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줬다 뺏는 기초연금', 이대로 놔둘 건가?

2014. 11. 24. 17:3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초생활 수급 노인, 국회마저 외면?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되찾기 위해 지난 여름부터 주말 오후면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만났다. 40만 명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인에게도 기초연금 20만 원을 온전히 드리자는 서명을 받기 위해서다. 노인들은 물론 중장년층 시민, 청년, 학생, 연인들이 함께 서명에 참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탓인지 고등학생들도 많았다. 

진보, 보수를 떠나 공감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등 19개 복지노인단체들이 '빈곤 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를 결속했다. 서울시노인복지관협회도 조직적으로 활동 참여를 결정에 서울에 있는 노인복지관들은 시설을 방문하는 노인, 가족들의 서명도 차곡차곡 모았다. 이 연대기구 소속도 아닌 한국헬프에이지의 노인참여나눔터 회원들은 자체 행사 중 '줬다 뺏는 기초연금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만드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 한국헬프에이지(조현세 회장)의 노인참여나눔터 회원들이 지난 10월 16일 충북 충주체육관에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반대한다'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국헬프에이지

 


거리 서명을 하면서 당사자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줍던 폐지를 마저 주우며 모르는 척 애써 외면하기도 했지만 조용히 다가와 "내가 바로 수급자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 많다"며 서명을 대신 받아 줄 테니 서명 용지를 몇 장 달라는 분도 있었다. '6.25 참전 전우회'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닌다는 보수적인 노인도 차근차근 설명을 듣고는 서명을 마다하지 않았다. 진보, 보수를 떠나 다양한 입장과 다양한 세대가 공감하는 의제가 바로 '줫다 뺏는 기초연금' 주제였다.  

 

 


▲ '기초연금 20만 원 되찾기' 펼침막 앞으로 노인이 폐지를 가득 실은 자전거를 끌고 무겁게 지나고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해결 기미는 오리무중

하루는 서명 홍보를 하던 중에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자전거 뒷자리에 커다란 오리 한 마리를 싣고 가는 노인을 만났다. 서울 도심에서 그리 흔하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는 조용히 수급자라고 말하며 서명을 하고 난 뒤 서명 가판대를 바로 떠나지 않았다. 

조금 후 그가 오리를 안아 서명 탁자 바로 앞에 놓았다. "사람들이 오리를 보고 서명을 많이 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노인의 말대로 오가는 시민들의 시선은 오리에게 쏠렸고 평소보다 많은 서명을 받을 수 있다. 그 때 우리 쪽 사람 누군가 "오리무중 기초연금을 시민들이 명쾌하게 해 달라"고 말했고 이날 서명 홍보전의 제목은 '오리무중 기초연금'이 되었다. 오리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날갯짓만 되풀이했지만. 

 

 

▲ 한 노인이 '잠시 빌려준' 오리 덕분에 이 날은 더 많은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도 보장돼야 할 기초연금의 운명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이미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시정하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1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외면한 데 이어 국회마저도 무시할 요량이다. 아직 정기국회 회기가 며칠 남아 있다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올 겨울은 수급자 노인들에겐 더 춥게 다가올 것이다. 이날 논의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또한 부양의무제를 조금 완화한 데 그쳐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다. 가난한 사람한테 더 야박한 게 박근혜 정부다.

지난 5월 기초연금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빈곤사회연대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래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이제 많은 사람이 알고 해결되기를 바라는 주제로 자리잡았다. 19개 단체가 모인 연대기구도 만들어지고, 1인 시위부터 거리 서명 홍보, 대학교 강연, 청와대 앞 당사자 노인들의 '도끼 상소'와 국회 토론회까지…. 수급자 노인들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참 많은 활동을 벌였다. 
 
최경환 부총리가 '개선하겠다' 언급은 했으나…

이러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이어 국회서도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으니 이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한 게 전부다.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수급자 노인에게 줬던 기초연금을 다음 달에 다시 뺏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7월에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8월 생계급여에서 뺏어가니 이번 달 11월이면 어느새 4번째 '빼앗기'이다.

법령체계를 보아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지난 5월에 제정한 기초연금법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인에게도 기초연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기초연금법이 통과되기에 앞서 지난 해 연말 복지부가 발표한 설명 자료에도 분명히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에도 기초노령연금을 신청하는 경우 지원 대상이 되며, 기초연금의 경우 2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치(기초연금법안 제5조 제6항)'한다고 스스로 말했었다. 

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제3조)이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간주해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그 만큼을 삭감한다. 기초연금법이란 상위 법률이 정한 것을 다른 법률(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하위 시행령이 뒤엎고 있는 셈이다. 기초연금법을 처음 만들 때 상충되는 다른 법령이 없는지 살피지도 않았단 말인가? 또 국회는 이러한 입법 상식조차 모르고 기초연금법을 통과시켰다는 말인가? 기초연금과에서 주고 기초생활보장과에서 다시 빼앗는다. 동일한 보건복지부에서 과별로 서로 다른 행정을 펼치고 있으니 이 같은 탁상 행정이 따로 없다. 

보충급여 원칙, 전가의 보도인가?

이처럼 수급자 노인의 기초연금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대목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더 아쉬운 건 사회복지 전문가 집단에서 같은 목소리를 모으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자 중 일부는 스스로 '보충급여의 원칙' 이라는 족쇄에 갇혀 이 문제를 방관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생계비를 보충해주는 제도이므로 기초연금만큼 생계급여를 공제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는 수급자 노인에게까지 기초연금을 줘서는 안 된다며 '보충급여 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입에 오르내렸다. 

보충급여 원칙이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급여는 수급자가 자신의 생활의 유지·향상을 위하여 그의 소득, 재산, 근로능력 등을 활용하여 최대한 노력하는 것을 전제로 이를 보충·발전시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는 문구에서 나왔다. 이는 수급자에게 구체적으로 급여를 지급할 때 고려할 방법적인 요소라는 의미인데 이것을 마치 '절체절명의 진리'라도 된 것처럼 떠받들고 있다.

묻고 싶다. 이 원칙이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최저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국민기초생활법의 입법 목적(제1조)보다 더 중요한지 말이다. 또 헌법 제34조가 말하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인지 말이다. 정말 주변에서 늘어만 가는 폐지 줍는 노인이 최저 생활, 인간다운 생활을 잘 누리고 있다고 보는가? OECD 국가 중 최고의 노인 빈곤율과 기초생활 수급자 중에서도 노인들의 처지가 더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법률이 정한 세세한 원칙이란 것도 사람이 만들다보니 서로 충돌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게 상식이고 이 또한 사람이 할 일이다. 뒤쳐진 가치에 스스로 갇혀 있기 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고민하는 게 참 지식인, 활동가의 몫이다. 

 

 

▲ 기초연금 만큼 생계비가 삭감된 자신의 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급자 노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빈곤 노인들도 따뜻한 겨울을 맞을 수 있도록

가난한 노인은 힘이 없다. 조직된 목소리를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다. 기초연금만큼 생계비가 빠진 자신의 통장을 확인한 한 수급자 노인은 "이렇게 다시 빼앗을 거라면 차라리 주지나 말지.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라며 한숨을 내쉰다. 동네에서 만난 한 여중생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선거 때마다 폐지 줍는 손수레를 밀어주거나 가난한 노인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악수하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장의 사회복지사, 시민단체 활동가, 지식인, 건강한 정치인들이 조금 더 힘을 모으자. 수급자 노인들이 기초연금 만큼 더 따뜻한 겨울을 맞을 수 있도록 해 보자.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 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