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시민단체, '갓물주'가 되기로 결심하다

2020. 10. 7. 12:5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시민자산화, 부동산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나상윤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 이사장




 

한국 자본주의의 몇 가지 특징 중 하나는 지대수익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자본이 생산을 통한 부가가치보다는 부동산 소유와 매매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동산 공화국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아예 '갓물주'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건물주 되는 것이 아이들의 꿈인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 서민들은 부동산으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자가용 주택 마련을 위해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허리띠를 졸라매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지대수익에 의존하는 한국 자본주의

 

사실 서민들에게는 부동산 소유는 말할 것도 없고 임차도 쉽지 않다. 높은 임차비용으로 인해 주거는 물론 생계를 위한 영업 행위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자영업 비중이 유달리 높은 한국 사회에서 상가 임차비용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공익적 역할을 하는 사회운동단체 역시 사무실 임차비용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은 사람이 하는데 저임금에 시달리는 단체 활동가 급여보다 임차비용을 더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여론이 악화되고 사회적 관심사가 되면서 제도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는 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으로 2020년 9월부터는 주택임차는 4년 계약이 가능해졌고,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개정으로 상가임차는 2018년 10월 16일 이후부터는 10년까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임차비용의 인상도 5%로 제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멍이 많고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이제 진보적 사회운동도 부동산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은 물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다수의 노동자와 서민이 부동산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공공재인 토지가 더 이상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불로소득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물주가 바뀌면 강요받는 공간 이전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이하 사람과공간)은 2014년 3월 출범했다. 지역 거점을 기반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확장하고 진보적 사회운동의 지역적 토대를 구축하는 게 목표이다. 2008년 '마포민중의집'이 문을 연 후 한국에서 여덟 번째로 만들어진 사람과공간은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활동가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공간 나눔과 노동 사업, 마을공동체 사업, 나눔연대 사업, 생활문화 사업 등의 주요 사업이 노동자, 노동조합을 중심에 두고 진행된다. 노동조합의 자원과 역량 덕분에 지역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 이제는 강서양천 지역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플랫폼 역할과 허브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말 입주한 건물이 매각되고 건물주가 바뀌면서 우리는 공간 이전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혹스러웠지만, 당장의 대안 마련이 시급했다. 다행히 협상을 통해 매월 지불하는 임차비용을 올리고 5년이라는 법적 보호기간을 보장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하지만 중장기적 대안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점 공간을 통해 다양한 사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취지를 실현하자면 비교적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에 70평 규모의 공간을 임차했고 때문에 매월 임차료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지난 6년 6개월간 지불한 임차비용을 합하면 2억 원에 달한다.

 

우리는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다. 우리가 비판하던 부동산의 소유주가 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사적 소유'가 아니라 '공동 소유' 방식으로 '건물주'가 되기로 했다. 높은 임차료 부담을 지고 사느니 차라리 대출받아서 건물을 매입하고 이자를 내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이 모아서 건물 매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 사람과공간에는 몇 개의 단체가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일종의 쉐어 오피스(share office)인 셈이다. 여러 단체가 공간을 공유하게 되자 공간 이용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장점이 생겼다. 지역 특성상 여성들은 주로 오전과 오후 시간을 사용하고 단체나 노조는 야간 시간을 사용하면서 공간 이용 회전율이 높아진 것이다. 상시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지내다 보니 단체 간 협업이 촉진되고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회전율 증가로 인하여 공간 부족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임차료 문제와 더불어 공간 부족 현상은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사례 조사도 하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모아보고 부동산 물건 조사 작업도 진행했다.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서울에서 단독으로 이런 사업을 벌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 2020년 7월 10일 서울 강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체 공간 시민자산화'를 주제로 집담회를 벌이고 있다. ⓒ나상윤

 

 

혼자가 안 되면 여럿이 하면 되지 않을까? 공유 공간 마련에 동의하는 단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의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강서아이쿱생협'과 '빵과그림책협동조합'이 적극 호응했고, 다른 곳에 입주해있던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 뒤늦게 합류했다. 4개 단체는 자산 매입을 위한 비영리법인으로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의 설립 총회를 5월 5일 개최하고 법인 설립절차를 밟아나갔다. 8월 7일 법인 설립인가, 8월 31일 법인 설립 등기를 끝마친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은 이제 공유 건물 매입을 핵심 과제로 두고 있다. 최근에는 법인 조합원이 늘었다. 돌봄요양보호사로 구성된 '강서나눔돌봄센터'가 우리 취지에 동의하고 공유 건물 매입에 함께 나서기로 한 것이다. 

 

공간을 공유하고 함께 사용할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우리가 매입할 건물은 대지 70~80평 수준, 건평은 40평대, 지하 1층과 지상 4층 수준의 규모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는 문화복합공간, 1층은 수익용 임대 공간, 2층은 대규모 교육 공간, 3층은 공동 사무실, 4층은 독립 사무실 형태로 예상하고 있다. 건물 매입과 그에 따른 각종 조세 그리고 리모델링 비용까지 고려할 때 30억 원이상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월 임차비용 몇백만 원을 감당하는 것도 벅찬데 3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하고 원리금 상환을 대비해야 한다. 사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고민이 많다. 하지만 찾으면 어딘가에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전문가 단체의 컨설팅을 바탕으로 수차례 논의 끝에 건물 매입의 주체로 비영리법인인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공동 소유라는 소유권 문제의 해결과 건물 매입 시 취·등록세 등 조세 문제를 고려할 때 별도의 법인 설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5개 단체는 8억 원의 출자금(자본금)을 마련하고 25억 원 내외의 대출을 받기로 했다. 5개 단체는 같은 건물에 입주하고, 2층 교육 공간과 지하의 문화복합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 물론 공동 소유자로서의 권리도 부여된다. 

 

 

가보지 않은 두려운 길, 누군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 

 

자산 매입을 통한 공유 공간 마련은 그 동안 시민사회가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렇다고 전혀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우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포의 시민공간 나루', '광진 공유공간 나눔',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공동 자산으로 부동산을 매입해서 공유 사무실로 사용하는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에서는 '시민자산화'라는 개념이 얼마 전부터 공론화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사회 운동과 마을공동체 운동의 지속가능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체 자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하지만 자산화를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생각하지 못한 장벽을 여러 차례 만나고 있다. 자산 소유의 경험이 없고 자산 공유 방식의 법률적인 근거가 취약하다 보니 예상 밖의 난관이 자주 등장한다. 무엇보다 자산 매입과 소유에 따른 조세 문제가 생각보다 크다. 수도권 과밀 규제로 인해 설립 5년 미만의 법인이 자산을 매입할 경우 취·등록세가 중과세된다. 그 차이가 억 단위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매입 자금 조달에 대한 문제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역자산화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서울시의 경우는 사회투자기금에 '민간자산 클러스터 계정'을 신설해서 시민자산화 융자를 시작했다. 이른바 정책 금융, 사회적 금융 사업이다. 하지만 정책 금융을 받으려 해도 자기 자본을 최소한 10~20%를 확보해야 한다. 건물 가격이 30억 전후일 경우 최소한 3억에서 6억 원의 자기 자본이 필요하다. 이른바 메이저 시민사회단체가 아니면 엄두를 내기도 쉽지 않은 금액이다. 게다가 행정안전부나 서울시의 정책 자금을 지원받으려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이하 서마종)에서 2019년부터 '시민자산화 지원 사업'을 시작했고, 우리 단체가 2년 연속으로 선정된 것이다. 서마종 지원 사업을 통해서 우리 단체는 다양한 사례 견학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컨설팅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으면서 난관을 하나씩 넘어가고 있다.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게다가 사회운동 영역에서는 거리가 먼 자산을 매개로 한 새로운 시도다.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상상을 해본다. 우리가 만들 공동체 공간의 쓰임새를. 지하는 문화 공간이다. 건강교실이 운영되고 공연을 할 수 있고 전시도 할 수 있는 곳. 때로는 강당으로 쓰이기도 하고. 1층은 아무래도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원리금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 임대 혹은 커뮤니티 비즈니스 공간으로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공유 주방이 달린 카페가 있고, 동네서점과 코인빨래방 그리고 반찬가게를 들이면 어떨까? 2층에는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회의실, 폴딩도어를 설치해서 서너 개의 중규모 회의실로 분할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3층에는 공유 사무실. 칸막이나 파티션, 이런 것은 가급적 하지 말고 개방형 사무실로. 지정된 책상이 있기 보다는 아무 곳에나 앉아서 노트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곳. 몇 개의 소회의실과 탕비실 그리고 개인용 공간이나 사물함을 배치해서 사생활도 어느 정도 보호하고. 여유가 있다면 4층을 만들고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면 어떨까? 옥상에는 텃밭과 휴게 공간을 설치해서 쉼터로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물론 햇빛발전을 건물 벽면과 옥상에 설치해서 에너지 절감에도 기여해야 되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은 길이다. 또한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특히 '돈'이 결부되는 그것도 수십억 원이라는 규모의 돈의 결부되는 일이다 보니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힘과 지혜를 모으고 한발씩 가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 걸어가면 길이 나듯이 시민자산화-공유자산 마련이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다 같이 개척해보면 보면 어떨까?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061525167533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