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7. 12:23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한국 복지국가는 기후위기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남재욱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가뭄이 심각하다. 어느 인기 가수의 공연에서 사용되는 물이 SNS에서 논란 거리가 될 만큼 그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는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 남부지역,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가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전세계적 문제가 된 가뭄의 배후에는 기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가뭄이라는 기후현상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기후위기를 계기를 빈도가 잦아지고 정도가 심각해졌다. 마치 예전에도 있었던 인수공통 전염병이 기후위기를 등에 업고 더욱 기승을 부려온 지난 몇 년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 이제 기후위기는 환경에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초 발표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 6차 평가보고서는 기후위기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있음을 확인했다. 기후변화는 자연과 생태계에 이미 상당히 큰 충격을 가하고 있으며, 그 일부는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겠다는 파리협약의 목표를 달성할 기회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후 불평등과 복지국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간 만들어온 생산과 소비 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당연히 이 과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문제는 기후위기도 대응과정이 수반하는 고통도 철저히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삶에 불평등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가뭄, 기온 상승, 해일 등 환경의 변화는 국제적으로는 더 가난한 국가에게, 국내적으로는 더 가난한 계층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더 부유한 국가, 더 부유한 계층일수록 기후위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지 불평등할 뿐 아니라 불공정한 상황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과정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정의로운 전환’은 이와 같은 불평등과 불공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현재의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원인 모두에 지구환경조차 이윤추구의 도구로만 여겨온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있다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하지만,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책임 있는 이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고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사회적 격변기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대게 빈곤층과 서민들임을 고려하면 정의로운 전환 과정은 분배적 고려를 상당히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발전시켜온 최선의 분배 시스템인 복지국가가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의 복지국가는 과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기후전환기 복지국가를 준비하고 있는가?
주거·지역 불평등과 복지국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주거환경 불평등은 기후전환기에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영향 중 하나가 기온 상승이며, 주거환경이 열악할수록 기온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름철이 되면 폭염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쪽방촌 주민들의 모습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주거환경의 개선, 이른바 ‘그린 리모델링’은 쪽방촌 주민들과 같은 주거 약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저소득층, 서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건축 부문의 탄소배출을 감소시켜야 한다. 주거 부문의 탈탄소 전환은 주거복지과 결합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지역 간 불평등과도 관련이 깊다. 일례로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핵심 정책 중 하나는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인데 우리나라의 화석연료 보조금의 상당 부분은 농수산업에 대한 보조금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다른 대책 없이 폐지할 경우 도시에 비해 농어촌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화석연료 보조금의 폐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필수적인 정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전에 그 영향이 큰 지역이나 계층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간 산업구조 차이 역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전환이 지역에 따라 다른 영향을 갖는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측면이다.
노동전환과 복지국가
노동전환 역시 탄소중립 과정이 수반할 변화다. 근래에는 탄소중립화가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일자리를 감소시키지 않은 것이라는 예측이 많지만, 그렇다고 일자리의 구조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화석연료 산업을 비롯한 고탄소 산업은 소멸 또는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며,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는 자동사 산업 등 다른 산업에서는 산업구조가 크게 변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일자리에 위협을 받을 것이며,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산업에서 일자리가 나타난다고 해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화석연료산업의 사례에서 보듯 고탄소 산업의 상당수가 특정지역에 밀집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산업위기의 가능성도 크다.
이와 같은 노동전환 과정이 순조롭기 위해서는 고용·노동 측면의 모든 면에서 긴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전환 과정에서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협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위한 소득보장과 재취업 지원, 소멸하는 산업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산업으로의 이동을 도울 수 있는 숙련개발과 직업훈련, 지역 수준에서 나타나는 산업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산업 위기 지원 정책과 지역 재생 전략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정책들이 제대로 수립되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노사정을 포괄하는 사회적 파트너 간의 신뢰와 협력, 중앙과 지역, 공공과 민간의 포괄적 거버넌스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주거복지, 지역 간 불평등, 노동전환 문제는 기후위기 과정에서 우리 복지국가가 대응해야 할 수많은 사회적 위험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와 같은 위험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앞서 노동전환의 기반이라고 한 노사정 협력이나 중앙-지역-민간을 잇는 거버넌스 구축은 우리 사회가 그 필요성을 부르짖으면서도 제대로 운영해오지 못한 해묵은 숙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수준 거버넌스의 기반이 되어야 할 탄소중립위원회는 출범하자마자 뻐걱거리고 있다. 새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에도 '원자력'만 보일 뿐 사회적 과제에 대한 고려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탄소중립 자체도 큰 문제이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복지국가의 준비 정도도 문제다.
사실 기후위기 대응과 복지국가의 관계에는 위에 제기한 개별 정책 수준의 문제보다 더 큰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20세기에 발전한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지속적인 생산의 확대와 생활수준 향상을 전제로 한 생산주의적 패러다임 위에 있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더이상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복지국가의 기초 역시 생산과 소비의 지속적인 확대가 아니라 일정한 한계선 안에서 인간의 필요(needs)를 만족하는 분배적 고려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요컨대 기후위기는 개별 정책 수준의 준비뿐 아니라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전환까지를 요구하고 있다.
질문해보자. 우리는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대응과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복지정책은 준비되어 있는가? 탄소중립 이후의 사회를 대비할 복지국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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