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6. 17:47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월경과 월경 빈곤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
'월경'이란, 월경 주기, 즉 여성의 신체가 임신을 준비하는 약 28일의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여성은 자궁 내막이 성숙해지고, 배란이 발생하며 자궁 내막이 배출되는 월경을 평균 12세부터 52세까지 약 28일의 주기로 40년간 반복한다. 월경은 일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여성만의 고유하고 특수한 경험이며 여성의 전 생애에 걸친 건강의 문제이다. 모든 여성이 건강하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월경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단순히 '월경하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인권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월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월경을 우회적으로 일컫는 대표적인 말 중 '그날'을 살펴보자. 우리 사회에는 월경이라고 직접적으로 입에 담는 것을 불편해하며 우회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경향과 우회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월경담론을 공적인 영역에서 비가시화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월경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은 월경에 대해 쉽게 오해하고(예를 들어 한 달에 한 번, 하루 월경을 한다는 인식 등) 월경을 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월경 경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부끄러워하게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는 왜 월경 이야기를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월경이 여성성을 상징하며, 월경의 시작이 수치스럽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여성성이 타자성과 열등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라 보았다. 마치 월경하는 여성을 '부족한 사람'으로, 월경을 '부끄러운 경험'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인권으로서 월경권을 비가시화하고, 이를 '월경하는 여성'만의 개인적 문제로 축소하여 공적 장에서 논의되지 못하게 하였다.
"그날에 필요한 것", "부모의 원수라도 빌려준다는 그것" : 월경과 월경대(생리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월경을 매우 사적이고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파피루스를 사용한 것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월경 용품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월경 용품 광고에서 '생리(월경)'란 말이 정확하게 언급된 것은 2018년에서야 가능했으니 말이다. 일상을 둘러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날, 마법, 대자연'과 같이 마치 월경을 감춰야만 하는 부끄러운 무엇인가로 은밀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월경은 지극히 월경하는 여성만의 개인 문제로, 개인이 감당할 몫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월경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를 지연시켰다. '월경권'이란, 월경하는 모두가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그리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월경 경험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여기에는 월경으로 인해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월경에 필요한 정보·서비스 접근권의 보장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성과 재생산건강과 권리로서 월경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잠재적인 인권 침해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크다.
실제 2016년 국민안전처(現 행정안전부)가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며 기존 구호물자 중 월경 용품을 제외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국민안전처는 월경 용품을 장기 보관할 경우 변질 우려가 있다는 점, 그리고 여성 개인별 취향이 상이하기 때문에 생리대를 제외시켰다고 해명하여 논란이 되었다(현재는 여성 기준 응급구호 세트에 일반 중형 생리대 1조가 개별구호품으로 포함되어 있음). 문제는 여성의 월경은 약 28주간으로 경험되지만, 여성별 그 기간이 상이하고 특히 스트레스 등의 요인으로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재난이나 사회적 참사 이후 여성을 위한 위생 속옷과 월경대, 물티슈에 대한 추가적 요청이 계속 나타나는 현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재난이나 사회적 참사로 인해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월경하고 있지만 월경대가 부족하여 곤란한 상황, 월경이 갑자기 시작될 수 있다는 불안, 월경을 청결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것의 스트레스 등은 취약한 상태의 이재민, 유족들의 기본적인 인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월경은 참거나, 선택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신체의 생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월경을 시작하면 월경대를 개별적으로 신청해서 받아 가라던 국민안전처의 해명은 여성의 월경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효율성 -월경대 재고 관리 문제 등- 만을 고려한 대표적인 몰성적 정책으로 비난받는다. 다행히 2020년 팬데믹 동안 지자체별 차이는 있지만, 여성 자가격리자 지원품에 월경 용품이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깔창생리대 사건', 월경 빈곤을 아시나요?
구호 물품의 월경대 지급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충분한 물품을 지원받아, 사생활이 보장되는 건강한 월경'을 선택할 수 없는 사회 취약계층의 문제를 드러낸다. 우리가 공적인 장에서 월경 이야기를 해야 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은 월경 빈곤 문제이다. 월경 빈곤이란, 월경 기간 월경 용품(또는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품목)을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대략 38년간 총 456번 정도 월경을 경험한다. 인생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 월경을 하는 것이다. 월경 용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평생 약 20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소비한다. 여기에 월경 기간의 월경 용품 구입비용 외에도 월경 기간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는 부수적인 비용들까지 고려한다면 결코 작은 비용은 아니다. 여성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월경 기간 그리고 소용되는 비용은 이재민이나 참사의 유가족들 등 특수상황에 처한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성 취약계층의 월경 빈곤 문제를 야기한다.
2016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깔창생리대 사건'을 기억한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월경 빈곤을 겪는 여성 청소년들이 등교를 하지 못하고 수건을 깔고 버티거나, 신발 깔창 등을 사용하며 월경 기간을 버텨낸다. 여성 노숙인들은 종이박스를 잘게 뜯어 뭉친 후 공중화장실 휴지를 덮어 사용하거나 혹은 박스를 깔고 앉아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방식으로 월경을 견뎌낸다. 저소득층 여성들이 월경 용품 비용 부담을 줄이려다 비위생적 상황에서의 생식기 감염 등의 위험에 처한다. 나열할수록 슬픈 누군가의 경험들, 이것이 바로 월경 빈곤이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에서도 월경 비용이 별도로 논의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팬데믹을 경험하며 비로소 마스크 구매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취약한 사람들을 발견한 것처럼, 먹고, 자고, 사는 것이 중심이 되는 사회적 기준이 월경권 담론의 부재로 발생하는 월경 빈곤까지 포섭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월경 빈곤은 다른 국가보다 비싸고, 불안한 월경 용품 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월경대는 "경기를 타지 않는 대표적인 품목" 중의 하나이다. 즉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도 여성들이 거의 매달 반드시 사야 하는 물품이란 뜻이다. 매달 고정지출로서 월경대 구매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여성들. 그렇다면 여성 생필품으로서 월경대의 가격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을까? 2004년 여성단체의 노력으로 월경대에 대한 부가세를 폐지하였지만, 월경대 가격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월경대 발암물질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왜 이처럼 중요한 여성 필수품이 정부의 일관된 정책에 따라 그 안전성이 평가되고, 적절한 가격 규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가.
월경권의 부재는 이처럼 월경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 건강권으로서 월경권 담론이 논의되지 못하며 월경대에 대한 안전검사의 기준이 모호해진다. 인간다운 삶의 보장으로서 월경권 담론이 논의되지 못하며 월경 빈곤에 대한 문제가 사라진다. 결국 여성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월경대의 안전성과 가격 전부가 이를 제작·판매하는 대기업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월경대는 여성 필수품이 아닌 '선택적인 기호품'으로 시장에 진열되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월경대 시장은 대형제조업체 3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과점 구조이며 이에 대한 적절한 정부의 개입이 미미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해외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한 부담 증가, 발암물질 논란 등 제조상의 안전성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건강하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월경을 경험하는 것, 이와 가장 필수적인 월경대(월경용품)의 최소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월경 담론의 공론화는 시민사회가 주도할 수 있지만, 월경권의 보장 책무는 오롯이 국가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시장에만 맡겨진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인권의 관점에서 월경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월경 빈곤, 인권의 문제다
나 역시 월경 용품 가격의 무거움을 몇 년간 경험한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절, 마트에 들어가 한참 동안 가격을 비교하며 망설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소한의 소비 속에서도 선택의 여지 없이 사해야 하는 월경 용품 가격의 부담, 그렇게 신중하게 산 월경 용품이 하나씩 줄어들 때 느꼈던 기묘한 불안감, 그리고 가끔은 월경 용품이 모자라 친구에게 빌려서 사용했던 우울하고 부끄러운 기억들. 그때 나는 왜 그것을 오롯이 나의 몫으로만 생각했을까.
2019년 강남구청은 국내 최초로 초·중·고 34개교에 무상 월경 용품 보급기를 설치했다. 공공화장실의 화장지처럼, 월경 용품도 기본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필수품이라고 본 것이다. 2020년 경기도도 '경기도 여성 청소년 보건위생물품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하여 여성 청소년에게 월경 용품 구입비 또는 이용권(바우처)를 지급하는 보편지급 정책을 올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월경권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월경대 보편지급을 정책에 반영한 긍정적인 결과이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여성 청소년들의 월경으로 인한 교육권 차별, 월경 빈곤 등의 월경권 보장을 위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평등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월경 경험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것이 개인이 해결해야 할 사적 영역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의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여성 중에서도 오로지 월경하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별과 나이, 신분과 상관없이 인권 의제로서 월경 담론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숨어있던 월경 빈곤 문제를 가시화하고,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요구하여야 한다. 특히 현재 독과점 상태의 월경 용품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개입과 안전성 평가 기준 확보 등의 원천적인 해결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2021년 여성 청소년의 월경대 보편지급에서부터 우리는 월경 빈곤 문제의 시작을 논의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 노숙인, 여성 재소자, 여성 노인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여성이 안전하게, 월경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월경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월경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이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출처: '그날'이 아니라 '월경'입니다...이제 '월경권'을 이야기합시다
'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 > 내만복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만복 칼럼] "복지는 '한 끗 차이'에서 시작될 수 있다" (0) | 2021.05.21 |
---|---|
[내만복 칼럼] 주거 안정을 위해 수십 년짜리 빚쟁이가 되길 자청해야 하는 사회 (0) | 2021.05.16 |
[내만복 칼럼] 대한민국은 '노인빈곤'과 '고령근로'의 나라 (0) | 2021.04.29 |
[내만복 칼럼] 미얀마의 총성,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0) | 2021.04.22 |
[내만복 칼럼] 세월호 참사 7년, 세월호 가족들은 어디에 있을까? (0) | 2021.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