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발달장애 아이, 계속 데리고 살 건가" 묻는 이에게…

2014. 7. 15. 09:4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우리 아이, 18살 넘었다고 재활 치료를 못 받다니요?

 

 

 

유영신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 회장

 

 

 

 

최근 발달장애인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러 사람의 눈물과 땀이 만든 소중한 열매이다.

70명의 부모가 삭발한 이유

나는 지난 4월 10일 '발달장애인법 제정 촉구'를 위한 전국장애인부모 총력 결의대회에 참여하고자 여의도로 향했다. 많은 발달장애인과 부모가 '이름 없이' 죽어 간 발달장애인을 추모하고, 그 중 70명의 부모가 삭발식을 했다.

그 순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해 온 나 자신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졌다. "발달장애인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내 자식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꼭 만들어내겠다"며 눈물과 분노를 삼키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 깊이 파고들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당당하게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나는 22살의 자폐증을 앓는 자녀를 둔 어머니이다. 사회의 높은 벽 앞에 무릎 꿇어 절망과 좌절로 몸부림치는 경험을 자주 마주했었다.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게 아니기에, 그럴수록 세상을 바꾸어 보고자 마음 다짐을 한다.

내가 사는 제주도 서귀포에서도 지난 6월, 장애인부모회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도전, 제주희망걷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서귀포장애인부모회가 지역으로 깃발을 들고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더운 날씨에 몸도 성치 않은 우리 아이들과 가족이 13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지역 주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우리의 행렬은 파란 물결을 이루었다.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가 지역사회를 향해 첫발을 성큼 내디딘 셈이다. 

혼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함께라서 가능했다. 부모들의 얼굴은 흘린 땀방울을 닦으며 상기되어 있었고 입가엔 환한 미소가 아름답게 피었다. "할 수 있다!,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요?"를 묻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는 서로에게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 지난 6월 '우리들의 아름다운 도전, 제주희망걷기' 캠페인에서 우리 아이들과 가족이 13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


다른 아이와 다른 아이

다른 아이와 다른 아이. '불러도 대답이 없는 아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 하는 아이, 식당에서 소리치며 울어대는 아이,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아이'…. 발달장애 아이의 특성이다.

사회의 편견이 있고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몇 년은 식당에 가지도 않았었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성인 네 명이 붙잡아야 했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주사에 대한 공포로 주사 한 대도 제대로 맞지 못하기에 장염으로 수분을 보충해줘야 함에도 바라만 봤던 적도 수없이 많았다. 아이가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두 손 놓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부모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을까?

장애를 앓고 있다 해서 어느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가정교육 좀 잘 하지"란 얘기가 귓속을 파고들어 속앓이를 감당해야 했다. 외모는 멀쩡한데 아이가 보여주는 난해한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행동은 이렇게 어렵기만 하고 가족들의 마음도 상처투성이로 물든다.

더욱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성인이 되어가도 치료, 교육의 부재로 옷 입기, 용변 등 일상생활조차 처리하지 못한다. 돌발 행동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하기는 더 두렵고 힘들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있게 하는 것뿐이었다. 오롯이 장애인 가족이 모든 책임을 감당해 왔다.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를 만들다

2005년 중반 무렵 몇 명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치료와 교육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나섰다. 복지가 무엇인지 정책이 무엇인지 문외한인 우리는 '우리 아이와 같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을 수만 있다면' 하는 작은 희망으로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를 만들었다.

당시 서귀포에는 복지관을 제외하고 장애 아동이 치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없어 돌봄과 치료 교육 문제가 심각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은 사회생활, 경제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였다. 방학 중 돌봄은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더 심각했다. 이에 우선 방학 중에라도 돌봄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 나섰다. 특수학교를 빌렸고 지역자활센터의 보조교사와 지역 강사들이 무료 봉사를 해 주었으며, 청소는 부모들이 당번을 정해 진행되었다. 우리가 지역사회 단체와 함께 기획하고 운영한 첫 사업이었다.

시작이 반이라 부모들은 새로운 일들을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의 돌봄은 다른 장애와 비교해 몇 배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장애 당사자뿐만 아니라 형제의 정신적 피해 사례가 커지고 가족이 해체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에 장애인 가족을 지원하는 센터를 만들자 했다. 우선 전국 몇 군데 있는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운영 사례를 조사했다. 매일 매일 모여 논의하고 조언을 얻어 설문지를 만들고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토론회도 개최하였다. '우는 아이 떡 하나 준다'는 생각에 도청을 찾아가 센터 설립을 호소했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그 후 부모회 회원 전체가 다양한 활동을 벌인 끝에 2년 만에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조례가 만들어지고, 2011년 시범운영을 하고 2012년부터 설치 운영하고 있다.

 

▲ 2005년 아이들의 치료과 교육을 함께 만들자는 취지에서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가 생겼다. 사진은 '부모 교육 아카데미'에 부모들이 참여한 모습.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


멀기만 한 장애인 복지제도

예전에 비하면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외형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제대로 지원을 못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발달장애인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비만이 늘어나 아동 성인병에 노출되곤 한다. 이에 활동보조서비스 지원이 간절하지만, 나한테는 멀기만 하다. 현재 2급이지만 재판정을 받아야 하며 최근 판정 기준이 강화되어 하락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18세가 넘으면 재활치료가 종결된다. 부양의무자 제도로 장애인연금도 그림의 떡이다. 

특히 장애인 등급제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정치권이 장애인등급제를 점차로 폐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하루가 아쉬운 우리 아이들에게 그 날은 멀기만 하다.

발달장애 2급인 우리 아이도 판정 기준에서 등급이 떨어질까 봐 재검을 받을 수가 없다. 발달장애인 등급 판정이 짧은 시간에 몇 가지 단순 질문을 통해 등급 심사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장애 유형이 같다고 해서 같은 특성, 같은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보이는 특성이 너무나 다양하기에 다각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함에도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 심사 판정이 어렵다.

또한 발달장애인은 사회성이 부족해 나이와 무관하게 지속적인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18세 나이 제한으로 재활 치료가 단절된다. 이로 인해 발달장애인은 퇴행으로 치닫게 되어 오히려 성인이 되었을 때 더 증상이 나빠지고, 사회통합이 어려워 시설로 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취업이 되어도 적응하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군을 개발하여 맞춤형으로 지원하였으면 한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서라도 직업 유형 개발은 불가피하다. 나아가 발달장애인에 맞는 직업을 개발하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직업 재활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서귀포시장애인부모회


"계속 데리고 살 건가요?"

최근에 한 부모가 살며시 내 옆자리로 와서 앉고는 "00는 계속 데리고 살 건가요?" 질문을 던졌다. 순간 당황했다. 열심히 사회통합을 해야 한다고 운동을 하는데 무슨 의미를 질문하는 것인지…. 18세 이후에 제공되는 지원이 없는 현실을 한탄한 이야기였다. 최근 부모회의 아이들도 생활 시설에 입소하면서 비슷한 고민이 드는 모양이다. 발달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재활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 제발 장애당사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와 그 가족에게 쉼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장애인 복지 지원이 확대되었으면 한다.

장애인 관련 법률을 보면 여러 권리가 많다. 이런 권리 규정들이 당사자, 보호자, 지역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실제 현실화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장애인이라면 그 장애유형에 맞게 서비스를 받고, 지역공동체와 어우러져 함께 살 수 있는 복지국가가 도래했으면 좋겠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이 사회에 바라는 것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해주는 관심과 배려이다. 동정심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나와 장애인 부모들도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비장애인과 통합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장애인들이 세상의 문을 열고 당당히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뛸 것이다. 발당장애인 부모들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