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위기는 복지탓?!

2012. 5. 21. 19:0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

번개강연 <유럽재정위기는 복지 탓인가?>를 듣고

_이건범 / 내만복 운영위원


유로 존, 특히 남부유럽이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4.11총선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유럽의 재정위기 원인이 과도한 복지 지출 탓이라고 평하면서 한국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며 보편적 복지 요구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강하게 밝혔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일관되게 보편적 복지 요구를 부정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근거를 유럽재정위기로부터 가져오는 논리가 참 너무하다 싶어 진짜 원인을 짚어보기 위해 ‘내만복’에서 번개강연을 마련했다.

연사로 나온 유승경 연구위원(엘지경제연구원)은 프랑스에서 7년가량 공부한 제도주의 경제학자다. 미국에서도 3년 정도 체류한 경험이 있어서 국제 경제 흐름에 매우 밝아 보였다. 유승경 샘이 2010년 한국에 돌아와 처음 쓴 논문은 달러위기가 주제였고, 그 다음은 북한의 화폐개혁, 그리고 지금은 유로 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화폐통이 되었다고 한다. 30명 가량의 청중들은 진지하게 강연을 듣고 매우 활기차게 질문을 던졌다.

유승경 샘은 “화폐는 주권”이라는 말로 이 사태를 진단했다. 즉 화폐를 주권과 분리하여 사고했던 유럽연방의 화폐통합, 경제통합 발상이 산업구조와 경제발전 정도, 그리고 산업 간 경쟁력에서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던 북유럽과 남유럽 사이의 무역 불균형을 가져왔고, 통화정책으로 이에 대처할 수단이 사라진 상태에서 지속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빚으로 매꾸던 그리스 등의 남유럽에서 2008년 미국발 위기 이후 위기가 노골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질적인 여러 국민경제로 구성된 단일통화지역은 상품 및 노동/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이들의 가격이 수렴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현실경제에서는 명목임금과 가격의 경직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언어, 주거, 관행 등의 문제로 노동의 이동은 극히 제약받으며, 가격도 독점적 경쟁상태에서 기업이 전략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격과 임금의 수렴이 이뤄지지 않은 채, 곧 각국의 경기주기에 따라 인플레이션 율에 차이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회원국들의 국채 이자율은 2008년 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격차가 나기 시작했고, 2009년 하반기부터 격차의 크기가 대폭적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단일통화 도입으로 회원국간 환율이 사라짐으로써, 남유럽은 대외경쟁력이 취약하여 북유럽(독일, 네덜란드 등)과의 교역에서 심각한 적자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즉 독일 등 북유럽의 경상수지흑자가 바로 남유럽의 재정적자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유로존은 재정통합이나 회원국의 재난에 대처할 충분한 대응장치 없이 서둘러 출발하였는데, 이는 1,2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엘리트들이 민족국가 사이의 분쟁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이상적인 연방주의 운동이 동서독 통일 이후 민주적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정치적 판단에 의해 강행된 탓이었단다. 출범 초기부터 필연적으로 예고되었던 사태라는 게 유승경 샘의 평가다.

만일 복지 지출이 위기의 원인이었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구제금융과 현재 실시하고 있는 긴축정책에 의해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였겠지만, 지금의 위기는 재정통합 없는 단일통화체제에서 각국의 생산력 차이가 빚어내는 구조적 문제이므로 그 원인을 복지 탓으로 돌리는 건 전형적인 흑색선전에 불과하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