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어린이날 아이들이 바라는 게 비싼 선물일까

2014. 5. 7. 11:5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어린이날',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의 작은 소망

 

 

김명자 은광지역아동센터 센터장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어느새 8년 차. 올해 스물하나 된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학부모 된 기념으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찾다가 만난 '장애인 생활시설 봉사'.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역아동센터에서 지금까지 일한다. 

큰 애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시작한 일

지역아동센터에서 첫해에 만난 아이들이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다. 키들이 어찌나 큰지. 내가 올려다본 지 오래됐다. 워낙에 내 키가 작은 탓에 중학교에만 들어가도 아이들은 내 옆에 와서 내 머리 꼭대기가 자신의 어디쯤까지 오는지 손으로 가늠해보면서, "내가 이제 지 쌤보다 더 크죠?" 하며 좋아한다. 자신들은 나보다 커서 좋지만, 나 또한 아이들이 나보다 큰 것이 기쁘다.

지역아동센터는 돌봄이 필요한 만 18세 미만 아동, 청소년이 이용하는 시설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나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 장애 가정 아동 등 가정환경이 취약한 '우선 보호 아동'과 지역 사회에서 추천하는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다. 지역아동센터 운영비는 아동 정원과 법정 상근 종사자의 수에 따라 월 386만~ 527만 원을 차등 지원받는데, 국비와 지방비를 합친 금액이다. 여기에는 2~3인의 법정 종사자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교사들의 급여가 밝히기도 부끄러운 수준인 까닭이다.

우리 지역아동센터는 47명이 다닌다. 초등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년마다 골고루 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 30명으로 시작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중학생들도 같이 있는 시설이 되었다. 그러다 이제는 고등학생까지…. 

50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날마다 득실거리면서 지내다 보면 같이 잠만 안 잘 뿐 거의 집이나 마찬가지다. 계단을 한 번에 세 칸 뛰어내리다 인대가 찢어진 3학년 여자애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잠깐 한눈판 사이에 장난치다 주먹다짐까지 해서 한 놈은 씩씩대고 한 놈은 울고…. 화장실에서 장난치다가 머리 부딪힌 형이 화가 난 줄도 모르고 생각 없이 놀리다가 주먹 한 대 맞고 잇몸에서 피를 흘리며 우는 남자애도 있다. 이런 일들이 어제 저녁 30분 동안 일어난 일이다. 날마다 싸우고 우는 일이 생기지는 않지만,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은 없다. 그러다가도 저녁밥 먹을 때 자리가 모자라 바닥 평상까지 둘러앉아 밥 먹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든든하고 좋을 수가 없다.

어른들은 누구랑 치고받고 싸우면 며칠 안 보든지 영영 안 보는 사이가 되는데, 아이들은 다음 날 또 마주 앉아 '브루마블' 게임 하면서 깔깔거린다.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을 서툴고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아 어른들이 다 가르쳐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과 늘 지내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아이들은 다르다. 홧김에 때리긴 했어도 금세 미안하다고 말하고 맞은 녀석도 미안하다는 말을 얼른 받아 안는다. 어른들하고 세계가 다르다. 따지거나 재지 않고 쉽게 부드러워지는 그 아량을 어떻게 흉내 낼 수 있을까.

노동절에 '일'해야 하는 이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과 복지를 해 만든 근로자의 날이다. 지역아동센터도 쉬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어느 학교는 쉬고 어느 학교는 안 쉬고. 또 대부분 중고등학교는 정규수업을 한다. 노동절이니 마음 편히 쉬려 했지만, 부모님이 일터에 가시는 몇몇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문을 열어야겠다고 의견을 모아 조금 늦게 열었다. 

재작년부턴가. 토요휴업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토요일에 아이들을 담당하는 일이 지역아동센터로 넘어왔다. 좋은 일자리에서 따박 따박 쉬는 날 쉴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해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을 돌보는 기관'인지라 토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노동절에 쉬는 것도 맘이 편치 않아 차라리 문을 열었다. 종일 빈둥거리면서 두 번의 간식과 저녁까지 먹은 아이들은 집에 갔고, 지금은 고등학생들이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노동절이 노동의 날(?)이 돼버렸다.

"지역아동센터가 집보다 나아요"

아이를 돌보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참 다양하다. 학교 숙제와 뒤처진 학습 부진을 도와주는 일(교육)이 있다. 또 식사를 거르지 않게 챙겨 먹이고, 손발톱 깎기, 머리 청결 등 일상생활을 관리하며, 썩은 이가 없는지 보건소에 데리고 가고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보호)이 있다. 그리고 혹시나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치유해 주려 노력하고, 가정방문도 가고, 필요하면 보호자와 상담도 해야 한다(정서). 때때로 영화도 보러 가고, 연극을 배워보기도 하고, 캠프도 가야 한다(문화).

 


 

▲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더 좋은 돌봄을 위해 지역사회 기관이나 마을과 연계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집-사회적 가정', 아니 그 이상이다. 집에서 엄마가 자식 키우듯이 일상의 모든 일을 도와주는 게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이다. 이러니 아이들이 웬만한 집보다 낫다는 말도 하지….

우리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면서, 모든 아이가 다 행복하고 안전하게 마음의 온전한 평온을 찾아 잘 자라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않다.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몸과 마음의 빈자리는 있다. 우리는 그저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자리가 최소화되도록 도울 뿐이다. 그것이 마음 안의 빈자리든, 사회 제도의 문제에서 생기는 공간이든.

지역아동센터가 걸어온 길

지역아동센터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1960년대 도시 빈민 지역과 공단 지역을 중심으로 야학형태로 운영되다가 대도시 빈곤 지역 아동들의 교육에 관심을 두고 시작한 공부방 운동이 1970~1980년 초에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후 1990년대 IMF를 거치면서 신빈곤층이 급증하고 가족 해체, 실직, 가정 폭력 등 다중위기에 처한 아동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공부방의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마침내 2004년에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되었다. 당시 895개소에 2만3347명이 이용하던 지역아동센터가 2013년에는 4086개소로 늘어났고, 10만9256명의 아동, 청소년이 이용하고 있다. 오늘날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을 단순 돌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육, 음악·미술·공동체놀이 등 문화 활동, 다양한 심성 훈련과 상담 및 권익 보호 활동, 학부모 교육과 지역연계 활동까지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지역아동센터 혼자서 할 수는 없다. 지역아동센터 이름처럼 '지역이 함께 돌보는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어린이날,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일찍이 우리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마을에서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마을 공동체성을 살려 10년째 어린이날 잔치한마당을 열어 왔다. 마땅히 놀러 갈 데가 없는 지역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어린이날 잔치한마당은, 학교 운동장이나 넓은 공간을 빌려 온갖 체험과 놀이를 벌이고 먹을거리도 제공하는 마을 큰잔치가 되었다. 

우리 지역아동센터는 천여 명이 놀다 가는 어린이날 잔치한마당에서 먹을거리 판매를 맡아왔다. 자원봉사자와 아이들 부모들로 결성된 '어린이날 행사 멤버'는 그 큰 잔치를 끄떡없이 치러냈다. 부침개를 몇백 장 부친 사람이나, 바람개비를 하루에 수백 개를 접은 사람이나, 종일 아이 얼굴에 예쁜 나비와 하트를 그려준 사람이나, 행사장에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차량 안내를 맡아준 사람이나 모두 한마음으로 잔치를 치러냈다. 그렇게 한마음으로 치른 잔치는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마음 깊이 추억을 남겨줬다. 아이들은 해마다 마을에서 열린 어린이잔치 한마당을 '어린이날 가장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올해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가슴 아픈 소식 때문에 마을이나 단체에서 계획했던 크고 작은 행사들을 취소하기로 했다. 어린이날 잔치한마당도 안 하기로 했다. 대신 우리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길목 곳곳에 노란리본을 달아놓고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아이들도 큰 사고로 온 나라가 슬퍼하고 있는 터라 어린이날 잔치가 취소된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면서도 역시 어린이날을 기다리고는 있다.

 

 

▲ 서울시청에 차려진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프레시안(최형락)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이날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5학년 한 아이가 말한다. "그때 있잖아요~ 어디에 모여서 막 무슨 장애체험도 하고 식물도 심고. 선생님이 닭꼬치도 팔았잖아요! 그때가 제일 재밌었어요!" 이에 다른 아이들도 맞는다며 서로 같은 장소에서 경험한 자신들의 기억을 떠올리느라 열을 올린다. 어린이날 무엇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는 말을 하는데도 아이들은 신 났다. 

놀이공원에 가는 건 어떠냐고 물으니 그건 너무 힘들고 지치고 재미없단다. 하나 타려고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게 제일 짜증 난단다. 아이들도 진짜 재미를 아는 거다. 몇 시간을 지루하게 줄 서서 기다렸는데 막상 타는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는 허무함을 아이들은 악몽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지난해 자유이용권을 저렴하게 해준다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려 공부방 애들 모두 실내놀이시설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밥값 아끼려고 김밥, 물, 간식 등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 한바탕 놀다 온 아이들을 구메구메 먹였다. 어디서 파란색 물감 탄 거 같은 음료수 사 먹으며 오는 아이들한테 돈 아깝게 그런 걸 왜 사 먹느냐고 핀잔주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온다. 아이들 먹고 싶어 했던 츄러스 하나 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똑같은 물건을 몇 배나 줘야 사고, 나올 때까지 돈 쓰면서 죽으라고 고생만 하는 놀이공원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도 나와 생각이 같아 다행이다.

아이들아, 자전거 타러 가자

그래도 어린이날인데 계획 없이 날짜만 보내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어린이날에 자전거를 타러 가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토요활동으로 몇 번 타본 경험들이 있어서 그런지 대체로 아이들은 찬성했다. 구청에서는 아이들과 체험 활동이나 나들이를 자제하라고는 했지만 나들이하고 체험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여느 때보다 더 철저하게 안전에 대비하며 준비하고 있다. 어리거나 자전거를 잘 못 타는 아이들을 위해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17명 섭외했고, 교사와 공익근무요원 등 선생님만 8명이다. 아이들 부모님도 몇 분 가신다고 했다. 오히려 좁은 자전거길이 복잡해서 생길 안전사고에 더 유의해야 할 판이다. 이렇게라도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어린이날이 낀 연휴가 길다. 그래서 더욱더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며칠 동안 별 계획 없이 뒹굴거리거나, 삭제한 핸드폰 게임을 다시 저장해 며칠 '게임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건 아닌지. 긴 연휴가 오히려 걱정거리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화려하고 비싼 선물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손바닥만 한 공터나 친구하고 놀 자유 시간 조금. 가족끼리 다정하게 둘레길 한 바퀴 산책. 하루만이라도 엄마가 일 나가지 않고 쉬는 날. 아이들이 원하는 건 너무 작아서 어쩌면 시시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일들이다. 그래, 얘들아 이번 어린이날엔 자전거를 신 나게 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