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주민등록법'은 집 없는 노숙인에게는 최악의 법"

2021. 5. 28. 11:3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집을 잃으면 사라지는 '모든 국민'의 권리

 

김의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장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노숙인 문제는 늘 우리 사회의 뜨뜻미지근한 화두였다. 뜨거운 이슈라고 하기엔 시기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 동절기엔 단골로 등장하는 뉴스거리가 되지만 곧 잊히고, 언론에 사망 사고가 이슈화되거나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화들짝 놀라 처리하거나 치워버리려 한다. '처리해 달라'거나 '치워 달라'는 단어가 민감할 수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에 대한 편견은 이제 낙인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의 노력도 미진하다. 보건복지부에는 노숙인을 담당하는 전담부서조차 없고 노숙인 문제에 관심 없는 지방 정부는 문제 해결에 매우 소극적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지도 않으니 노숙인 복지는 늘 잔여 혜택에 기댈 수밖에 없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숙인 복지는 늘 그런 상황이었다. 물론 양적으로 보면 서비스의 총량은 더 많이 늘어나 있고, 서비스 체계도 잡혀 있지만, 여전히 노숙은 뜨뜻미지근한 문제로 외면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노숙인 복지 서비스의 자원 부족의 문제, 노숙화 과정에서의 사회적․개인적 문제, 공공 서비스 부족의 현실에 대해 읍소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노숙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국가의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집이 없다고 해서 생명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안식처를 만든다. 거미는 자기 몸에서 실을 뽑고, 새는 나뭇가지나 풀을 모아 둥지를 짓는다. 식물도 자신이 거주하기 적당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존한다. 인류 역시 존재의 의미를 가졌던 순간부터 안식처를 찾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지리적 환경에 따라 집의 형태도 건축의 방식도 다르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지만 집이라는 근본적인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집을 가진다는 것은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 유지를 위한 본능적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집이 없다고 해서 생명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둥지 없는 새는 무의미하고, 굴을 파지 않는 토끼는 토끼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집이 없는 사람을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집은 안식과 안전을 위한 필수적 요소이지만 사람에게 집은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집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통념적인 거주 공간인 건축된 주택에서 생활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성이 말살되었거나, 존재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노숙의 문제는 개인의 인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노숙의 문제는 극단적 빈곤의 상황이다. 하지만 빈곤의 문제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현재 노숙인 복지에서는 노숙인의 감소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노숙이 빈곤의 최극단의 상황이 노숙이지만 노숙의 범주를 경제적 상황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홈리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전략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 전략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은 노숙인으로 분류되기 이전에 '노숙국민'이며, '노숙시민'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개인의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인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노숙인은 한마디로 '집이 없는 사람'이다. 더 엄격히 말하면 '집을 잃은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시스템에서 집을 잃는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박탈을 의미한다. 재산의 박탈 뿐 아니라 관계의 박탈로 이어져 개인적인 관계와 가족 관계까지도 상실시킬 수 있다. 노숙화의 과정에서 개인에 따라 경제적 문제 또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문제를 가지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의 문제도 겪을 수 있지만 노숙인은 그냥 집 없는 사람일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집을 잃었다는 것이 인간의 가치가 말살되었다는 것도 아니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박탈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가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집이 없는 사람들, 노숙인에 대한 시각은 매우 다르다. 위협적이고 무능하며 사회에 부적응하는 암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부정적 시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노숙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이상 마땅히 누려야 할 국민으로서의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조차 무시당하고 있다.

 

'집'이 있어야 가능한 주민등록제도

 

주민등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제도이다. 모든 국민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민등록을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당연하게 부여받는다. 취업을 하고, 은행거래 등의 일상적인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물론이고,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사회의 수많은 공적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이 필요하다.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법'은 거주지를 중심으로 한다. 거주지가 없으면 주민등록은 말소된다. 개인의 신분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거주지가 없으면 주민등록은 불가능하다. 주민등록에서 '주민'의 의미는 지역의 의미를 가진다. 해당 지역에 거주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주민등록을 할 수 있다. 개인이 가진 고유성이 소유물과 타자의 인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주민등록이 우리의 일상에 당연하고, 너무 익숙한 탓인지 주민등록이 '주거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집이 없으면 주민등록을 할 수 없다. 집이 있어야 주민등록이 가능하고, 집이 없으면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그리고 집을 잃으면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등록 말소는 행정적 사망 선고와 같다. 휴대폰조차 개통할 수 없다. 집이 없다는 이유로 일상의 모든 것들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취업을 할 수도 없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인 선거권조차도 박탈된다. 모든 것이 집이 없다는 이유이다.

 

'집'이 있어야 인정되는 국민으로서의 권리

 

'대한민국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각 조의 맨 처음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모든 국민'이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부터 시작해 각 조항에서 모든 국민이라는 표현으로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모든 대상으로 함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리고 집이 없는 노숙인의 시각에서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이라는 표현은 '집이 있는 모든 국민'이라는 표현이어야 맞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작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집이 있는 국민'으로 국한된다.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일어나는 일상적 제약을 뒤로하고, 국민으로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대표적인 권리의 박탈 문제를 들어보면, 첫 번째가 '선거권'의 제한이다.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도 재외국민도 누릴 수 있는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선거를 할 수 없다. 두 번째로 사회 보장이다. 주거가 없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다. 그 외 다양한 사회 보장 영역에서 제외된다. 사회 보장 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사회 보장 번호를 받기는 매우 까다롭고, 일부 공무원들은 그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 외에도 수많은 제도 속에서 노숙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국가의 관심이 뜨뜻미지근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노숙국민

 

주민등록제도는 박정희 군사정부에 의하여 '주민의 거주 관계를 파악하고 상시로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이다.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식별, 색출하여 반공 태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즉,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번호만으로 개인의 정보를 식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거주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주민등록은 개인의 신분 확인과 사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2020년 10월부터는 주민등록번호 13자리 중, 뒷자리 7자리 중 성별 표시를 제외하고 임의 번호를 부여하는 것으로 지역 번호를 폐지했다.

 

그렇지만 '주민등록'을 위해서는 여전히 '주거'가 있어야 한다. 여전히 '주민등록법'은 집이 없는 노숙인에게는 최악의 법이다.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존재 가치가 '집'이라는 물리적 환경으로 인해 제한되고 있다. 국민이 그 권리를 누릴 수 없을 때, 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사회 서비스를 통해 모든 국민이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노숙국민에 대해서는 개인의 책임성을 강조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집'을 마련하고 주민등록을 복원해야 국민으로서의 권리도 살아날 수 있다.

 

인간의 권리는 인간 그 자체이다. '집'은 인간이 머무는 장소이며 소유물일 뿐이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개인이 가진 소유물의 유무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노숙인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집이 없는 국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