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복지국가운동, 시장불평등에 맞서자

2022. 5. 26. 14:0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그제 복지시민단체들이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을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예전 두 정부가 출범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새 정부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2012년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복지국가에 소극적이었던 후보가 당선되었어도 복지단체들의 의욕은 강했다. 무상급식 논쟁 이후 보편복지 담론이 부상하고 있었고 박근혜 당선인 역시 ‘한국형 복지국가’를 제시하며 복지 확대를 약속했다.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했다며 오랜 기간 낙담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의지를 불태웠다. 박근혜 정부 내내 복지단체들은 복지 활동을 힘있게 펼쳤다.

 

문재인 정부를 맞아서는 정말 새 세상을 꿈꾸었다. 대통령까지 탄핵하며 무혈의 시민혁명을 이룬 자부심이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를 주창하고 ‘포용적 복지국가’를 제안하며 시민 열망에 화답했다. 당연히 복지단체들은 촛불정부에서 복지국가로 한 단계 도약하리라 전망했고 일부 활동가들은 직접 정책에 참여하며 책임을 자임했다.

 

 

반면 그제 토론 자리는 무거웠다. 무엇보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복지국가 비전’을 담은 개념은 찾을 수 없었다. 비전은 정부의 의지와 포부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비전의 실종은 새 정부에서 복지의 위상이 높지 않음을 시사한다. 대신 그 자리에 지속 가능성을 명분으로 “사회보장정책 조정”이 들어섰다. 복지제도의 합리화는 늘 필요하지만 서구에 비해 복지수준이 낮은 대한민국에서 복지 조정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걱정할 만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새 정부가 내건 복지 슬로건은 “필요한 국민께 더 두껍게 지원하겠습니다”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집중 지원한다는 나름의 복지철학이 반영된 문구이다. 보편·선별 담론과 별개로 취약계층의 절박한 민생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두꺼운 지원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국정과제에 담긴 내용은 생계급여 기준을 중위소득 30%에서 35%를 올리는 정도이고, 긴급복지, 근로장려금 등도 개혁한다지만 강도는 약하다. 심지어 코로나19 재난을 맞아 만발했던 실시간 소득파악, 소득기반 사회보험, 빈곤제로 소득보장 등 기존 논의 성과도 국정과제에 담기지 않았다.

 

물론 전향적인 정책들도 있다. 앞으로 현금복지를 넘어 사회서비스와 돌봄을 강화하겠다는 기본 방향은 적절하다. 새 정부가 제시한 사회서비스와 돌봄복지의 고도화, 필수·공공의료체계 확충 등은 시대적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분야는 공공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막대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현실성을 가진다. 연금개혁도 기초연금을 인상하고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는 건 긍정적이나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최종 결정은 사회적 합의 방식을 취하더라도 논의의 중심은 행정부가 잡아야 하건만 뜨거운 감자를 국회로 넘기려는 모양새이다.

 

사실 토론자리가 신나지 않았던 건 새 정부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촛불시민정부라고 여겼던 전임 정부가 준 ‘기대의 역설’이 깊은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포용국가를 주창했건만 실제 저소득층조차 그리 포용하지 못했고 부동산가격 폭등에 따른 주거비 부담은 기존 복지 효과마저 상쇄해 버렸다.

 

촛불혁명을 완수하겠다 선언했지만 여전히 서민의 삶을 힘겹게 하였던 전임 정부, 아예 복지국가 비전조차 제시하지 않는 새 정부를 보면서 복지국가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애초 복지는 시장의 1차 분배가 낳은 문제를 개선하는 2차 분배이다. 서구에서 복지국가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교섭력으로 시장분배를 개선하고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시장불평등에 대응하는 체제이다. 이와 달리 불안정 취업자의 노동이 제대로 보상되지 않고 집값이 폭등하여 세입자가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돼버리는 우리 현실에서는 복지가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없다. 이는 시장불평등을 개선하지 못한 전임 정부로부터 얻은 교훈이며, 시장을 중시하는 새 정부를 맞아 더욱 새겨야 할 인식이다.

 

쉽지 않은 5년일 듯하다. 새 정부에서 시민들의 노동권이 옹호되지 못하고 집 소유자 편향의 정책으로 자산양극화가 고착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 복지단체들이 복지 확대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시장과도 맞서는 활동을 펴야 한다. 시장의 불평등에 대응하며 복지까지 확충하는 이중의 과제이다. 사실 이는 서구 역사가 보여주듯이,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일하는 사람의 노동권을 세우고, 전·월세 사는 사람의 목소리를 키우자. 새 정부 출범을 맞은 복지단체들의 새 다짐이다.

 

 

[정동칼럼] 복지국가운동, 시장불평등에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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