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박근혜, '복지는 아버지의 꿈'이라더니

2012. 4. 19. 17:0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요즘 '말'들을 가지고 '말'들이 많다. 아래 다섯 개 '말'이 있다. 과연 누가 했을까? 하나씩 추측해 보시라.



아래 말들은 누가 했을까요?

(1) "민간부문은… 이익의 극대화에만 치우쳐 그에 따른 책임과 사회의 공동선을 경시했다 … 개별 경제 주체들의 생각과 지향점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 공동선이 합치될 때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고 지속가능한 이윤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합의가 중요하다. 오직 수익률만 높이려는 과다한 레버리지 관행이나 무분별한 파생 상품 거래 같은 도덕적 해이가 지속되는 한… 시장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주주 이익과 공동체 이익을 조화시킴으로써 기업 윤리를 더 높이 창달해야 한다."

(2) "…조사에 따르면 중산층의 점유율이 70%에서 43.6%로 떨어졌다. 고소득과 저소득 계층의 양극화된 사회로 가고 있는 징조다. 한국사회는 두 동강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3) "최소한의 사회보장체제를 갖추려면 막대한 국가재원이 필요한데 재원마련에는 고소득층의 정직세금납부가 불가피하다… 자본소득이 많은 고소득층에 대한 징세강화가 어쩔 수 없(다)."

(4) "결국은 돈이 문제지만 예산 우선 순위를 조정해서라도 힘든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이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마지막 날을 맞을 수 있도록 애를 쓰는 것이 나라의 도리다."

(5)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들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부(는)… 무능의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위에 인용한 다섯 가지 '말'은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일까? (1)은 재벌을 적(敵)으로 삼는 이 땅의 소위 좌파 민주 세력이 한 말인 것 같다. (2)도 한국 사회의 문제를 분배 문제로만 바라보는 좌파 민주 세력의 단골 문제 진단처럼 들린다. (3)은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야당의 주장처럼 들린다. (4)와 (5)도 노인을 포함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말처럼 들린다. 다 틀렸다.

(1)은 박근혜 대표가 2009년 5월 6일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가서 연설한 연설문의 일부다. (2)는 1999년 12월에 <조선일보>가 양극화와 관련된 기획기사로 쓴 기사의 일부다. (3)은 <조선일보>의 1998년 5월 31일자 사설 중 일부다. (4)는 이른바 신빈곤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던 2004년 10월 8일자 <조선일보> 사설 중 일부다. (5)도 역시 <조선일보>의 2004년 12월 3일자 사설의 일부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말 바꾸기

박근혜 대표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 연설은 복지 국가로 선회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는 그 연설을 하고 몇 달 후 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기를 맞아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고 선언했다. 하기야 박정희도 '말'로는 복지국가를 이야기했다. 1961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터뜨린 일성이 빈곤 타파였고 유신체제를 만들면서 복지국가 운운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아버지가 독재를 하던 그 시절은 사회 정책이나 분배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였던 때였다. 일화가 있다. 미국에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하고 1970년대 중반 경에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오게 된 한 박사가 배로 자신의 책을 한국으로 부쳤는데 이 책들은 제목이 온통 'Labor…'라고 되어 있는 바람에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여 한동안 책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복지 전문가들은 공개석상에서 분배를 마음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혹시 좌파로 몰릴까 혹은 점잖치 못한 사람으로 몰릴까 전전긍긍했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 아직도 살아있는 분들이 있는데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고? 도대체 그의 아버지는 어떤 복지국가를 꿈꾸었기에 복지전문가들이 그렇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지냈는지 의아하다.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효도연금법은 유시민 의원이 2005년 11월에 발의한 법이다. 그런데 이 '효도'라는 단어가 들어간 정책은 유시민 의원이 원조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원조다. 한나라당은 2004년 5월 고령사회 대비 공조체제 구축을 위해 소득, 의료, 주거 등 각종 노인대책을 구체화한 효도특별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어 같은 해 7월 박근혜 대표는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효도특별법 제정을 공언했다. 한나라당은 2006년에는 모든 노인에게 매달 30만 원 씩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제도 도입을 주장했고 박근혜 대표는 당시 참여정부와의 연금 개혁 협상에서 이 기초노령연금을 계속 주장했다. 그 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노인복지대책을 강조하며 기초노령연금의 대폭 인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얼마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더니 총선공약집을 내면서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빼버렸다. 뿐만 아니라 반값등록금도 공약에서 빼버렸다. 박근혜 대표는 걸핏하면 다른 사람을 보고 말을 바꾼다고 말한다. 과연 누가 말 바꾸기를 한 것인가?

박근혜 대표의 말바꾸기는 이 땅의 보수언론과 쏙 빼닮았다. 기억의 흐릿함을 이용한 말바꾸기이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를 그렇게도 걱정하던 <조선일보>는 정작 참여정부가 양극화를 거론하자 한국사회에 양극화는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리고는 양극화가 문제가 아니라 빈곤화가 문제라고 우겨댔다. 또 외환위기라는 위기 상황의 극복을 위해서는 "자본소득이 많은 고소득층에 대한 징세강화가 어쩔 수 없다"면서 부자증세를 주장했지만 과거의 외환위기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위기상황인 현재에 와서 그 스스로도 기억이 흐릿해졌는지 부자증세는 나라를 말아먹는 길이라고 비판해 왔다. 또한 2004년에 노인의 품위있는 마지막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라의 도리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기본적 욕구는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선일보>는 지금에 와서는 우리나라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연금 지출이 늘어나 노인에 대한 복지 지출만으로도 복지 재정이 과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며 기본적 욕구의 충족을 우선순위로 두면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협박한다.

보수세력, 복지 말바꾸기 심각한 수준

보수언론의 이런 말바꾸기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민주정부 때 한 달이 멀다 하고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협박하고 연금내도 한 푼도 못받는다고 겁박하던 언론들이 이 정부 들어와서는 연금기금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가진 부정적 인식의 상당부분은 보수언론들의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연금기금고갈론에 그 원인이 있다. 선동적인 연금기금고갈론으로 복지정책을 정치에 악용한 보수언론들의 행태는 역사를 두고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친일행적과 독재정권에 대한 야합행태와 함께 말이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복지정책의 공약이 정당 간에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표의 말바꾸기로 복지정책 공약도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 박근헤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말바꾸기를 똑똑히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