는 속에서 다수의 미혼모들은 자기 아이를 키울 권리, 자기 아이의 입양을 결정할 권리를 알지도 못한 채 출산하기 전에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를 쓰고 아이를 빼앗겼다. 

미혼모 그 자체로 존중해야 

또한 미혼모들은 아이를 키워서는 안되는 사람, 자기 아이를 버리는 사람의 이미지까지 덮어쓰게 되었다. 지난 수십년간 정부는 민간기관에 입양을 맡겨두어 이런 현상을 방치하고 조장하였다. 호주 정부와 사회는 미혼모들에게 낙태와 입양을 강요하고, 양육미혼모 가족들에게 비난과 차별을 가해온 지난 역사를 밝히고 사죄했다. 우리 정부와 사회도 호주정부처럼 지나온 과정을 평가하고 앞으로는 미혼모가족이 편견과 차별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미혼모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복지국가는 이 사회의 그 누구도 존재 자체로 비난받지 않는 사회,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귀중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다. 미혼모가족이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들로 존중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사회가 여성과 아동에 대한 차별과 교육, 주거, 의료, 노동의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다.


▲미혼모와 입양을 다룬 연극 'Between:GrowingUp 성장(입양)' 포스터. ⓒ프레시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