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기자 없는 기자회견에 지친 활동가, 내만복을 보라

2014. 7. 21. 17:3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회 운동, 직접 미디어를 만들자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 마을신문 도봉N 시민기자

 

 

 

전통적인 사회운동 방법은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리는 것이다. 각 언론사 소속 기자들은 그걸 보고 기삿거리가 된다 싶으면 전화를 걸어 몇 마디 더 물어본다. 직접 취재를 나가 기사를 좀 더 자세히 쓰거나 카메라 화면에 담을 수도 있다. 반대로 기삿거리가 아니다 싶으면 이메일 휴지통에 바로 들어간다. 물론 보도자료는 지금도 유효한 운동 방법 중에 하나다. 이 밖에도 논평이나 성명, 1인 시위, 집회 등의 방법이 있다.

기자 없는 기자회견, 언제까지…

기자회견도 그중에 하나. 많은 기자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보도자료를 보낸다. 하지만, 아주 커다란 이슈나 기삿거리가 아니고서는 바쁜 기자들이 내 맘같이 달려와 주지 않는다. '기자 없는 기자회견'을 하기 일쑤다. 그렇게 몇 번 기자회견을 하다 보면 활동가들은 지친다. 언론사 기자들 목 빠지게 기다리느라 많이 실망해 봤을 것이다. 

보도자료 보내기나 기자회견, 1인 시위, 캠페인, 집회 등이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긴 하지만 발상을 좀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 기자 없는 기자회견에만 매달리기보다는 활동가가 직접 기자처럼 뛰면 어떨까?

공중파 방송이나 중앙일간지의 파급력이 아직 가장 크긴 하다.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유튜브, 팟캐스트 등 온라인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달라졌다. 더는 공중파나 일간지만이 미디어 매체인 시대는 지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이 신문이 망하거나 온라인판만 내겠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사람들은 더는 본방을 사수하지 않는다

아침 출근길 전철에 탄 사람들을 보라. 저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영상을 보거나 팟캐스트 라디오를 듣고 있다. 동시에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니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손가락은 너무나 빠르다. 누군가는 옆 사람과 '소통의 단절'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스마트 TV는 어떤가? 꼭 정해진 시간에 앉아서 TV를 보지 않아도 자신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언제든지 골라서 볼 수 있다. '본방 사수'는 옛말이 됐다. 월드컵 축구 중계나 꼭 사수해야 할 정도로 인기인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시청자는 방송국이 미리 짜 놓은 편성표에 맞춰 TV 앞에 앉지 않는다. 공중파 방송의 추락도 멀지 않았다.

미디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상황이 이런데도 보도자료, 기자회견 등 전통적인 운동 방법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주는 기사나 사진, 음성, TV 화면만을 기다리지 말고 활동가는 직접 미디어를 생산해 보자. 보도 자료를 진짜 기사처럼 써 보고, 사진도 좀 더 잘 찍고,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직접 만들어 보자.

이제는 누구나 '미디어 소비자'가 아니라 '미디어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조금의 시간과 노력 외에는 돈이 거의 더 들지도 않는다. 요즘 웬만하면 스마트폰이나 DSLR 카메라 한 대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쓰고 있으니 이것들을 잘 조합하기만 하면 된다. 언제까지 주요 언론사 기자들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내만복, 두 돌 만에 주목받는 복지단체로 쑥쑥 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이하 내만복)는 만 2년밖에 안된 풀뿌리 복지국가 운동 단체다. 회원들이 내만복 뉴스레터를 받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지만,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 온전한 상근 활동가와 사무실도 없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초경량 네트워크 NGO인 셈이다.

그럼에도 사회복지 학계나 단체들 사이에서 근래 복지국가 운동을 내만복이 주도해 왔다는 평가를 종종 듣는다. 주요 일간지나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니, 누구는 참여연대 정도로 큰 단체냐고 묻기도 한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내만복이 보여 주는 성과는 작지 않다. 

두 돌짜리 어린 복지 시민단체가 이러한 평가를 받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내가 만드는"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풀뿌리 시민을 주체로 내세우며 '복지국가를 위해 시민들이 참여한다'는 취지가 에너지이다. 내만복 회원들이 1주년 기념식에는 '레미제라블 합창'을, 2주년에는 '복지국가 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복지 관련 시민, 당사자들도 적극적으로 만난다. 요사이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주제로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어르신 당사자들과 힘을 함께 모으고 있다. (☞ 관련 기사 : "박근혜 전하, 줬다 뺏는 기초연금 아니 되옵니다")

 

▲ 내만복 2주년 연극잔치의 한 장면. <만복TV>가 이를 영상으로 기록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여기에 복지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발 빠른 기획력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공약 파기' 사태에 전면 대응해 왔고 심지어 대통령을 공약 사기로 고발하기도 했다. 당위적 논리에 머물지 않고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를 끈질기게 찾고 공론화해 왔다. 올해 하반기부터 '복지운동 시즌 2'를 여는 복지 운동 전략을 내놓기 위해 내부 토론 중이다.

내만복, 사무실 없지만 방송국은 있다?

하나 더 보태자면 바로 미디어 활용 능력이다. 내만복은 사무실은 없는데 "방송국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마치 방송국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팟캐스트 라디오, 영상, 블로그를 잘 활용하고 있다.

먼저 팟캐스트 라디오인 '만복라디오'는 매주 <프레시안>에 나가는 내만복 칼럼 저자가 출연해 자신이 쓴 칼럼을 자세하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방송이다. 지금까지 매주 한 개씩, 29회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스마트폰에서 만복라디오를 터치하거나 컴퓨터 화면에서 클릭한 사람 수는 1만4000여 명에 달한다. 회당 평균 450여 명이다. 방송을 듣는 사람은 미국, 중국, 필리핀에도 있다. 물론 유명 인사가 진행하는 인기 팟캐스트나 전파 라디오에 비하면 작은 숫자이지만, 청취자 수는 꾸준히 계속해서 늘고 있다.

 

▲ <만복라디오> 녹음 현장. 누구나 팟캐스트 라디오를 만들 수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내만복 유튜브 채널은 '만복TV'다. 내만복이 밖에서 벌이는 캠페인이나 집회, 기자회견, 토론회, 강연회 등 거의 모든 활동을 카메라 영상에 담는다. 복지 현장을 내만복 자체 리포터가 생생히 뉴스 형식으로 전하기도 한다. 한 해 동안 총 70개 동영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시청한 시간은 약 2만2106분(15일 8시간)에 달한다. 공중파 방송처럼 별다른 유통망 없이 유튜브 채널만으로 기록한 작지 않은 성과다. 

만복라디오와 만복TV에서 다룬 방송분은 다른 글이나 사진과 함께 내만복 블로그에 올라간다. 매주 회원들과 원하는 사람들 2000여 명에게 온라인 뉴스레터에 실어 보내진다. 이렇게 꾸준한 노력으로 내만복 블로그 방문자는 현재 11만여 명을 넘어섰다. 어떠한 이슈에 관한 전단지를 만들어 11만여 명에게 배포한 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뙤약볕이나 눈, 비 내리는 날, 밖에서 11만 명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준다고 생각해 보자.

이렇게 온라인 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밖에서 하는 활동과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야 효과는 커진다. 가끔은 회원이나 시민을 모아 '보이는 만복라디오' 공개 방송을 할 수도 있다. 작년 추석 회원의 밤에 진행한 주요 프로그램이 바로 공개 방송이었다.

미디어로 기록하면 단체의 역사가 된다

미디어를 운동에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는 통계가 의미하는 성과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효과도 있다. 만복라디오나 TV에 출연한 사람들은 종종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지지자가 된다. 풀뿌리 시민들의 참여를 지향하는 취지와도 잘 맞는다.

또 영상이나 음성으로 기록한 제작물은 내만복의 역사가 된다. 이 제작물은 내만복 블로그와 인구 10억 명이 늘 상주하는 유튜브와 아이튠즈에 백과사전처럼 오랫동안 기록으로 남는다. 물론 비용은 전부 무료다.

단체 총회나 연말 송년회에 보여줄 사진, 영상이 없어 애 먹는 활동가들을 많이 봐 왔다. 평소에 이렇게 기록해 두면 총회나 송년회 준비가 수월하다. 그동안 모은 자료 중에 액기스만 뽑아서 보여주면 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마을에서 배웠다

나는 이렇게 미디어를 운동에 적절히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마을에서 배웠다. 한 동네 사는 이웃 주민들이 내 스승이다. 5년 전부터 이웃 주민들과 '도봉N'이라는 마을신문을 매달 1만 부씩 내 왔다. 신문만 찍다가 어느 날부터는 팟캐스트 라디오, 영상 뉴스를 만들었다. 도봉구 소식은 물론 해외 다른 마을 소식, 영화, 텃밭, 월드컵, 야구, 음악 등 소재도 다양하다. 모두 전문 방송인이 아닌 마을 주민들이 만든다. 

 

▲ 도봉N의 '보이는 마을신문' 녹화 장면. 신문으로 시작한 도봉N은 팟캐스트, 영상, 방송 등 종합편성 마을 미디어가 되었다. ⓒ이상호


그러다 보니 어느새 '문어발식(?) 종합편성 마을 미디어'가 되었다. 조금씩 소문이 나 서울의 다른 자치구는 물론 성남, 부천, 수원 등 다른 마을에 노하우를 전수하러 자주 불려다닌다. 고양시나 대전에 있는 어느 마을같이 멀리 있는 곳에선 관광버스를 타고 직접 보러 오기도 한다.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을 미디어' 전도사가 되었다. 신문, 팟캐스트, 영상 기술 전수가 모두 가능하다. 신문방송이나 미디어 홍보를 전공한 것도 아니다. 비싼 돈 주고 학원에서 배우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을 마을에서 배웠다. 마을에서 미디어로 주민들과 소통하면 자연스레 친해지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가까운 곳을 찾아보면 도봉N처럼 마을 미디어를 하는 곳들이 있다. 먼저 문을 두드려 보자.

활동가 누구나 기자, 방송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마을에서 배운 미디어를 복지국가 운동에 활용하고 있다. 효과도 좋고 보람도 있다. 무엇보다 만복라디오나 만복TV에 함께 참여하는 회원, 시민도 즐거워하니 운동이 더 재미있어 진다. 활동가들이여, 어떤 운동이든 이제 미디어를 잘 써먹어 보자. 누구나 기자, 방송인이 될 수 있다.

(2014.7.21)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