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넘치던 ‘복지 구호’ 다 어디 갔나

2012. 5. 31. 17:0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硏 연구실장


복지국가 운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0년 무상급식 이후 보육, 의료, 반값등록금, 복지재정 등 계속 몰아칠 것 같던 복지국가 물결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일시적 멈춤으로 보기엔 정황이 심상치 않다. 우선 보편복지의 선봉에 섰던 야권이 그렇다. 근래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선거,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내홍 탓이 아니다. 19대 총선에서 야권이 드러낸 모습은 복지국가를 추진할 의지도 힘도 없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민주통합당은 화려한 복지공약을 내걸면서도 엉성한 재정방안으로 기획재정부의 검증 공세에 시달리는 수모를 당했다. 명확한 재정방안 없이는 복지포퓰리즘으로 공격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안이하게 선거에 임한 결과이다. 진보정당 역시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제도권 안에서는 소수정당이지만, 복지공약이나 부자증세를 공론화하기 위해 시민, 노동자, 농민 등 대중적 참여를 조직하는 진보정당다운 활동을 찾아볼 수 없다. 복지 의제가 공약자료집 안에서만 맴돈다.

시민사회 쪽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복지국가 담론 확장에 큰 역할을 해왔던 복지단체들이 19대 총선에서 복지국가운동의 정치세력화 실험을 벌였으나 좌절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작년 7월 참여연대, 여성연합, 한국진보연합, 민주노총 등 무려 402개 노동민중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는 그 규모가 무색하게 눈에 띄는 활동이 없다. 보편복지를 바라는 일반 시민과는 동떨어진 형식적 상층 활동에만 머물러 있다. 

예상 밖의 일이다. 지난 2년 시민들의 열망으로 만들어진 복지 의제였다. 19대 총선에서 오히려 보수세력의 역공에 시달리는 수세적 의제로 전환돼 버리다니. 심지어 새누리당이 총선 복지공약 일부 철회를 검토한다는 보도마저 떠돈다.

야권 정치세력과 시민단체의 책임이 무겁다. 복지국가 운동의 안이함이 대선까지 이어질 경우 설혹 야권이 집권해도 실질적인 복지 확대는 어려울 듯하다. 지금과 같이 수사로만 존재하는 복지로는, 기득세력이 막강하게 저항할 지출 혁신작업도, 복지 확대에 필수적인 대규모 증세도 수행할 수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대의 역설’이라는 부메랑도 있다.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불어올 역풍이다. 대한민국에서 상당 기간 복지국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지 모른다.

어찌해야 할까? 제도정치권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총선 이후의 야권 행태는 더욱 복지민심의 기대를 빼앗아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중도로 우클릭하자 하고, 통합진보당은 끝도 없는 진통 속에 허덕인다. 더디더라도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풀뿌리 복지국가 운동이 절실하다. 의제와 주체로 나누어 보자.

의제 영역에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닌 사업이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서라도 무상의료를 구현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 능력껏 세금을 내자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취지는 좋으나 사업의 초점이 불분명하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료와 보장성 수준을 결정하는 기구인 국민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시민들이 직접 요구를 전달하고, 복지 증세를 위해 중간계층 이상은 모두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는 사회복지세 도입 운동도 벌여야 한다. 

제도정치권 밖 풀뿌리 주체는 어디에 있을까? 시민들의 실천프로그램 참여가 곧 복지 주체 형성과정이다. 복지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직접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면 위력적인 주체가 된다. 직능별로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50만명이 넘는 사회복지사가 존재한다. 오랫동안 관료적 복지행정에 갇혀 왔지만, 정부와 시민을 잇는 전달벨트로서 풀뿌리 복지 운동의 잠재적 주역이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냥 기다리면 색깔이 바뀔 것 같지 않다. 시민주체형 참여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내부에서 복지국가 운동의 활기가 생겨난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민들이 나서 파란불로 바꿔 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