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박근혜, 건강보험 보장성 3% 늘려…잠자는 8조 원

2014. 6. 9. 14:3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6월 건정심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팀장
 

 

지난 3일, 내년 국민건강보험 의료수가 협상(요양급여 비용계약)이 일단락되었다. 곧이어 이번 달 중에 내년 건강보험 보험료율과 보장성 내용을 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가 개최될 예정이다. 정부의 의료 민영화 추진으로 건강보험료 협상에 대한 관심이 크진 않지만, 내년도 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받을 영향은 적지 않다. 이에 곧 열릴 건정심 논의 내용을 점검해보자.

진료량을 관리해야 한다

내년 의료수가 인상률은 평균 2.22%이다. 병원 1.8%, 의원 3.1%, 약국 3.1%로 정해졌다. 작년 2.36%와 비슷하며, 물가 인상률에 조금 미치는 못하는 수준이다. 올해 초 의료계의 의료 영리화 파업과 이후 의정 협상에서 의료 민영화 추진 대가로 의료계에 수가 인상이라는 당근책이 제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는 발생하진 않았다.

이번 수가 협상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목표관리제를 부대조건으로 제시하였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목표관리제란 진료량 증가와 의료수가를 연계하자는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의료수가보다는 진료량 증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진료량 증가에 의료수가를 연계하면 그만큼 재정 지출 관리가 쉬워진다.

매년 의료수가는 2% 내외로 인상됐지만, 실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의료수가 인상보다 3~4배 증가하였다. 의료수가 인상 외에 진료량 증가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 고령화에 인한 의료 이용량의 증가와 함께 과잉 진료가 발생하면, 실제 건강보험 지출은 그보다 더 증가하게 된다. 최근에는 경제 상황의 악화로 국민이 의료 이용을 줄인 결과 건강보험 지출증가율이 3~4%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건강보험 지출 규모가 의료수가보다는 진료량의 증가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의료수가 계약 내용도 중요하지만, 진료량을 관리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무조건 건강보험의 지출을 절감하는 방향으로만 가는 건 곤란하다. 진료비 총액을 엄격히 제한할 경우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진료량 증가와 불필요한 과잉진료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조정하는 합리적 대책이 요청된다. 

허울뿐인 '4대 중증 질환 국가 보장'

또한 이번 건정심 논의에서 중요한 주제가 보장성이다. 의료수가 문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지출 항목의 가격을 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의료비 부담을 크게 느끼는 부분은 오히려 비급여 항목이다. 

내년 보장성 논의에서 급여화가 얼마나 이루어지는지를 주목해 봐야 한다. 건강보험의 급여항목을 늘리고, 비급여 항목을 줄여야만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의료비가 줄어든다. 이번 6월 건정심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방안의 일부와 3대 비급여의 급여화의 단계적 시행이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 줄지는 회의적이다. 4대 중증질환 대상자조차도 애초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3대 비급여 비용이 제외됨에 따라, 실질적으로 느끼는 혜택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지적된 바 있다. 그나마 최근 시민사회의 요구에 밀려 3대 비급여 개선 대책을 일부 시행함에 따라 4대 중증질환자의 경우 보장성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계산에 의하면 3대 비급여가 제외된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확대가 건강보험의 전체 보장률 상승에 기여하는 효과는 겨우 0.9% 정도에 불과하다. 즉,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의 효과로 현재 62%의 보장성이 62.9%로 상승할 뿐이다. 매우 미미한 변화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혜택은 4대 중증질환 대상자만이 누릴 수 있다. 현재 4대 중증질환자는 160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약속으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의료비 절감 효과는 실제로는 크지 않다. 

 

ⓒ연합뉴스


3대 비급여 조치, 의료비 부담 개선 효과 크지 않다

애초 정부의 약속과 달리 4대 중증질환 공약이 빈 공약으로 드러나자 시민사회가 강력히 항의했고, 이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지난해에 3대 비급여(선택진료료, 상급병실료, 간병료) 개선 방안을 내왔다. 그나마 이 3대 비급여 정책은 정부가 추진 의사가 없었지만, 공약 사기에 대한 비판에 힘입어 시민사회가 얻어낸 투쟁의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3대 비급여 대책은 한계가 분명해 보장성 확대가 크지 않다. 선택진료비는 단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어서 긍정적이나, 전문진료의사 제도를 두어 완전 폐지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상급병실료도 기준병실을 6인실에서 4인실로 강화하긴 하였으나, 상급병실료 부담이 1~2인실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크지 않다. 간병서비스의 급여화는 박근혜 정부하에서는 시범사업 정도 수준으로 그칠 예정이다.

3대 비급여 대책도 4대 중증질환처럼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의료비 절감 효과는 크진 않다. 필자의 계산으로는 정부의 3대 비급여 대책에 인한 보장성 확대는 2~2.5%정도로 추산된다.

더욱이 지금까지 언급된 건강보험 확대방안은 이번 건정심에서 최종 통과되어야 확정된다. 이번 건정심에서는 정부 보장성 방안에 대해서, 특히 선택진료 축소에 대한 수가 보전 방안을 두고 의료계와 적지 않은 갈등이 발생할 듯하다. 의료계가 선택진료 축소로 인한 수입 보전이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기에 그렇다.

8조 원의 건강보험 흑자 재정을 활용하자

이번 건정심에서 정부의 안이 모두 관철되더라도 건강보험 보장성은 크게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와 3대 비급여 대책을 합치더라도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3~3.5%포인트 정도 상승시켜 62%에서 65% 내외로 증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단계적 조치여서 현 정부 임기 말에 가서야 가능한 수치이다.

나는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그간 연간 100만 원 상한제, 입원 진료 90% 보장, 간병료 급여화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건강보험 보장률로 따지면 대략 80% 선이다. 최소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이나 돈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국민들은 없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민간의료보험에 40조 원가량을 쏟아붓고 있는 현실을 주목하자. 전체 민간의료보험 규모의 절반가량인 20조 원 건강보험을 보충할 목적으로 가입하는 실손의료보험료로 추정된다. 전체 국민의 60%가 월 7만~10만 원의 값비싼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빈약한 데서 비롯되는 일이다.

앞으로 획기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리는 방안이 논의되길 희망한다. 현재 건강보험이 지닌 누적 흑자가 무려 8조 원에 이른다. 향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 매우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2005년 건강보험에 누적흑자 1조5000억 원이 생겼다. 당시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은 이것을 계기로 삼아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진행하였고, 가계파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암 질환 보장률을 49%에서 71%로 획기적으로 높인 경험이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다. 8조 원이면 내년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현행 62%에서 75%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규모다. 여기에 약간의 건강보험료 인상을 동반한다면, 당장 국민들이 실손의료보험과 같은 민간의료보험이 없이도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건강보험정책의 핵심, 의료비 가계부담 해소에 두어야

그런데 정부는 이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 8조 원의 누적 흑자분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대신 단순 적립해 재정의 안정성만을 유지하고자 한다. 얼마 전 건정심 위원장인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기적 재정 상황보다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제도 관점에서 적정수준 보험료와 보장성 확대 연계가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 건강보험료 증가를 최소화하는데, 흑자분을 조금씩 사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렇게 정부의 시각은 매우 협소하다. 의료비 지출로 인한 국민의 가계 부담엔 관심이 없다. 국민이 의료비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은 건강보험료보다는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아 발생하는 과다한 본인부담금이다. 여기에 건강보험을 보충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입하는 민간의료보험이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 건강보험 하나로 서명 운동에 동참하는 시민. ⓒ프레시안(김윤나영)

 

건강보험의 재정은 가입자 건강보험료, 사업주 부담금, 정부 국고지원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병원비 지불에는 환자 본인부담금이 또 있다. 이 본인부담금은 전액 국민이 부담하며, 서민일수록 느끼는 부담이 크다. 민간의료보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국민은 건강보험료보다 민간의료보험료에 2배가량을 더 지출하고 있다. 

이제는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국민의 가계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의료비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장을 60%대 수준으로 방치한다면, 정부의 방안대로 현 정부 임기 말까지 기껏 3~4% 올려봐야 국민의 의료비 고통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의료비 걱정을 줄이고자 더 많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상황도 이어질 것이다. 결국 가계 부담만 더 늘어난다.

건강보험의 재정을 늘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자.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면, 의료비 걱정이 사라지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동기도 상당히 사라진다. 오히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건강보험료 인상도 전향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소득에 비례해 부과되고 사용자와 정부 몫이 더해지기에 보험료 인상을 통한 재정 확대는 사회 연대적 성격을 지닌다. 당장은 보험료가 오르지만, 의료비 가계 부담을 대폭 줄여 주므로 국민의 의료비 고통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6월 건정심에 주목하라

곧 건정심이 열린다. 건강보험료, 보장성 모두 서민의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지만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보건의료진영뿐만 아니라 언론 역시 그렇다. 이는 건정심이 정부 의도대로 끌려가도록 방치하는 일이다. 보건의료 진영과 복지단체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전체 의료량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보장성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늘릴 것인지,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하여 사회적 논의를 진지하게 벌이자.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